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 기사는 소설 <사형집행인의 딸>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사람들은 지나서야 깨닫는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당시엔 모른다.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자극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눈먼 분노는 거세게 들끓는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는다. 모든 책임을 덧씌우고 사라지게 만들 가엾은 희생양. 그래야 감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평안을 찾는다. 비록 잠시라고 해도 희생양의 존재는 절실하다. 잠시 상황을 판단해볼 이성은 마비돼 있기에.

올리퍼 푀치의 소설 <사형집행인의 딸>은 중세시대 횡행했던 마녀사냥을 매개로 지금의 우리에게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를 날린다. 집단 광기, 이를 이용하는 권력의 추악한 면모는 비단 과거만의 전유물일까.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곤 할 수 없을 게다.

한 소년의 죽음, 집단 광기에 불을 댕기다

<사형집행인의 딸>
▲ 책표지 <사형집행인의 딸>
ⓒ 문예출판사

관련사진보기

평온했던 마을에서 일어난 한 소년의 죽음은 주민들에게 꺼림칙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세기 전, 절반이 다른 절반을 마녀로 고발했던 광기의 시대. 바로 그 마녀의 표식이 소년의 사체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의 처절함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당장 사건을 잠재울 해결책이 필요했다. 어서 빨리 '마녀'를 찾아야 해. 그리고 나만 아니면 돼.

그러나 도시의 사형집행인은 달랐다. 사실 그는 기존에도 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사형을 집행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는 좀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불행한 이는 좀 더 배려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는 사형집행인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검을 쥐었다. 그 검은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에게 전달됐다.

결국 타의에 의해 가장 원시적인 형벌인 사형을 집행하던 이만 이성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딸이 함께 사건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도대체 왜. 시작은 단지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명백하고 투명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딱 하나의 신념, 그것이 발로였다.

시민들은 마녀가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아직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곧 훌륭하신 시의원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악한 짓을 토설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사건이 종결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악마와 음행을 저질렀음을, 그와 함께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피를 마시고 그들의 몸에 악마의 상징을 찍으며 광란의 밤을 보냈음을 자백할 것이다. (본문에서)

하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산파를 마녀로 모는 심증은 점점 굳어간다. 당연히 그녀를 옹호하는 사형집행인도 고초를 겪는다. 산파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버텨간다. 심지어 그 산파의 손에 자식을 받았던 이들마저 가세해 그녀를 마녀로 몰아간다. 차라리 모든 것을 놓고 싶은 심정이었을 게다.

그러나 진실은 정말 가볍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밝혀졌다.

왜곡된 시선이 만든 '마녀'

지몬의 머리가 빙빙 돌았다. 연기와 두려움은 머릿속에서 훌쩍 달아나버렸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 기호뿐이었다. 마음속 눈에 대학에서 알게 된 모든 연금술 기호들이 보였다.


'물, 흙, 공기, 불, 구리, 납, 암모니아, 재, 금, 은, 코발트, 주석, 마그네슘, 수은, 염화암모늄, 초석, 소금, 황, 위석, 황산, 적철광…….'

적철광. 이렇게 쉬운 답이었다고? 우리가 지금껏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했던 건가?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엄청난 착각이었던 거야? (본문에서)

사실 마녀의 표식이라 생각했던 기호는, 적철광을 뜻하는 연금술 기호가 뒤집어져 있던 것에 불과했다. 그냥 한 번 돌려서 봤으면 됐을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을이 광기에 휩싸이지도, 산파가 마녀로 몰리지도, 사형집행인이 고초를 겪을 일도 없었다. 평온했던 삶, 사람들이 바랐던 그대로였을 게다.

못 본 것인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 누구도 이 간단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을은 집단 광기에 빠졌고, 마녀로 몰린 자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막달레나는 그중 한 조각에서 마녀의 상징을 보았다. 처음에는 아연실색했다. 이 집에 왜 이 기호가 있지? 아주머니가 정말로 마녀인 건가? 하지만 막달레나는 그 조각을 손에 들고 앞뒤를 살피다가 이 기호가 거꾸로 뒤집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마녀의 상징이 갑자기 아무런 해가 없는 연금술 기호로 둔갑했다. (본문에서)

한 개인을 마녀로 몰아서라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권력층, 이에 편승해 불안감과 박탈감을 분노로만 해소하려 했던 주민들, 그 속에서 희망과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사형집행인과 그 딸. 뒤틀린 '마녀사냥'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시각을 되돌아봐야 할 이유다.

이제 적철광 기호를 바라보는 뒤집어진 시선을 똑바로 돌려놓을 때다. 자, 이제 무엇이 보이는가?

덧붙이는 글 | <사형집행인의 딸> (올리퍼 푀치 지음 /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2013.12 / 1만4천원)



사형집행인의 딸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문예출판사(2013)


태그:#사형집행인의 딸, #올리퍼 푀치, #문예출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