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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탐욕이 부른 예고된 인재, 피해를 키운 무능한 대처, 오보와 왜곡, 망언으로 점철된 언론의 민낯은 피해 가족의 가슴에 매일같이 비수를 꽂는다. "치유를 말하기 전에 상처부터 주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오마이뉴스>는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는 피해 가족들의 아픔을 생생히 기록하는 한편, 진정한 치유 방안을 고민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21일 오후 3시 18분]

"한동안 괜찮았다. 괜찮다가… 작년부터 또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어제도 울었고 그제도 울었고, 그끄제도 울었다. 이유 없이 울었다. 오늘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한 번 울었고 목욕하다가 머리를 감다가 울었다. 내일부턴 괜찮아질 거다. 내일부터 그렇게 내년 7월이 되기 전까진 또 괜찮아진다." (2010년 7월 14일의 일기)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버스에 올랐던 단발머리 여고생은 한순간의 사고로 친구들을 잃었다. 열일곱이던 그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도, 스스로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있다.

부산 부일외국어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0년 7월 14일 수학여행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김은진(30)씨 얘기다. 그는 지난달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뒤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생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처벌이 죄책감"이라며 "살아 있는 사람도 돌봐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남겼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생사의 기로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 172명은 사망자와 실종자의 그늘에 가려 돌봄의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생존한 학생들은 제대로 된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과 위주 수업에 내몰렸고, 일반인 생존자들 역시 참사로 인한 정신적 외상과 함께 당장 생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에겐 일상으로의 복귀가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유족들 "프로그램도 학부모가 만들어" vs 교육청 "다양한 의견 받았을 뿐"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 학생들이 학부모와 함께 4월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세월호 생존학생들 합동 조문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 학생들이 학부모와 함께 4월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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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심리적 불안 상태를 보이고 있는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들이 최근 교과 수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2일 생존 학생들에게 교과 위주 수업을 시도했다가 학부모들의 반발에 밀려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존 학생 71명이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합숙 중인데, 이들을 위한 치유·회복·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21일 현재 합숙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4명은 각각 병원에서 치료(2명)를 받고 있거나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복귀(2명)했다.

그러나 생존 학생 학부모들의 설명은 달랐다. 생존 학생 학부모인 장아무개(45)씨는 "교육청 관계자가 가져온 프로그램 안에는 (치유·회복·적응 프로그램은 없고) 거의 교과목 중심 수업만 짜여 있었다"며 "아이들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데도, 교육청은 학교에 복귀시키려는 계획만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2일~14일까지 69명의 생존 학생들은 교육청 지침대로 국어·수학 등 6교시 수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는 "아이들은 근래 들려오는 자살 시도 소식에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며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등 위험한 상태"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씨에 따르면, 여러 학부모들이 화를 내며 반발하자, 그제야 교육청 관계자가 14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안을 다시 제시했다. 애초 경기교육청이 교과목 위주의 수업진행을 시도했지만, 학부모들 항의에 밀려 포기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씨는 이에 대해서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교육청도 처음 겪는 일이라 (대처방식을) 제대로 모른다"며 "학교에 아이를 믿고 맡겼는데 아이들이 죽어서 오고 상처 입어서 왔으면, 이제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사람만 바뀌고 여전히 그대로인 학교에 어떻게 아이들을 보내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원고로 파견된 방영호 경기교육청 장학관은 <오마이뉴스>의 확인 요청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교과 회복력을 키우기 위해 3주차에 교과(수업)를 다 넣으니 부담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미술치료 등 교과 연계 치유 프로그램을 넣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구체적인 상황을 묻자 "자세한 내막을 말하기는 어렵다, 회의 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아래 가족대책위)'의 유가족 대표들은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생존한 학생들의 (치유)프로그램은 교육청에서 만든 게 아니라, 학부모들이 답답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현 경기교육청 지원국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재 의료진과 상담전문가, 교육청 등이 치유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다만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은 학부모 등 다양한 의견을 받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이 입원했던 고대 안산병원의 윤호경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불안함이 사라지고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굳이 (학생) 본인이 (교과 수업으로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데 독촉해서는 안 된다"면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심해지지 않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학교 수업이 아니라 충분히 울분을 토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일반인 생존자, 생계대책 없고 심리치료도 알아서?

일반인 생존자들의 죄책감·우울증 등 심리적 외상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생존자 김아무개(50)씨는 "혼자 살아남은 게 죄인 같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죄책감이 든다고 호소했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지난 10일 경기 안산문화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 당시 사진.
▲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일반인 생존자들의 죄책감·우울증 등 심리적 외상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생존자 김아무개(50)씨는 "혼자 살아남은 게 죄인 같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죄책감이 든다고 호소했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지난 10일 경기 안산문화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 당시 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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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책이 미흡하기는 일반인 생존자 90여 명도 마찬가지다. 일반인 생존자들은 당시 사고로 인해 심리적 스트레스는 물론 생계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해양경찰청 등 관계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이들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인수(가명, 33)씨는 이번 사고에서 구조된 일반인 생존자다. 화물차 기사로 세월호에 탑승했던 그는, 16일 사고 당시 잠들어 있다가 배가 기우뚱하는 느낌에 눈을 떴다. 화물 컨테이너가 창밖 파도 위로 떠다니는 걸 보고 '큰일 났다'는 생각에 피신해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현재 몸도 마음도 성치 않은 상태다.

사고 당시 난간에 오래 매달렸던 탓에 어깨 인대 등 근육을 다쳤고, 밤에도 30분 이상 잠들지 못해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도 항우울제 등 약을 먹어야만 잠이 들지만 따로 치료 지원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은 없다. 생존자 다수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학생들과 달리 일반인 생존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나 화물기사의 경우 4.5톤의 화물차량과 장비 등 각기 손해액이 약5000만~1억여 원에 달하지만, 보험 처리가 될지 유무도 확신할 수 없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화물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최씨는 현재 시에서 지급하는 긴급생계비 60여만 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아직 못 찾은 사람도 있고, 애들도 많이 죽었는데 이런 말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렵사리 생계 이야기를 꺼냈다. 최씨는 "화물차 때문에 할부로 빌린 대출이자만 월 160만 원 정도라, 당장 다음 달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된다"며 "보상 문제는 어떻게 될지, 산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는지 방향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생계지원뿐 아니라 죄책감·우울증 등 심리적 외상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또 다른 생존자 김아무개(50)씨는 "혼자 살아 남은 게 죄인된 심정"이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죄책감이 든다고 호소했다. 최씨 또한 "왜 그때 아이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얘기하지 못했을까, 몇 번만 더 소리쳤어도 아이들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만 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사고 후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자다가도 벌떡벌떡 깬다"면서 "특히 감정기복이 심해져서 웃다가도 멍하니 있게 되고 눈물이 나고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은 실종자들을 찾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기관끼리 책임 떠넘기는 사이 두 번 우는 생존자들

경기 안산 지역에 피해자가 몰려 피해대책이나 회복지원 방안 또한 안산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다른 지역 생존자들은 필요에 따라 병원에 직접 찾아가야 한다. 심리지원을 전담하는 보건복지부가 준비한 일반생존자 지원책은 거주지 인근에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또는 상담전화 안내(129, 1577-0199)가 전부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문준상 사무관은 "일반인 생존자들을 지자체를 통해 파악하는 수준이라, 생존자 100% 모두가 치료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존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긴 하나, 아직 소재파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입원 중인 분들도 있어서 (심리치료) 지원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생존자 소재 정보를 해양경찰청 측이 가지고 있어 지원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해경 측은 "(승선자 목록이) 개인정보인 데다 공개를 원하지 않는 생존자 분들도 있어 목록을 넘기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보건복지부에서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시 제공하도록 공지해놓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일반인 생존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황재욱 순천향대병원 정신과 교수(전문의)는 "학생들이 한 곳에 모인 안산과 달리, 일반인 생존자들은 흩어져 있다 보니 치료나 지원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신적·심리적 외상은 일반인들도 학생들 못지않게 크다, (생존자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태그:#세월호 침몰사고, #단원고 학생, #생존자 지원대책, #일반인 생존자, #생존 화물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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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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