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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위말례 할머님
 68세,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위말례 할머님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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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보다 학교에 대한 기사를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위말례(68) 할머니는 자신보다 학교에 대한 소개를 해 달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며칠 전 지역 일간지에 소개된 위말례 할머니. 위 할머니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건 68세의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 때문이었다. 그 용기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 존경심마저 일었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다.

할머니가 사시는 광덕리 마을은 화천읍내에서 차량으로 40여분 소요된다. 그렇다고 두메산골은 아니다. 큰 고개를 넘으면 포천시와 연결된다. 오히려 읍내보다 수도권이 더 가깝다.

숲속의 작은 학교, 강원도 화천군 광덕초등학교를 소개합니다.
 숲속의 작은 학교, 강원도 화천군 광덕초등학교를 소개합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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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초등학교라는 간판이 걸린 학교는 교문이 보이지 않았다. 몇 달 전 어느 초등학교 풍경을 담기 위해 방문했던 한 학교. 흉물스럽게 커다란 자물통으로 교문을 굳게 잠가 놓았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어린 아이들의 동심마저 닫아 버린 듯했다. "교문을 잠가 놓았던데, 사립학교인가요?"는 농담에 '학교 운동장 보호를 위해서'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 위말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를 만나기 전 먼저 학교 스케치를 하기로 했다. 장독대, 산나물정원, 농장 등 산골마을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어느 시골 농가에 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사실 산골마을도 도시문화가 잠식하면서 고유의 특성을 잃어간다. 이를 염려해 이 학교에선 된장, 고추장, 간장 담그는 요령도 가르친다는 게 전날 담당교사로부터 (전화를 통해)들은 말이었다. 더덕과 곤드레, 산마늘, 당귀도 심었다. 이런 산나물은 아이들 식판에 올라간단다.

학교 뒤뜰 장독대가 이색적이다.
 학교 뒤뜰 장독대가 이색적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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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 않은 텃밭엔 고추, 상추, 오이, 참외, 아욱, 강낭콩도 심었다. 모종을 옮기도, 잡초도 뽑고, 수확을 해 보는 체험은 농민들의 이해와 더불어 살아있는 생생한 영농교육이란 것이 담당 선생님의 말이었다. 수확한 농산물은 모두 아이들 급식밥상에 올려 진단다.

"혹시 이 근방에 광덕초등학교에 다니는 위말례 할머니 집이 어딘 줄 아세요?"

무작정 찾아 나섰던 게 잘못이었다. 산골마을이기에 이름만 대면 바로 알 수 있겠거니 했다. 전날, 선생님은 '학교 앞 마을에 사신다'는 말을 했었다. 마을 안내소나 다름없는 구멍가게에 물어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노인정에 들어섰다.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다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서너 명의 할머님들은 낯선 젊은이(?)를 반겼다. '이말례?, 오말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님들께 정확한 성함을 말씀드리는데 족히 몇 분은 걸렸다.

"선생님 죄송한데, 어제 전화 드렸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위말례 할머니 집 좀 알 수 있을까요?"
"지금 학교에 오셨다구요? 헐~~~"

전화로 느닷없이 위 할머님 집을 묻는 내게 권명숙 교무부장 선생님은 황당한 상황을 '헐~'로 대신했다. '학교 인근에 사시는 선생님이 집에 계신지 연락을 해 보겠다'고 했다. 출타중이면 (본인이) 춘천에서 당장 들어오실 기세다.

"이곳에서 할머니 집까지 거리가 먼가요?"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 안내 선생님의 차량을 뒤따랐다. 조그만 다리도 건너고 갈대숲 사이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길 한참, 할머님 집에 도착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기준. 안내를 맡은 선생님도 이미 시골사람 다 되신 듯했다.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예습과 복습을 더 많이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위말례 할머님과 남편 김무영 할아버지
 오늘의 주인공 위말례 할머님과 남편 김무영 할아버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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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어느 기자분이 와서 물었을 때, 얼마나 쑥스러웠는지 몰라요. 오셨으니까 그냥 커피나 한잔 하고 가세요. 이 나이에 한글 배우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저랑 대화한다고 여기시고, 제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시면 돼요."

선생님과 학교자랑을 잘 써 달라는 할머니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 할머니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존경심이 들었어요. 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어요. 4남매 중 내가 막내인데, 부모님이 오빠들 셋만 학교에 보내고 나는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땐 시골 사람들이 다 그랬듯 여자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당연했고, 오빠들 책이라도 볼라치면 야단을 맞곤 했지요. 시집가면 그만인데 '왜 돈 들여 교육을 시키냐'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예요."

- 살면서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시겠다고 나선 동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을 모른다는 고충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살면서 어떤 간판에 쓰인 글자를 누구한테 물어본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 불편함이 더 컸어요. 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버스에 쓰인 행선지 글자를 몰라 어디 가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디 갈 때 '눈이 잘 안보여서 그러는데'라는 핑계를 대면서 묻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도 동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 학교에 입학을 결심하게 된 그 용기는 어떻게 내셨나요? 쉽지 않았을 텐데...
"이곳에 이사 온 지 이제 2년 정도 되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내가)한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면 창피할거다라는 생각 때문에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김무영 75세)가 교장선생님(박순권)과 교감선생님(이동식)을 만나 어떻게든 입학을 시켜 달라고 사정을 했던 모양이에요. 이런 경우가 없었으니 선생님들도 황당하지, 아마 교육부에도 물어보고 어떻게든 입학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성의 때문에 안 갈수 도 없고, 어쨌든 그렇게 된 거예요."

- 학교생활은 어떠세요? 또 어려운 과목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학교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이 너무 친절해요.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손을 잡고 뛸 때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고요. 아이들도 친할머니처럼 따르고, 걱정이 되는 건 진도가 떨어져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인데,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글을  쓸 때 받침이 자꾸 틀리는데, 아마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옮기려는 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수학은 정말 어려워요. 집에서 할아버지의 과외를 받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 초등학교 졸업 후 목표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거기까진 아직 생각 안 했고요. 어떻게든 졸업은 할겁니다. 욕심이 있다면 한글을 다 배운 후 손자 녀석들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휴대폰 메시지도 보내는 게 소망입니다.

학교 산나물 텃밭. 이곳에서 생산된 산나물은 급식 쌈채로 활용된다.
 학교 산나물 텃밭. 이곳에서 생산된 산나물은 급식 쌈채로 활용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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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할머님께서 그렇게 자랑하고 싶다던 학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우리 학교는 아이들 건강을 위해 유기농 급식을 하고 있어요. 학부모들이 와서 아이들을 위해 음식도 준비하고, 텃밭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급식 재료로 활용하구요. 간장과 된장 담그는 방법도 학습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전교생 영어노래 대회나 (난 아직 엄두도 못 내지만)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도 갖고 있답니다."

* 할머니 인터뷰 도중 만난 (할머니 남편이신)김무영 할아버지는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화가님이셨습니다. 다음 편 기사는 할아버지의 작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광덕초등학교, #위말례,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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