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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개인적으로 4월의 시작은 설렘이었습니다. 숙지원을 가득 채운 수선화 튤립 순백의 자두꽃…. 봄 농사에 대비한 텃밭 정리, 한편으로는 여행을 위한 준비, 그리고 열흘 가까이 터키 풍경을 감상했던 봄날은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16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들었던 참사 소식. 글로 남기고자 했던 여행은 기억조차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슬펐습니다. 꽃이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웃는 모습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4월이 다 가도록 앓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침몰. 승객들보다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던 해양경찰과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배 안의 어린 학생들이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던 정부. 수없는 말 바꾸기, 국민을 모욕하고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말들, 표정 없이 지나갔던 대통령, 우왕좌왕했던 총리, 숨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족들 곁에서 라면을 먹었던 장관,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닌데"라며 그런 장관을 두둔했던 청와대 대변인…. 그럼에도 이 와중에 사퇴한다고 도망치는 총리, 선장을 살인자로 몰라가면서 책임자 처벌만을 지시하는 대통령. 모욕을 당하고 발길에 채인 심정이 이런 것일까요?

죽음이 현실일 수 있다는 불안과 강박이 지배하는 나라, 사람을 생각하기보다는 돈만 챙기면 된다는 천박한 사고를 조장하는 나라, 원칙도 기본도 없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아이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jtbc가 공개한 한 학생이 죽어가면서 남긴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이상함을 감지하면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에 "예…!"라고 합창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던 학생들. 그런데, 그런데…! 그 시간에 최후까지 승객을 구조하고 배를 지켰어야 할 선장은 물속에서 비상구를 찾아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속옷 차림으로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짓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양경찰은 그런 선원들을 먼저 구조하고 그런 동영상까지 감추다가 뒤늦게 공개했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을 감싸는 행위라는 설명밖에 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더구나 선장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재운 해양경찰 직원도 있었다지요?

시간이 갈수록 감추려했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시 29일, jtbc 9시 뉴스는 죽은 학생의 유품에서 또 다른 마지막 동영상을 찾아냈다고 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시간이라는 데는 그냥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그럼에도 말을 뒤집고 뭔가 감추기 위해 급급했던 정부 관계자들. 자신의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유체이탈 화법만 일삼는 대통령. 거기에는 법과 원칙도 없었고 국민 행복 시대도 없었습니다.

마치 174명을 구조한 것만으로 책임을 다 한 것처럼 뻔뻔한 태도였습니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에게 죄책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사과했다더군요. 대통령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얼마만큼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사실적인 증거를 보여주는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민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썼을 것이라고 봅니다.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미안하고 불안했습니다. 주검이라도 찾은 가족들이 떠난 자리에 실종된 자식을 기다리는 남은 가족들의 비탄과 절망 그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을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런 가족들을 차마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많이 망설였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달려간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진도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제(5월1일) 아내와 함께 진도를 다녀왔습니다. 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곳에 차려진 분향소에 들려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대로 체육관 바닥에는 군데군데 유가족들이 모여계시더군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난민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유가족들에게 텐트라도 제공하여 최소한의 가족 공간을 만들어 줄 수는 없었던 것인지! 체육관 주변에 즐비한 수십 동의 텐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파제 난간에 나부끼는 기다림 기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   
아팠습니다.
▲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나부끼는 기다림 기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 아팠습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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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풍경은 텔레비전에 보았던 대로였습니다. 거대한 촌락을 이룬 수백 개의 텐트들, 그 텐트 안에서 도움 요청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곳을 지키는 경찰들, 수많은 기자들과 언론사 차량들, 멀리 보이는 헬리콥터, 부두에 닻을 내리고 쉬는 배들…. 그리고 텐트 안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절규들!

망망한 바다에 비탄과 절망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차마 선착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등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습니다.

천막 성당을 찾아가 모처럼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신부님은 강론 대신 최초로 신고전화를 했다는 최덕하(요한) 학생의 어머니가 쓴 편지글을 낭독하셨습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제된 눈물, 떠나간 자식에게 다른 죽은 이들을 부탁하는 어머니의 마음. 떨리는 신부님의 음성, 그리고 숨죽이며 훌쩍이는 소리. 평소 기원은 하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을 버리고 미사가 끝날 때까지 오직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앉아 혀를 비틀면서 숨을 죽였습니다.

오후 4시 45분 먼저 인양된 자녀들의 장례를 치른 가족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팽목항에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흐느끼며 아들딸을 살려내라는 절규는 어디까지 들렸을까요? 아마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부모들의 심정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부모들을 "미개하다!"했던 인간들은 어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까요?

5월도 이틀째 저물어갑니다. 세월호에 갇혀 차오르는 물에서 살겠다고 발버둥 쳤을 아이들을 다시 생각합니다. 인양된 아이들의 시신은 벌써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랍니다. 밝게 웃으며 떠났던 자식을 떠올리는 부모들이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요? 그 부모들의 비탄과 절망을 생각하면 제 가슴에도 서러움이 차오릅니다.

아직 찾지 못한 아이들 모두가 빠른 시간 내에 가족들의 품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의 영혼이 좋은 곳에 가기를 기원합니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들과 마음이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 말씀밖에 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

개인적인 의견 몇 가지를 첨부합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옷이라도 갈아입고 지친 몸을 잠시 쉴 수 있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우선 당국에서는 체육관 내부에 남은 가족들에게 등산용 텐트라도 제공하여 가족만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방법도 검토했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또 체육관 바깥의 중복된 기능의 텐트들도 통합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도의 사고 해역의 어민들은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 피해도 크다는 소식입니다. 진도읍은 경기가 죽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하소연도 들렸습니다. 정부는 진도를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으면 주민들의 생활도 살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는 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갔는지…, 그 책임을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겠습니다. 인양 작업을 하시는 이름 없는 분들의 노고를 치하 드리며 무사고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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