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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참 미끄럽습니다. 하지만 넘어져도 아프지는 않습니다.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 환호 진흙탕 참 미끄럽습니다. 하지만 넘어져도 아프지는 않습니다.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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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 아빠캠프 한다는데 가 볼래요?
나 : 관심 없습니다.
아내 : 아빠하고 애들이 재밌게 노는 곳이래요. 큰애만 몰래 데려가요.
나 : (단호하게) 일 없습니다.

전남 여수 이목리 농업체험학습장, 진흙탕 싸움이 한창입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요란합니다. 아빠와 딸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흐릅니다. 어느 순간 딸이 아빠 얼굴 향해 힘차게 진흙을 던집니다. 아빠가 날아오는 진흙을 가볍게 피합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딸에게 진흙을 던집니다. 두툼한 흙덩이 얻어맞은 딸이 눈물을 흘립니다. 너무 세게 맞았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딸에게 다가와 얼굴을 매만집니다. 허나 이는 딸의 기만전술입니다. 딸이 갑자기 아빠 얼굴에 큼직한 진흙을 묻힙니다. 상황이 돌변합니다.

얼굴에 흙 묻은 아빠가 딸을 피해 도망갑니다. 그 뒤를 한 손에 붉은 흙덩이 든 딸이 끈질기게 쫓아갑니다. 결국, 아빠가 두 손을 번쩍 듭니다. 항복 선언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끊임없이 붉은 진흙을 맞습니다. 재미 붙은 딸이 진흙탕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층층이 쌓인 논들이 색다른 모습입니다. 이즈음, 농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논에 물 대야하고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심기도 때 놓치지 않고 마쳐야합니다.
▲ 논 층층이 쌓인 논들이 색다른 모습입니다. 이즈음, 농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논에 물 대야하고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심기도 때 놓치지 않고 마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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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화양면 이목리에 있는 농촌체험학습장입니다.
▲ 농촌체험학습장 전남 여수 화양면 이목리에 있는 농촌체험학습장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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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박으로 만든 다양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박이 자라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 박 전시장에는 박으로 만든 다양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박이 자라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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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아빠들과의 '어색한 만남' 영 마뜩찮은데...

참다못한 아빠가 진흙 놀이터에서 탈출합니다. 딸이 먼발치에서 숨을 고르며 아빠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승자의 여유입니다. 지난 24일 오후, 파란 하늘이 여름을 재촉합니다. 오늘은 머리를 잘 굴려야합니다. 세 아들 중 큰애만 데리고 놀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덜컥 '여수시 건강가족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아빠와 함께 하는 체험활동'에 등록했습니다. '체험활동' 애써 피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큰애 둘만 움직인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아이들 한명에게만 집중해야 한답니다. 때문에 큰애만 데리고 놀러 가랍니다.

또, '체험활동'에서 부딪칠 낯선 아빠들과의 '어색한 만남'이 영 마뜩찮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이미 시에 등록을 마쳤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일단, 이목리 농촌체험학습장까지는 가야합니다.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조건을 달았습니다.

행사가 시시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겠노라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내는 그럴 일 없을 거라며 더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합니다. 여수 화양면 이목은 저녁노을이 참 멋진 곳입니다. 가족과 함께 차 몰고 달리기 딱 좋은 곳입니다. 그 길을 대낮에 달립니다.

노을은 없지만 고즈넉한 시골길이 정겹습니다. 차창 밖으로 논들이 보입니다. 모심기를 마친 논에 물이 고여 있습니다. 층층이 쌓인 논들이 색다른 모습입니다. 이즈음, 농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논에 물 대야하고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심기도 때 놓치지 않고 마쳐야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동네에서 살았음직한 아저씨들 진흙 인형이 있습니다.
▲ 인형 임진왜란 당시 동네에서 살았음직한 아저씨들 진흙 인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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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깃발을 만들고 있습니다. 깃발 제목은 곤충나라입니다.
▲ 깃발 큰애가 깃발을 만들고 있습니다. 깃발 제목은 곤충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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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구리가 굵직한 쇠똥을 옮기고 사마귀는 풀잎에 앉은 메뚜기를 노립니다.
▲ 곤충나라 쇠똥구리가 굵직한 쇠똥을 옮기고 사마귀는 풀잎에 앉은 메뚜기를 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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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사, 아빠와 애들에게 화끈한 시간 된다?

허나, 저는 세월 좋게 큰애와 농촌체험학습장으로 달려갑니다. 이윽고 이목리 농업체험학습장에 도착했습니다. 체험학습장은 폐교를 보기 좋게 고친 곳입니다. 안내하는 분이 조그만 교실로 큰애를 이끕니다. 교실에 들어서니 스무 명 남짓한 아빠들이 모여 있습니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쭈뼛쭈뼛한 분위기입니다. 반면, 아빠 옆자리 아이들은 체험학습장이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립니다. 곧이어 행사를 맡은 여수시보건소 건강가족지원센터 담당자가 칠판 앞에 섰습니다. 그가 오늘 치러야할(?) 다양한 행사를 설명합니다.

먼저, 농업체험학습장 구경을 하고 물때 맞춰 갯벌에 나갑니다. 갯벌에서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황토염색 체험 마치고 진흙 놀이터로 가야합니다. 설명 마친 담당자가 "마지막 행사, 아빠와 애들 화끈한 시간이 될 거"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담당자가 무리를 향해 던진 미소의 의미는 마지막 시간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체험학습 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시장에는 박으로 만든 다양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박이 자라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곳, 임진왜란 당시 동네에서 살았음직한 아저씨들 진흙 인형이 있습니다.

인형들은 테라코타(점토를 성형해 초벌구이 한 것)로 만들었습니다. 인형을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친근한 얼굴입니다. 한참 뒤, 작품 만든 작가가 테라코타 만든 과정을 설명해 주는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진흙 인형들은 현재 여수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얼굴을 본 떠 만들었습니다.

갯벌은 참 신기합니다. 갯벌은 바닷물에 몸을 감쪽같이 숨깁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드넓은 들판처럼 생긴 살진 모습을 드러냅니다.
▲ 갯벌 갯벌은 참 신기합니다. 갯벌은 바닷물에 몸을 감쪽같이 숨깁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드넓은 들판처럼 생긴 살진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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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두 손을 바닷물 표면에 살짝 올립니다. 물속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먹잇감 노리는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손에 가득 물을 길어 올린 뒤 손바닥을 훑어봅니다. 손바닥 바라본 큰애가 한숨을 쉽니다. 물고기가 없습니다.
▲ 집중 큰애가 두 손을 바닷물 표면에 살짝 올립니다. 물속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먹잇감 노리는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손에 가득 물을 길어 올린 뒤 손바닥을 훑어봅니다. 손바닥 바라본 큰애가 한숨을 쉽니다. 물고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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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얼굴 이곳저곳에 황토 흙 묻혀가며 체험을 마쳤습니다.
▲ 황토염색 아이들은 얼굴 이곳저곳에 황토 흙 묻혀가며 체험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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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고사리 손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친근한 아저씨 인형들을 둘러본 뒤, 드넓은 갯벌로 나왔습니다. 갯벌은 참 신기합니다. 갯벌은 바닷물에 몸을 감쪽같이 숨깁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드넓은 들판처럼 생긴 살진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이들과 아빠가 복잡한 삶이 얽혀있는 곳에 발을 딛습니다. 아이들은 '게' 구멍 파느라 정신없습니다.

아빠들은 고둥과 바지락을 경쟁적으로 캡니다. 아이들은 모두 갯벌에서 노는데 큰애는 조심스레 물웅덩이로 들어갑니다. 큰애가 두 손을 바닷물 표면에 살짝 올립니다. 그리고 물속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먹잇감 노리는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이윽고 큰애가 잽싸게 물속으로 손을 담급니다.

큰애가 손에 가득 물을 길어 올린 뒤 손바닥을 훑어봅니다. 손바닥 바라본 큰애가 한숨을 쉽니다. 큰애는 치어 잡을 생각으로 물웅덩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입니다. 워낙 잽싼 녀석들이라 큰애 움직임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잠시 물고기 잡이에 열중이던 큰애가 자리를 옮깁니다.

큰애가 드디어 갯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호미로 갯벌을 헤집습니다. 실한 바지락이 호미 끝에 걸립니다. 바지락은 자리 옮기며 캘 필요가 없습니다. 머문 자리, 손닿는 곳에서 호미 긁으면 굵은 바지락이 지천입니다. 역시, 갯벌은 고사리 손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게와 고둥 그리고 바지락 캐며 갯벌 놀이를 마쳤습니다. 갯벌 체험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운동장 구석에 붉은 황토물이 보입니다. 다음 순서는 황토염색입니다. 아이들은 얼굴 이곳저곳에 황토 흙 묻혀가며 체험을 마쳤습니다. 곧이어 선생님이 진흙탕으로 일행을 이끕니다.

진흙탕입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주저 없이 진흙 속으로 뛰어듭니다. 반면, 함께 온 아빠들은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부립니다.
▲ 진흙탕 진흙탕입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주저 없이 진흙 속으로 뛰어듭니다. 반면, 함께 온 아빠들은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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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진흙탕에서 싸우면 기분 좋습니다. 차원이 다른 진흙탕 싸움도 있습니다.
▲ 싸움 아이들과 진흙탕에서 싸우면 기분 좋습니다. 차원이 다른 진흙탕 싸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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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진흙 싸움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 휴식 치열한 진흙 싸움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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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 하는 개구쟁이 아빠, 어제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진흙만지며 마음껏 놀아 보랍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주저 없이 진흙 속으로 뛰어듭니다. 반면, 함께 온 아빠들은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부립니다. 결국, 탕에 들어오라 소리 지르는 아들과 딸들의 달콤한(?) 외침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아빠들이 조심스레 진흙에 발을 딛습니다. 진흙탕 참 미끄럽습니다. 아이들이 진흙탕 속에서 미끄러지면서 아빠를 붙잡습니다. 그 통에 아빠와 딸이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집니다. 하지만 넘어져도 아프지는 않습니다.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한데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벌입니다.

진흙탕 싸움에 흠뻑 빠진 아빠들도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나봅니다. 비온 뒤 진흙 웅덩이 속에서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흙장난 하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매번 또래 아이들과 장난치던 때와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아빠 얼굴에 흙 묻은 모습도 신기합니다.

오늘은 흙 만지지 못하도록 말리던 어제의 아빠가 아닙니다. 아빠가 붉은 흙 옷과 얼굴에 묻혀가며 함께 뒹구는 개구쟁이로 변했습니다. 농촌체험학습장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진흙탕 싸움 벌이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헐뜯는 말과 행동 서슴지 않으면 '진흙탕 싸움에 빠졌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진흙탕에서 싸우면 기분 좋습니다. 차원이 다른 진흙탕 싸움도 있습니다.    


태그:#이목리, #농촌체험학습장, #건강가족지원센터, #여수시 보건소, #진흙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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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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