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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다리, 이 다리를 건너 터널을 지나면 읍내가 펼쳐진다.
 통통다리, 이 다리를 건너 터널을 지나면 읍내가 펼쳐진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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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안 하고 출근하셨어요? 얼굴이 왜 그래요?"

출근을 하자마자 컴퓨터를 켜는 내게 한 직원은 '세수를 안했느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4km 걷기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한 후 출근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는 핀잔이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입술과 볼에 뭔가 시커멓게 묻어 있다. 뭔지 알 것 같다.

출근길, 비키니 여인을 유심히 볼 수 있는 행복

출근길은 작은 행복이다. 집에서 사무실인 화천군청까지 도보로 25분 정도 걸린다. 이 길엔 계절별로 많은 이벤트가 연출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른 봄날, 화천강이라 부르는 북한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한여름엔 이슬을 머금은 달개비, 애기똥풀, 엉겅퀴, 망초, 산도라지 등의 야행화가 지천이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벚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출근길에 만나는 애기똥풀꽃, 꺾으면 노란 진액이 나온다
 출근길에 만나는 애기똥풀꽃, 꺾으면 노란 진액이 나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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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풍경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즐긴다. 아등바등 전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한 도심지 사람들의 출근길, 한번쯤 약 올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업로드 빈도가 높은 사진은 북한강을 가로질러 놓은 '통통다리'다. 커다란 드럼통 위에 판자를 깔아 만든 다리, 특별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생긴 대로 '통통다리'라 불렀다. 물에 떠 있는 모양이 흡사 통통배 같다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내 출근준비는 간단하다. 시간 날 때 틈틈이 볼 책 한 권과 생수 한 병이 전부다. 아파트 앞 6차선을 가로지른 건널목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신호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는 차량은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지방도 407호선. 아침과 저녁시간에만 교통량이 유독 많다. 화천에서 춘천까지의 거리는 승용차로 40여 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공무원, 선생님, 사업가, 군부대 장교 등 화천에 직장을 둔 사람들의 행렬이다.

이 건널목만 지나면 더 이상 차량을 마주할 기회는 없다. 체육공원을 따라 만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내 출근길이다.

강변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전투기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모형이 아니다. 실제 비행기를 가져다 전시해 놓은 거다. 왜 그곳에 팬텀기가 올려져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화천 피니시타워. 조정, 카누, 카약 등 이곳이 결승 지점이다.
 화천 피니시타워. 조정, 카누, 카약 등 이곳이 결승 지점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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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는 화천군에서 시작된다'는 모토. 화천군은 평화의 댐 인근에 세계 각국 분쟁 30개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37.5톤 규모의 범종을 만들었다. 일명 '세계평화의 종'이다.  인근엔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손을 받아 12개의 핸드프린팅 조형물도 설치했다. 그들의 손을 잡으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평화가 깃들게 하자는 의도다.

북한강 팬텀기 또한 지구상에 전쟁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무기는 한낱 관광자원 이상의 것은 될 수 없다는 것.

출근길 또 하나의 매력은 비키니를 입은 묘령의 여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기에 유심히(?) 볼 수 있다. 혹여 행인들이라도 있다면 남사스러워 똑바로 쳐다보기나 하겠나. 실제 사람 크기보다 조금 큰 여인은 비키니 차림으로 골프채를 힘껏 휘두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왜 강변에 이런 조형물을 설치했을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치는 여인상, 아침마다 만나는 비키니 여인이다.
 골프치는 여인상, 아침마다 만나는 비키니 여인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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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이렇다. 팬텀기가 올려진 피니시 타워에 수상골프장을 설치했다.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물위에 뜨는 공을 사용한다. 쪽배축제가 열리는 한 여름, 비키니 복장의 여인만 입장이 허용된다는 의미에서 이 조각상을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비키니 복장을 한 신청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후, 옷을 입은 사람들 모두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혼자 서 있는 비키니 차림의 여인은 왠지 쓸쓸해 보인다.   

버찌는 내 출근길 간식     

버찌. 붉은색은 아직 덜 익은 열매다.
 버찌. 붉은색은 아직 덜 익은 열매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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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엔 벚나무 열매인 버찌가 지천이다. 따서 맛을 본다. 어쩌면 그렇게 천차만별일까. 어느 나무의 열매는 신맛이 강하고 또 다른 나무의 버찌는 떫은 맛이 유독 깊다. 맛을 음미하며 버찌를 따먹다 보면 검은 즙이 입술에도 묻고 때론 볼을 검게 만들곤 한다.

터덜터덜 걷다 도착한 '통통다리'. 위쪽으로 300여 미터 지점엔 화천대교라는 다리가 있다. 그런데도 많은 주민들은 이 조그만 통통 다리 위를 걷는다. 건너편 마을을 가는 데 대교를 이용하는 것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심하지 않은 흔들림의 스릴도 있다. 마치 강 위를 걷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통통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터널이름은 제3터널이다. 제1터널과 제2터널이 어디엔가 있음을 암시한다. 흔하게 '화천터널' 또는 '북한강 터널'이란 이름을 얻었을 만도 한데 굳이 '제3터널'이라 부르는 이유는 뭘까.

제3터널. 이 곳을 빠져나가면 읍내가 펼쳐진다.
 제3터널. 이 곳을 빠져나가면 읍내가 펼쳐진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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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부터 1km 상류 둔치는 미국 CNN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았고, '4대 세계겨울 축제' 중 하나인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2006년부터 매년 100만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았다. 축제장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관광객이 붐비는데 인접한 읍내는 늘 썰렁했다. 축제 개최의 목적은 지역경제 활성화다. 그런데 읍내엔 관광객들이 찾지 않았다. 원인을 분석했다.

둑 때문이다. 화천읍내는 화천강이라 불리는 춘천호 만수위보다 낮다. 사람들은 홍수 시 피해 예방을 위해 둑을 쌓았다. 마치 커다란 성벽 같다. 그것이 장애물이었던 거다. 관광객들은 둑을 넘길 꺼려했다. 그래서 터널을 만들었다. 무려 세 개나 뚫었다. 이후 산천어축제 기간 읍내는 서울 강남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출근길에서 만난 열차펜션.
 출근길에서 만난 열차펜션.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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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50여 미터 길이도 되지 않는 터널을 지나면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학교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아이, 교통안전 봉사에 여념이 없는 사회단체 회원, 짧게 '빵'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는 나를 아는 사람인 듯하다.

어둑해질 무렵, 난 아침에 걸어왔던 이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거다.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계절별로 자연이 내어주는 내 출근길 운치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오늘 아침, 유심히 보아 두었던 붉은색 버찌가 내일쯤 검은색을 띠고 나를 기다리겠다.

덧붙이는 글 | 출퇴근 길의 추억 응모 글입니다.



태그:#출근길, #화천, #산천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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