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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무릎 꿇고 애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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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달리고 있다.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뒤처진다.(중략) 모두가 달리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슬픔과 분노'가 사회적 화두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불신도 커지고 있다. 침몰 순간까지 승객들에게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모습에 정부와 언론이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호의 침몰 조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진보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원장 정태인, 아래 새사연)에서 펴낸 <분노의 숫자>(동녘)는 그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비정규직-사교육 많은 나라, 침몰은 이미 시작됐다

세월호 선장조차 임시직을 쓸 정도로 한국은 '비정규직 천국'이다. 2011년 현재 한국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3.76%로 OECD 평균(11.93%)의 2배에 이른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매년 두 달(325시간) 더 일하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208만 명에 이른다.

'부의 집중'이 부른 양극화도 심각하다. 중소기업 노동자 평균 월급은 130만 원으로, 대기업 노동자 357만 원의 1/3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노동자보다 137배나 많은 평균 52억 원을 연봉으로 가져간다.

10대 대기업 현금성 자산은 2006년 27조 원에서 2012년 123조 원으로 3.5배나 늘었지만, 기업 순이익이 2008년 171조 원에서 2012년 213조 원으로 25% 증가하는 사이,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37조에서 40조로 8%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기업 최고세율 인하 등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부자 감세' 덕분이다. 순이익 2억 원이 넘는 중소기업이나 4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가 똑같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아이들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가 곧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부모도 적지 않았다. 2010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1.2명으로, OECD 평균인 1.7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비싼 자녀 양육비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과 소득재분배 순편익.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과 소득재분배 순편익.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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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출생에서 대학 졸업까지 자녀 1인당 양육비가 평균 3억 1천만 원에 이르지만, GDP 대비 아동가족복지 지출 수준은 0.8%로 OECD 평균(2.2%)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 1위 수준인 민간 교육비 상당수는 사교육비다. 새사연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내 자녀는 사교육을 시켜야 하고, 다른 이들 모두 사교육을 시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시켜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이런 학구열 덕에 우리나라 교육열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할 정도지만, 정작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연세대·방정환재단과 유니세프 조사 비교, 2013년)는 학업 성취 등을 따지는 교육 영역에선 122.99점(OECD 평균 100점 기준)으로 가장 높았지만, 학교생활 만족도 등을 따지는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72.54점으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행동하지 않으면 '분노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

새사연이 쓴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분노의 숫자>
 새사연이 쓴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분노의 숫자>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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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맞먹는 청소년들이 매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을 준다. 지난 2010년 청소년(15~19세) 사망자 905명 가운데 자살 사망자는 289명으로 31.9%에 이른다(통계청 사망원인통계).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해 봤더니 자살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학업성적이 35.1%로 가장 높았고 가정불화 22.1%, 친구와의 갈등 13.5% 순이었다.

불안한 10대를 잘 넘긴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대학 등록금이다. '반값 등록금' 논란으로 드러났듯, 2013년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은 735만6천만원(대학알리미)으로 도시 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444만7000만원)을 뛰어넘는다. 빚더미를 안고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더라도 20대 청년 고용률은 55.8%(통계청 2013년)로 계속 감소 추세다.

이 책은 새사연 연구원들이 박근혜 정부 2년에 걸쳐 발표한 글과 인포그래픽을 하나로 모은 것이다. 그 노력 가운데 일부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한국 사회 분노의 숫자'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분노의 숫자'가 주문하는 건 '행동'이다. 정태인 새사연 원장은 "한국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분노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로 바뀔지도 모른다"면서 "이 책 역시 이런 현실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밝혔다.

"분노를 느꼈다면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대로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태그:#분노의 숫자, #세월호 침몰 사고,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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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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