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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의 여파로 공연예술계의 시름이 깊다. 웃고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의 합의로 인해 브라운관에서 웃음기 도는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영화관과 공연장은 한기가 돌고, 각종 축제들은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도 인천시 부평구 부개1동에서는 자그마치 마을축제가 치러졌다는 소식이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이후 목한시)가 벌인 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것을 보노라니 어느샌가 시름이 저만치 달아나 흥겨운 행진에 사위를 맞추게 됐다.

'골목골목 넘실넘실 사랑방 가는 길' 4월 공연 열려

목한시의 공연은 플레이백씨어터(Playback Theater)를 근간으로 하는 즉흥연극이다. 꿈, 외로움 등 여러 테마를 갖고 각지의 관객들을 찾아가는데 연령 불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즉석에서 연극으로 보여준다. 4월 25일 오후 7시 30분, 부개문화사랑방에서 어린이 관객들과 만난 공연 제목도 <별별 외로움>이었다. '혼자가 되어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이 외로움의 말뜻이다. 외로움 앞에 장사 있을까, 아이들의 주된 외로움거리는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방과 후에 친구들하고 같이 놀기로 했는데 둘이 먼저 가버려서 저만 남은 거예요. 그때 외로웠어요."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의 그림일기가 다른 관객들에게 보여지고, 배우들은 각기 이야기의 주인공, 친구 1과 2, 그리고 갖가지 캐릭터로 분했다. 혼자 남은 운동장에 부는 쓸쓸한 바람, 동상조차 무섭게 보이는 순간의 느낌... 배우들은 상황을 마임과 대사로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엄마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이 외로움의 순간도 결국엔 지나간다는 것도 보여준다.

1시간 정도의 공연 동안에 네 다섯 명 관객의 사연이 무대위에 올려진다.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아이들로 객석에 불이 들어온 순간은 활기차다. 굳이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도 극장 안에 가득한 공감으로 인해 모두가 위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 즉흥연극의 매력. 함께 온 어른들도 미소를 머금고 지켜볼 수 있는 공연이기에 그렇다.

어린이 관객들이 입장하면서 쓴 그림일기가 보여지고, 배우들은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연극으로 보여준다.
▲ '별별 외로움'의 한 장면 어린이 관객들이 입장하면서 쓴 그림일기가 보여지고, 배우들은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연극으로 보여준다.
ⓒ 부개문화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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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다시 부개문화사랑방에 모였다. 이튿날 거리축제를 위해서다. 공연장 건물에 있는 부개1동주민센터부터 부개초등학교 앞길,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놀이터 마분공원까지가 축제 구간. 이곳 거리에 깃발이 내걸리고 목한시 단원들과 이들의 친구, 초청 공연팀이 곳곳에서 공연을 했다. 노란 비옷을 입은 삐에로는 즉흥 마임 공연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동형 주크박스에서는 신청한 음악과 음료 한 잔이 서비스되었다.

어르신 관객이 많은 놀이터에서는 기타 반주에 맞춘 트로트가 울려퍼지고, 치유음악가 봄눈별의 인디안 피리 소리가 청명하다. 한켠에 종이쇼핑백을 이용한 탈 만들기 부스도 열렸다.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분주한 아이들의 입가가 모처럼 귀에 걸렸다. 골목 안쪽에서는 하피드럼 소리에 맞춘 춤 공연이 이어지고, 턱시도를 빼입은 마임이스트 오쿠다 마사시의 '비눗방울 마임'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최고의 인기를 끈 오쿠다 마사시의 공연. 갖은 크기의 비누방울이 하늘을 날고, 아이들의 마음도 춤을 추었다.
▲ 비눗방울 마임 최고의 인기를 끈 오쿠다 마사시의 공연. 갖은 크기의 비누방울이 하늘을 날고, 아이들의 마음도 춤을 추었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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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이날의 하이라이트, 행진이 시작되었다. 삐에로를 필두로 공연자들과 아이들, 스탭들이 줄을 지어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노래도 부르고, 잠시 멈춰서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젬베(북 비슷한 아프리카 악기)와 기타 소리가 흥을 돋운다. 마지막 시 낭송과 마임으로 행사가 끝났지만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다.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할머니들도 있고, 술 취한 아저씨가 무대에 들어오는 등 예측 못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작은 것에도 반응해주고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에 더 재밌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쉬웠던 점들은 보완해서 7월에 다시 만나고 싶어요." (삐에로 '슬렁이'를 연기한 목한시 단원 현수)

축제의 일환으로 그려진 벽화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 퍼레이드 마지막 축제의 일환으로 그려진 벽화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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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부터 간간이 작업한 벽화와 어울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로 인해 한산하던 거리는 잠시 활기를 띠었다. 찾아오는 관객들만 만나는 극장 공연과 달리 야외 공연은 변수도 많지만 직접 찾아가 그곳 사람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물이 되기도 한다. 인천 현대시장, 옹진군 덕적면에 이어 목한시가 인천을 찾은 것은 벌써 세 번째. 부평에서도 낙후한 곳으로 꼽히며 동네에 문화공간이 있어도 도통 찾을 여유가 없는 이곳 주민들에게 작은 선물이 된 것 같아 기쁘단다.

공연진은 '7월의 푸른 그믐', '9월의 붉은 나무' 축제를 기약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청소년들이 대상인 7월 16일(수) 저녁 6:30, 7월 17일(목) 밤 9시부터 거리공연이 열린다.

덧붙이는 글 | * 이 공연과 축제는 부개문화사랑방,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열린다. 자세한 정보는 thursday1pm.tistory.com에서 볼 수 있다.



태그:#목한시, #즉흥연극, #거리공연,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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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하셨습니까>를 썼고 인권, 여성 분야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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