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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똥배>의 재미있는 책 표지.
 <밀가루 똥배>의 재미있는 책 표지.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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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고기나 지방을 과다하게 먹지 않고,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 등은 가급적 피하며 되도록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그럼에도 뱃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매일 혹은 자주 먹는 국수와 빵 등 밀가루 음식이 주범일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을 해치는 밀'이라는 이 책의 소제목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책 <밀가루 똥배>(Wheat Belly)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심장병 예방학 분야의 의사인 저자가 수천 명의 환자에게 식단에서 밀을 빼도록 처방한 후 목격한 놀라운 결과와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한 임상실험들을 검토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현대 미국 사람들의 밀(가루) 소비가 비만과 당뇨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는 미국 사람들만큼이나 빵과 과자에 갖가지 면류 음식까지 즐겨 먹는 우리도 주목해야 할 내용이 많다.

물론 설탕이 듬뿍 든 탄산음료나 패스트푸드, 활동량이 적은 생활이 똥배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체중 증가를 초래할 만한 행동이나 음식에 탐닉하지 않고, 운동을 하며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뱃살이 안 빠지거나 체중이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밀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지방 축적 및 비만, 당뇨병과 밀의 관계를 세세하고 과학적으로 밝히면서 밀을 담배의 니코틴, 술의 알코올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유전자 조작으로 자연과 멀어진 현대 밀의 탄생

"밀가루가 정제되면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적은 식품이 된다. 거기다 식품산업의 발달로 좀 더 맛있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 건강에 좋지 않은 첨가물을 넣는다. 이런 밀가루 위주의 식사를 하면 급격하게 혈당이 상승하고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 분비가 정비례하게 늘어난다. 저혈당이 되면 식욕을 자극해서 더 많이 먹게 되고 혈당은 다시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복부비만'과 '당뇨병'이라는 덤을 얻는다."(본문 가운데)

밀은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의 식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밀은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곡물이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정제된 밀가루라고 한다. 옛 사람들이 빻아서 빵으로 만들어 먹던 양질의 밀은 더 이상 없다. 오늘날의 밀은 최저비용으로 최대생산을 지향하는 가공식품 업체들의 요구에 맞춰져 유전적으로 변형됐다. 그 결과 한때 훌륭한 양식이었던 밀은 빠르게 혈당을 상승시키고, 사람을 허기와 과식의 롤러코스터에 태워 중독되게 만든다. 즉 영양가는 없으면서도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비만율이 급증했다. 이는 유전자를 변형한 밀이 현대인의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한 때와 맞아떨어지는 시기다. '현대 밀'은 20세기 들어 인간의 편의에 맞춰 개발된 유전자 변형식품(GMO)으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악성식품'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밀을 원 없이 탐식해온 현대인의 뒤에는 먹고 또 먹도록 자극하며 생산성을 향상하고 이익 증대를 추구해온 식품산업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인에게 밀가루 과다 섭취는 더욱 나쁜 독이다. 한국인은 소화하기 힘든 형태인 정제된 밀가루를 주로 섭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도정 과정으로 영양 성분이 빠진 정제된 밀가루와 함께 식감을 얻기 위해 설탕·소금·기름 등 조미료가 다량 포함돼 있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밀은 대부분 저렴하게 대량생산한 수입산으로 농약·화학비료·표백제·방부제·보존제 등 몸에 좋지 않은 화학적 첨가제들을 많이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비만·당뇨병·지방간을 부르는 초강력 식욕 촉진제

"간단히 한 끼를 때울 생각에 동료들과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빅맥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이렇게 점심밥을 충분히 먹었는데도 자꾸만 과자나 쿠키로 손이 간다. 퇴근길에 노란 불빛이 켜진 카페에 들렀다.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샀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 없다. 후회가 밀려온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자꾸만 먹게 될까?"(본문 가운데)

"밀가루 음식을 끊었더니 열흘 만에 3kg이 빠졌어", "빵을 안 먹었더니 똥배가 쏙 들어갔어"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해도 꿈쩍하지 않던 체중이 밀가루 음식을 끊었더니 줄어들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밀가루야말로 우리를 살찌게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밀가루는 왜 우리를 살찌게 하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밀은 강력한 '식욕촉진제'다. 밀이 유발하는 고혈당과 인슐린 분비는 포만과 허기 충동의 사이클을 촉발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높아진 혈당을 낮추고자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양이 많아지면 다시 저혈당이 되고, 우리는 전보다 더 자주 허기를 느끼게 된다.

밀 음식이든 다른 음식이든 더 먹고 싶게 만든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금세 허기가 지고 자꾸 뭔가 먹고 싶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허기가 몰려올 때마다 왜 그렇게 저항할 수 없었는지 이해되는 부분이다. 신체가 저혈당의 위험에서 당신을 보호하려 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습관이 반복되면 지방, 특히 내장지방이 증가해 우리의 배는 미슐랭 타이어 광고 캐릭터처럼 불룩해진다. 내장에 지방이 쌓이는 지방 축적 혹은 밀가루 똥배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많이 먹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체중 때문에 고민스럽다면, 원인은 결국 밀"이라고 잘라 말한다.

밀은 비만의 주범만이 아니다. 설탕보다 혈당을 월등하게 증가시켜 당뇨병을 부르기도 한다. 밀가루로 만든 식품들은 대부분 혈당지수(GI)가 매우 높아 섭취와 동시에 혈당은 상승하며 고혈당 상태가 된다. 이때 자연스레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해 혈액내 당지수를 낮추는데 이렇게 고혈당·고인슐린이 반복되다가 결국 췌장의 능력이 떨어져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밀가루 자체 당지수는 55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밀가루 가공식품인 식빵(91), 바게트빵(93), 라면(73) 등은 당지수가 높다. 1981년 토론토 대학 연구팀은 흔히 건강에 좋다는 통곡물 빵의 혈당지수는 72로 사탕수수 등에 함유된 자당의 59보다 높다는 조사결과를 냈다. 초콜릿·설탕·캐러멜이 든 스니커즈바도 41에 불과했다.

아는 지인이 유방암 초기 증상 판정을 받아 요즘 병원에 다닌다. 담당 의사는 그녀의 식생활을 물어 보더니 매일 식사와 간식으로 먹는 빵과 라면, 국수를 당장 끊으라고 했단다. 미국의 자료지만 유방암에 걸린 여성의 80%는 매일 주식 혹은 간식삼아 빵을(식빵·머핀·베이글 등) 먹는 식습관을 가졌단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언급돼 있다. 밀가루 똥배에 축적된 내장 지방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계속 만들어낸다. 이 잉여 에스트로겐이 유방 조직의 성장을 자극해 유방암 위험을 무려 네 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똥배로 인해 에스트로겐이 높아진 남성이 여성처럼 가슴이 커지게 된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마약, 담배만큼 중독성이 강한 밀가루

밀이 유발하는 고혈당과 인슐린 분비는 포만과 허기 충동의 사이클을 촉발한다.
 밀이 유발하는 고혈당과 인슐린 분비는 포만과 허기 충동의 사이클을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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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밀이 명령하는 일정 및 습관을 따르는 밀의 노예다. 따라서 철저하게 밀을 끊는다면 단순히 식품 하나를 끊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내 삶에서 식습관과 충동을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강력한 식욕 촉진제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밀을 제거하면 평평한 배는 물론 자유를 찾을 수 있다."(본문 가운데)

책 후반부의 '밀과 작별하기' 편에서는 밀을 제거한 후 금단 현상을 극복하는 방법, 밀을 대체하는 여러 가지 음식물에 대한 소개와 조언, 요리 방법들이 담겨 '밀 끊기'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밀가루 없이 뭘 먹으라고!"라고 외칠 분들을 위해 밀가루를 쓰지 않은 다양한 요리 레시피도 소개한다.

저자는 밀가루 음식을 중단한 뒤 따르는 충격을 완화하려면 한 번에 밀을 끊기보다는 일주일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러나 밀가루 음식에 심하게 중독된 경우라면 단호하게 끊는 것이 좋다고.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두 병씩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하루 두 잔으로 양만 줄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밀을 끊는 시점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휴가 기간 일주일이나 휴일이 포함된 긴 주말 등 컨디션이 최고가 아니어도 좋은 때를 골라야 혼미함이나 나른함 없이 밀을 끊을 수 있다.

밀은 술의 알코올, 담배의 니코틴과 같다며 '밀과의 이별'을 권하는 지은이의 주장이 어느 정도 과학적 타당성을 갖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하면서 갈수록 늘어나는 유전자 변형 식품(GMO)에 대한 경고로 또는 적어도 열심히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해도 전혀 몸무게가 줄지 않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밀가루를 완전히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은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밀가루 똥배>(윌리엄 데이비스 씀 / 인윤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06.20. / 1만8000원)



밀가루 똥배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인윤희 옮김, 에코리브르(2012)


태그:#밀가루 똥배, #WHEAT BELLY , #윌리엄 데이비스, #인윤희, #밀가루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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