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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에 의해 세상의 빛도 못본 채 사라져 간 태아령.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어린 학생들과 너무 닮았다. 보성 대원사 풍경이다.
 타의에 의해 세상의 빛도 못본 채 사라져 간 태아령.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어린 학생들과 너무 닮았다. 보성 대원사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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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고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 애가 타는 마음에 텔레비전을 켜도 구조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분노가 치민다. 텔레비전을 보고만 있기도, 그렇다고 안볼 수도 없다.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날 수가 없다. 봄바람이라도 호흡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무작정 차를 몰았다. 지난 23일이다. 어디로 갈까? 지난 번 벚꽃 피었을 때 찾았던 천봉산 대원사가 떠오른다. 세월호에 몸을 맡겼던 학생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태아령(胎兒靈)과 너무 닮아서다. 태아령은 부모와 인연을 맺고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피붙이들이어서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차창 밖 풍경도 슬픔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암호도 바닥을 드러내 황량하다. 물속에 잠겼던 마을의 옛 다리도 앙상한 뼈대와 속살을 드러냈다. 세월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승선자 가족들의 속마음 같다.

보성 대원사 가는 길. 계곡을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풍수지리상 어머니의 자궁을 따라 가는 탯줄에 해당한다. 이른바 대원사 탯줄길이다.
 보성 대원사 가는 길. 계곡을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풍수지리상 어머니의 자궁을 따라 가는 탯줄에 해당한다. 이른바 대원사 탯줄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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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가는 길. 길섶에 노란 피나물이 많이 피어 있다. 줄기를 꺾으면 빨간 핏물 같은 게 묻어난다고 해서 피나물이다.
 대원사 가는 길. 길섶에 노란 피나물이 많이 피어 있다. 줄기를 꺾으면 빨간 핏물 같은 게 묻어난다고 해서 피나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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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백민미술관에 차를 두고 절집으로 가는 벚나무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풍수지리로 볼 때 대원사가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고 이 길이 탯줄이라고 해서 '대원사 탯줄길'로도 불린다. 활짝 핀 벚꽃으로 해마다 많은 여행객들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선 벚나무가 연둣빛 이파리를 틔우고 있다. 화사했던 벚꽃은 다 떨어지고 없다. 길거리에 내려앉은 꽃의 흔적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간 세월호의 희생자들 같다. 화사한 봄날씨지만 마음은 그늘 뿐이다.

오른편 산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빼곡하다. 길섶에는 민들레, 자운영, 별꽃 지천이다. 산자락에 취나물과 곰취, 곤드레도 보인다. 듬성듬성 심어진 영산홍과 철쭉, 자목련도 꽃을 피우고 있다. 노란 꽃을 피운 피나물도 무리지어 있다. 꽃대의 줄기를 꺾으면 핏물 같은 게 묻어나는 산나물이다.

피나물 군락을 지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진도의 상황을 검색해 본다. 여전히 생존자 구조소식은 없다. 주검만 계속 끌어올려져 사망자 수가 크게 늘었을 뿐이다. 가슴만 먹먹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돌을 깎아서 만든 솟대. 세월호의 아픔을 아는지 돌솟대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보성 대원사에 있다.
 돌을 깎아서 만든 솟대. 세월호의 아픔을 아는지 돌솟대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보성 대원사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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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의 태아령과 한꽃문. 한꽃문은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다.
 대원사의 태아령과 한꽃문. 한꽃문은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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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걸었다. 연둣빛을 머금은 산하에 대한 느낌도 무디다. 1시간 넘게 하늘거렸더니 대원사에 닿는다.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503년) 때 신라 고승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절집이다. 백제의 절집을 신라 고승이 지었다는 게 조금은 어색하게 다가선다.

절집 앞에서 수련 가득한 연못이 반긴다. 단군왕검의 눈을 본떠 만든 아사달영지다. 아직 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인적도 드물다.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숨과 절망,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실낱같은 희망은 커녕 체념만 읽힌다.

연못가에 솟대가 서 있다. 돌을 깎아 만들었다. 새의 눈가에 눈물 같은 게 맺혀 있다. 울고 있는 작은 새에 '기적'이라는 소망을 실어 하늘로 날려본다. 솟대가 소원을 들어줄 것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우리는 한꽃'이라 새겨진 한꽃문도 별나게 생겼다.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꽃잎이 서로 엮여 꽃송이를 이루듯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홀로 피지 않는 꽃송이처럼 우리의 삶도 많은 인연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천봉산 대원사로 들어가는 문. 독특한 분위기의 절집 대원사는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다.
 천봉산 대원사로 들어가는 문. 독특한 분위기의 절집 대원사는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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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의 부모공덕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어머니불의 모습이다.
 대원사의 부모공덕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어머니불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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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겨 들어간 절집도 고요하다. 불경소리가 적막을 깨뜨릴 뿐이다. 나무아미타불을 따라 외우며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절집 마당이 아이들 놀이터라도 되는 양 아기자기하다. 수련을 심어놓은 고무 화분도 군데군데 놓여 있다.

극락전으로 가는 길에 부모공덕불(父母功德佛)이 보인다. 부모에 대한 불효나 원망을 뉘우치고 그 은혜에 눈뜨게 해준다는 불상이다. 성철 큰스님의 말처럼 '집안의 부처님'인 부모를 모신 불상이다. 앞의 불상이 아버지불이고, 뒷면이 어머니불이다.

아버지불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자국이 선명하다. 어머니불은 맺힌 게 많은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내 부모를 뵌 것처럼 마음이 애달프다. 가슴 속이 숯덩이로 변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의 부모를 만난 것 같아 애처롭다.

대원사의 왕목탁. 손이 아닌, 머리로 치는 목탁이다. 나의 원수 잘 되라고.
 대원사의 왕목탁. 손이 아닌, 머리로 치는 목탁이다. 나의 원수 잘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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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목탁을 매달고 있는 연인목. 사철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맞잡고 서 있다.
 왕목탁을 매달고 있는 연인목. 사철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맞잡고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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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에 걸린 왕목탁도 눈길을 끈다. 사람의 머리보다도 두세 배는 더 커 보인다. 손이 아닌, 머리로 치는 목탁이다. 남이 나에게 했던 나쁜 말이나 행위를 용서하면서 나의 원수 잘되라고 치는 것이다.

왕목탁을 매달고 있는 사철나무도 크고 오래됐단다. 두 그루가 가지를 맞잡고 터널을 이룬 '연인목'이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한꽃'이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부처님 발 조각상을 지나 극락전 앞마당에 들어선다. 석가탄신을 앞두고 연등을 내거는 작업이 한창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의 생환을 비는 간절함으로 마음속에 연등 하나를 걸었다.

돌담에 기대앉은 태아령. 태아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낙태아를 상징하고 있다. 보성 대원사 풍경이다.
 돌담에 기대앉은 태아령. 태아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낙태아를 상징하고 있다. 보성 대원사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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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의 품에 안긴 태아령. 태아령은 여기서 지장보살을 어머니 삼아 한을 풀고 다시 태어날 것을 준비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품에 안긴 태아령. 태아령은 여기서 지장보살을 어머니 삼아 한을 풀고 다시 태어날 것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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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으로는 태아령을 상징하는 동자상이 줄지어 있다. 태아령은 세상을 보지도 못한 낙태아를 일컫는다. 빨간 털모자를 쓴 태아령이 지장보살을 어머니 삼아 한을 풀고 다시 태어날 것을 준비하고 있다.

동자상을 감싸고 있는 돌탑은 부모들이 참회의 뜻으로 쌓은 돌무덤이다. 절집 마당이 유치원의 놀이터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것도 태아령을 배려해서다. 자신을 지킬 힘도, 권한도 없었던 태아령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태아령이 세월호에 갇혀버린 어린 학생들과도 많이 닮았다. 애잔하던 마음에서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다시 들여다본다. 여전히 생존자를 구조했다는 소식은 없다. 2014년 4월의 하루가 또 속절없이 지나간다.

남을 바꾸려면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대원사 극락전과 어우러진 글귀다.
 남을 바꾸려면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대원사 극락전과 어우러진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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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을 앞둔 대원사 풍경. 여느 절집보다 단정하고 분위기도 독특한,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다.
 석가탄신을 앞둔 대원사 풍경. 여느 절집보다 단정하고 분위기도 독특한,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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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송광사(주암) 나들목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보성 방면으로 간다. 서재필기념공원 앞에서 우회전해 문덕교와 죽산교를 건너면 대원사 입구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태그:#대원사, #태아령, #왕목탁, #부모공덕불,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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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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