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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를 취재한 KBS 38·39·40기 취재·촬영기자 40여명은 7일 오전 사내 기사작성용 보도정보시스템에 자사의 세월호 사고 보도를 반성·비판하는 글 10건을 올렸다. 글을 공개한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의 동의를 얻어, 10건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다만, KBS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글이라는 기자들의 뜻에 따라, 기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말]
ㄴ기자는 이날 오전 사내망에 올린 글에서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는 내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무게가 더해져 마음 편히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었다"면서 "더군다나 이런 비판의 메시지는 KBS 뉴스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글의 전문이다. 또한 다른 2명의 기자가 쓴 글 전문도 덧붙인다.

[반성합니다⑤] 팽목항 기레기의 울음

지난 며칠 동안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제가 들고 있던 KBS 카메라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혹시 기레기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써 취재현장에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기자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욕하는 기레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팽목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 없이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어느새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놓칠세라 촬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는 '뉴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카메라를 들이 댄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이 큽니다. 그러나 현장기자의 삐뚤어진 욕심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현장상황을 모른 채 내려진 취재지시 역시 많은 기자들을 부추겼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 24시 르포' 아이템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현장은 언론사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극에 치달아 있었고, 특히 취재 당일 오전에는 가족대책본부 인근에서 취재 중이던 영상특집부 선배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했습니다. 가급적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을 담지 않으려 노력했고, 녹취 역시 가족에게 직접적인 자극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취재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해당 취재계획은 취재가 완료된 이틀 뒤에 발제됐습니다. 하지만 당일 오후에 황당하게도 네트워크부에서 비슷한 내용의 '자원봉사자 발길 이어져' 취재계획이 올라왔습니다. 그 이틀 사이에 팽목항에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방문하여 현장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고 취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비슷한 성격의 두 아이템은 기존에 취재됐던 하나의 원본을 공유하고, 7시와 9시로 쪼개지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현장상황과 현장기자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부서간의 소통 부재, 무의미한 경쟁과 소모적인 인력 낭비로 리포트를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KBS 뉴스가 과연 누굴 위해 만들어지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템이 나가기 전 방송됐던 '실종자 가족 24시' 아이템이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려운 현장 여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취재해 준 기자들 덕분에 결국 실종자 가족을 섭외할 수 있었고 리포트는 완성됐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 있었다고 합니다. 단 1명의 실종자 가족으로 리포트 제작을 한다는 자체가 큰 도전이었고, 무엇을 얻고자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꺼내어 공개해야 하는 것인지. 편집회의의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이후 비슷한 아이템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 사연' 취재를 요구하는 주문이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 '사연' 찾아다니는 KBS 기자를 양산했고,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는 인력이 비슷한 아이템 두 개를 위해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취재 덕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생한 영상을 통해 사실을 전달하는 현장감, 한 컷의 영상으로 불러올 수 있는 파급력은 촬영기자로서 항상 긴장되는 요소였습니다. 현장을 영상에 그대로 반영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늘 고민하고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소위 얘기 안 되는 내용도 얘기되는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얻어낸 결과물을 가지고 자책한 것도 여러 번, 누구보다 이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손에 쥔 카메라가 요즘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는 내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무게가 더해져 마음 편히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비판의 메시지는 KBS 뉴스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내부적으로 이번 특보체제에 대한 성공적인 평가가 있어 더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성합니다⑥] 하루살이 고민, 저널리즘의 침몰

진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만 해도 수십 번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이왕 가는 거 뭐라도 의미 있는 보도를 해오고 싶다고. '의미 있는 보도'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정부 발표에 대한 받아쓰기식 보도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보도를 내가 구태여 반복하다가 돌아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더니 결국엔 스스로 하루살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뭐 하나 말 거 없나'만 생각하는 하루살이. 시야는 좁아지고 고민은 얄팍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또,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현장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지만 취재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어제와는 또 다른 영역을 취재해야했습니다. 이를 테면 하루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취재하고 다음날은 선체 인양 작업을, 또 다음날에는 시신 유실 방지 대책을 취재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취재원도 매일 바뀌었고 관련 지식은 쌓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 팩트'가 쏟아지는데 매일 다른 영역을 취재하려니 기존에 나온 기사들을 검색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데 급급했던 겁니다. 한정된 시간에 이렇게 얄팍한 취재만 하다 보니 기존 취재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기획 보도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기획보도를 못한 건 일차적으로 취재기자인 제 책임입니다. 뼈저린 자기반성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취재기자 운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두서없이 총을 쏘기 보다는, 취재영역에 따라 1~2,3진을 두고 한 분야만 파게 했다면 연속성 있는 취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겁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기자들이 일주일 넘게 진도에 머물렀지만 그 누구도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해도 핫라인이 없었고, 당연히 제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팽목항에서 둥둥 떠다녔을 뿐 취재기자로서 뿌리를 내리지 못 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숨진 학생의 휴대폰에서 복원한 영상을 타사에 넘긴 건 우연이 아닙니다. 뼈아픈 일입니다.

또, 현장 취재기자가 주로 경험이 부족한 38~40기로 짜인 것도 문제였습니다. 선배들은 '기사가 생물'이라고 합니다. 취재과정에선 야마가 180도 바뀔 수 있는 게 기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취재과정에서 언제든 상의할 수 있는 선배들이 있을 때 얘기입니다. 1~2,3진 체계가 없다보니, 혼란스러운 취재현장에서 막내급 기자들은 혼자 고민하며 끙끙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데스크에게 전화를 거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데스크는 바빴습니다. 이렇다 보니 주로 총을 맞고 아이템을 취재했던 40기들의 마음고생이 특히 컸습니다. 물론, 현장에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중견급 선배들이 있었지만, 각개약진해야 하는 시스템에선 선배들도 이래라 저래라 한 마디 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인력은 많았지만 따로 뛰는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꼭 세월호 취재 현장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문젭니다. 취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신문 조간이나 석간에서 제목을 따와 제작하는 '앉은뱅이' 발제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지금 시스템에선 어찌 보면 불가피합니다. 과연 뭐가 옳은 것일까요. 지금처럼 아이템을 최대한 늘려서 그 수만큼 취재를 할당하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아이템 수를 줄이더라도 취재기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현장에 머물게 하고 거기서 의미 있는 아이템을 건져 올리게 하는 게 옳을까요. 뭐가 장기적으로 우리 뉴스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요. 그 답은 이미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 다 나온 거 같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성합니다⑦] "눈물을 찍지 마세요, 눈물을 닦아 주세요"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가 진도 실내 체육관으로 정해진 뒤, 기자들은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산사람 죽은 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이야기 되는 사연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었습니다. 우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녹취를 따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아들 살아 있으니 제발 '구조'를 해달라고 할 때, 기자들은 사연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1층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향한 곳은 체육관 2층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어떤 기자는 중계를 탔고, 사진을 찍었고, 촬영을 했습니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실종자 가족들의 24시간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됐습니다. 나중에는 가족들이 2층 구석진 곳으로 잠자리를 옮기더군요. 2층에서 바라보는 실종자 가족들.. 그게 딱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KBS의 시선이었습니다.

"인터뷰 해봤자 마음대로 편집할 건데 뭐하러..."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말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는 정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보내지 않았고, 그들이 진짜 언론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에는 관심 있는 척만 하다가 정해진 야마에 맞는 녹취만 잘라 그렇게 10초를 맞췄습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매일 보도정보시스템에 업데이트 되는 세월호 관련 연락처 어디에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과 관련된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리포트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하더군요. 한참을 고민해봐도 저는 아직까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들 기사에 달리는 KBS를 향한 악플과 SNS 글들은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난 4일 이런 아이템이 발제된 적이 있습니다. <검증 안 된 무책임한 보도… 수색 작업 혼선과 가족 혼란 자초>.

JTBC와 이상호 기자가 실종자 가족들을 선동하고, 검증되지 않은 다이버를 인터뷰해 실종자 가족들의 환심을 사면서 오히려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불렀다는 겁니다. JTBC와 고발뉴스가 추측성 보도로 수색 작업에 혼선을 부르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는 지적도 함께요. 그것도 40기 후배에게 던져준 아이템입니다. 저는 정말 후배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가족들이 왜 누군지도 모르는 잠수사 한 명과 다른 언론사의 기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그동안 재난재해 주간 방송사라던 우리가 했던 것들을 생각했더라면, 이런 아이템 발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현장에 기사가 있다'고들 하죠. 우리가 공영방송의 기자로서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바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일 겁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태그:#KBS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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