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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책 표지
 <투명사회> 책 표지
ⓒ 김무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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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국민 TV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MBC <무한도전>이 최근 '선택 2014'란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주춤거렸던 시청률을 다시 회복하고 있다. '선택 2014'는 무한도전의 멤버 중에서 무한도전의 향후 10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머지않아 있을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홍보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도 하다.

'선택 2014'는 무한도전의 멤버 모두가 후보로 출마했는데, 최근 있었던 중간 여론조사에서 노홍철 후보가 44%의 득표를 얻어 멤버 중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노홍철 후보가 내 건 공약은 성역 없는 투명한 방송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사생활이나 가족을 가감 없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노홍철 후보의 유세와 공약을 보면서 최근 출간된 한병철 교수의 <투명사회>가 떠올랐다.

투명사회와 포르노 사회

투명성은 아름다움의 매체가 아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미는 가리는 것과 가려지는 것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베일도 아니고, 가려진 대상 자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베일 속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대상은 베일이 걷히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중략) 오직 아름다움만이 가림과 가려짐 속에서 본질적이고, 아름다움 외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의 신적인 존재 근거는 비밀에 있다."

미는 필연적으로 베일과 가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노출시킬 수 없는 것이다. 가려진 것은 오직 가려져 있을 때만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 폭로는 가려진 것을 없애버린다.(49쪽)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를 여러 이름으로 치환해서 부른다. 책에서는 전시사회, 명백사회, 가속사회 등 여러 이름이 나열되는데 그 중에서도 '포르노 사회'라는 이름이 그 자극성 때문인지 가장 눈에 띈다. <무한도전> '선택2014'의 노홍철 후보를 보면서 <투명사회>가 떠올랐던 이유도 아마 이 포르노 사회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포르노 사회에 대해 서술하면서 포르노와 에로티즘을 구분한다. 포르노는 아무것도 중단되지 않고 충돌하지 않는 매끄러운 상태이자 의미가 명백한 상태이며, 에로티즘은 의미의 불명확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선택 2014'에서 노홍철 후보가 공약한 투명한 방송은 포르노적이다.

평소 언론이나 방송에 공개되지 않은 무한도전 멤버의 가족들은 현재 베일에 싸인 상태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혹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상으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노홍철 후보가 당선돼 무한도전 멤버의 가족들을 전시한다면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은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베일이 걷어진 무한도전 멤버들의 가족은 그 순간 가치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소위 투명한 방송이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한계에도 노홍철 후보는 시청자들에게 44%라는 의미 있는 득표를 얻었다. 시청자들이 투명한 방송이라는 공약에 호응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포르노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룸메이트> 등 여러 예능 방송에서 연예인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정치와 투명성

앞서 <무한도전> '선택 2014'는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홍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재미와 흥미의 요소를 가미해 재현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느낀 것은 웃음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슬픔이었다.

쇼핑은 토론을 전제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을 사면 된다. 그는 개인적 취향을 따른다. '좋아요'는 소비자의 구호다. 그는 시민이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시민을 시민으로 만든다면, 소비자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소와 시장, 폴리스와 경제가 하나가 되어버린 디지털 광장에서 유권자는 소비자처럼 행동한다.(208쪽)

한병철 교수는 책에서 투명성이 정치에 침투했을 때 정치는 쇼(show)가 된다고 설명한다. 정치인은 이제 대변자가 아니라 납품업자가 되고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한다. 어떤 가치관이나 신념으로 어떤 정치인을 자신의 대변자로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바뀐 것이다.

이는 <무한도전> '선택 2014'와 매우 닮았다. 무한도전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투표는 무한도전 멤버 간의 인기투표와 다름없다. 작금의 대한민국 선거 역시 각 정당의 인기투표 혹은 여러 연(학연·지연·혈연 등)에 의해 좌우되는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이나 인물이 걸어왔던 정치적 인생이나 공약 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정당이 좋아서 혹은 어떤 정당이 싫어서 해당 정당에 투표하거나 대척점에 있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정치인들은 혹여 자신들의 인기에 상처가 날까 두려워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납작 엎드려 이 사건이 빨리 잊히길 기도했을 것이다. 대통령 역시 장악한 언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꾸몄고, 모든 책임을 해당 선사와 선장에 뒤집어씌웠다. 안산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연출을 벌인 것이 국민들에 대한 쇼의 정점이었다.

신뢰 회복이 선결 과제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98쪽)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자신들의 대표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선 것은 결국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신뢰를 요구하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 마다 정치권은 감추기 급급했고, 이는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케 하는 큰 요인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선택 2014'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잃게 했던 시청자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한다. 시청률의 하락, 물의를 일으킨 멤버의 하차 등의 문제를 되짚어보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자는 의미일 것이다. 메인 MC 유재석씨가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느낄 수 있다.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 이러할진대 한 국가는 이보다 더 철저한 반성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수십 년간 쌓여온 적폐를 없애고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기를 인정하고 철저한 반성과 대안의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투명사회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투명사회>(한병철 씀 / 문학과지성사 / 2014. 3 / 12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http://picturewriter.tistory.com/), 알라딘 서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2014)


태그:#투명성, #무한도전,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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