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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문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학자가 아님에도 로마문명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어쩌면 '만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쓰고 싶고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열망에 용기를 냈다. 이런 내용의 '고해성사'로 시작하는 이 책,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는 인권법 학자 박찬운 교수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고 발로 뛰며 축적한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연재물이었던 '박찬운의 로마문명 이야기'를 독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 엮었다.

오마이뉴스 연재물을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간혹 접한 기사를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재밌다는 말이다. 비전문가가 생소한 로마문명과 한국의 역사를 교차시켜가며 쉽고 재미있게 해설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사색이 필요할까.

지구의 정반대편에 위치해 도저히 만날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문화가 어떤 경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살피다 보면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저자의 지적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로마문명, 과거와 현재의 크로스오버

박찬운은 로마황제, 로마법, 로마의 건축, 로마가도, 개선문, 콜로세움, 로마의 영웅과 지도자들을 소개하며, 서양 고대문명의 집대성이자 근대문명의 출발점인 로마문명을 쉽게 해설한다. 단순한 소개를 넘어 '로마문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2천년전 문명과 21세기 현실의 절묘한 교차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구에 실린 단순한 진리를 되새긴다.

세계 건축사의 기적인 '판테온'을 이루고 있는 로툰다(rotunda, 원형홀)에 담긴 수학적 원리를 보며 로마인의 정교한 과학기술력에 감탄을 하다가도,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로툰다의 후예들을 살피다보면 건축물에 어떤 철학을 담느냐에 따라 가치가 확연히 달라지는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로툰다의 원형 돔은 로마 이후에도 서양 건축에 빈번하게 인용됐다. 급기야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까지 전해졌는데 통일신라의 석굴암에서 로툰다의 양식이 발견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로마의 문화가 미친 상상을 초월한 파급력에 경탄을 하게 된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때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국회의사당 돔도 로툰다 양식을 띠고 있다. 국회의사당 건물에 원형 돔이 얹혀진 유래를 설명하며 '국적없는 디자인'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하는데 사연인즉 이렇다. 1975년 완공 당시 일부 국회의원들이 해외 나들이를 갔다가 본 돔 건물이 부러운 나머지 "우리나라 의사당도 미국 의사당처럼 모자 한번 씌우지?"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다.

원래는 평지붕으로 설계된 건물인데 나중에 억지로 '돔'을 얹었으니 모양도 어정쩡한 이상한 건물이 됐다는 말이다. 그 돔에서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전설(?)은 '닥치고 베끼기'의 결과물로 탄생한 국회의사당 건물에 대한 해학적인 조롱일지도 모른다.

반면, 같은 로툰다 양식이지만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의 돔은 애초부터 유리로 설계됐다. 시민 누구나 돔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시민에 의해 언제나 감시된다는 상징인 셈이다. 건축물에 어떤 철학을 담느냐가 결국 그 건물의 가치를 결정한다.

로마가도에서 자본주의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다

로마가 '제국'으로 광활한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빠른 '속도'에 있었다. 제국시절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로는 간선도로 8만km, 지선까지 포함하면 15만km 이상에 달했고, 제국의 113개 지역 총 370여 개의 간선도로가 연결된 상태였다고 한다. 도로의 상태도 워낙 견고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도로가 있으니, 당시 로마인들의 도로 건축 기술력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겠다.

박찬운은 로마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로마가도가 역으로 로마문명의 종언을 고한 비극이 되었다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로마가도가 물류의 속도를 너무 높여 놓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급속도로 힘이 빠진 로마제국은 결국 이민족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것(134쪽)이라는 점이다. 혈관과도 같은 로마가도가 막히는 순간 로마제국 전체가 마비되고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급속도로 고갈되었을 것이다.

인류문명적 차원에서 볼 때 인류가 만든 이 빠른 속도의 길과 그것이 가져다 준 빠른 성장이 항상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도 성장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쉽게 고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한다. 큰 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135~136쪽)

저자는 에너지 고소비 사회이자 고도성장 사회였던 로마의 멸망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난지 2백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에너지 고갈을 걱정할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성장해 온 대가는 인류의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로마가 멸망했듯이 현대 문명이 사라지는 '문명의 종언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제너럴리스트의 관점으로 로마를 보다

인권법 학자인 저자는 "법조문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철학을 통해 인권법을 이해하고 싶었다"며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법조문이나 읊어대는 것은 학자로서 크게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복잡하고 고도화 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전문성 맹신이 불러온 결과다. 반대로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상실한 성장만을 추구해 온 문명의 위기 앞에서 다시 인문학을 호출하고 있다. 이것이 법학자라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교양인이라는 '제너럴리스트'의 관점에서 쓴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 나남 / 박찬운 지음 / 20,000원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 인권학자 박찬운 교수의 로마문명 이야기

박찬운 지음, 나남출판(2014)


태그:#로마, #로마문명, #판테온, #로마가도, #로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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