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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나 산타 행렬
 세마나 산타 행렬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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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나 산타네~"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 성주간)'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스페인 남부 세비야 토박이 카르멘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너도 세마나 산타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사실 내가 카르멘에게 '너도'라고 물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세마나 산타'에 환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마나 산타'는 스페인의 대표 축제이고 이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지만, 모두 똑같은 모습과 마음으로 행사를 대하진 않는다.

세계 각국에서 무수한 관광객이 이 기간 스페인을 찾지만, 일부 사람들은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세마나 산타의 분위기가 싫다며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바닷가로, 시골로 피난을 간다. 반면 일주인간의 행렬 가이드북을 들고 매일 매일 장소를 옮겨 행렬을 기다리며 거리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도 많다. 그뿐인가? 신도들은 거의 1년을 이 주간을 위한 준비에 쏟고, 행렬에 참여한다.

그야말로 도시가 하나의 무대처럼 변하는 일주일 동안 각자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낼까. 그 속의 이야기가 궁금해 살짝 들어 보았다.

세마나 산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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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행렬 시간표와 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보통 이 기다림은 2-3시간씩 이어진다.
 각 행렬 시간표와 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보통 이 기다림은 2-3시간씩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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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행렬 시간표와 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보통 이 기다림은 2-3시간씩 이어진다.
 각 행렬 시간표와 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 보통 이 기다림은 2-3시간씩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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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나 산타는 가톨릭 주요 축제로 일요일 종려 주일을 시작으로 고난주간, 부활절로 이어지는 행사이다. 각 성당이 예수와 마리아 상을 들고 행진하는데 이를 파소(paso)라고 부른다. 신도들은 이 행렬에 밴드(행렬의 관악대), 나사레로(십자가를 들거나 초를 들고 행렬에 참여, 성당의 규모에 따라 600여명에서 3000여명까지 그 수가 다르다.

20여년 전만해도 여성들이 나사레로로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많은 여성 나사레로들이 있다), 코스탈레로(파소를 아래에서 드는 사람들, 각 파소는 거의 1500kg이 넘어 1인당 감당하는 무게가 40kg이 넘는다고 한다. 한 시간 마다 교대를 한다)로 참여하며 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각 성당에 50유로 정도의 금액을 기부하게 되어 있다.

"세비야와 세마나 산타는 하나"

지난 13일(현지시각) 종려 주일, 본격적으로 성주간 행사가 시작되는 날, 한 성당 앞에 두 아주머니가 마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 성당 친구라는 그녀들은 얼핏 보아도 세마나 산타가 시작된 것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톨릭 종교의 분위기 안에서 자라서 항상 보고 참여하며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세마나 산타는 내 삶이야. 그것은 삶이고, 축제이고, 이제는 어느 정도 향수이기도 해."

차리(54·여)씨는 자신의 세마나 산타 사랑을 피력했다. 이에 친구 인마(54*여)씨는 "세비야와 세마나 산타는 하나지, 한 주간 동안 거리는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잖아"라고 말했다. 세마나 산타 때 뭐라고 인사를 나누냐고 묻자, 문장 하나를 가르쳐 준다.

"당신의 고통이 좋은 안식처에 머물기를..."

17세 소년의 성숙한 신앙고백 "신앙이 제 삶이죠"

북을 맨 채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한 젊은 친구를 불러 세웠다.

"밴드인가 봐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돌아본 그는 17살의 호세 마누엘, 세마나 산타 행렬에서 밴드를 맡고 있는 학생이었다.

"행렬에 참여한 지는 5년 정도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세마나 산타를 봐 오고 부모님과 함께 참여해왔기 때문에 항상 나도 그 행렬에서 연주하고 싶은 것이 꿈이었어요."

세마나 산타 참가자들은 보통 1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준비하는 데 쏟는다. 이런 과정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앙이 삶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행렬시간 다 돼 바쁘다며 종종 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는 그. 나이에 비해 너무 진지한 그의 답변이 사뭇 어색하면서도 진솔해 보였다.

밴드로 참여하는 호세 마누엘과 세마나 산타 밴드 모습.
 밴드로 참여하는 호세 마누엘과 세마나 산타 밴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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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로 참여하는 호세 마누엘과 세마나 산타 밴드 모습.
 밴드로 참여하는 호세 마누엘과 세마나 산타 밴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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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픔의 유일한 위로…매일 매일이 우리에게 세마나 산타."

보통 행렬에 참여하는 나사레로는 성당까지 가는 길에 나사레로 복장을 하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골목에서 나사레로 복장을 손에 들고 걸어가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몸이 안 좋아서 오랫동안 나사레로 옷을 입고 있기가 힘들어."

올해 59세가 된 레예스씨는 20년 간 매년 나사레로로 성당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특별히 참여하는 이유가 있으냐고 묻자 "내 막내딸이 암이고, 손녀도 아파, 나도 이렇게 몸이 좋지 않고…"라며 웃는다. 미리 성당에 도착해 있던 큰딸과 아들은 최근 몸이 부쩍 안 좋아진 어머니가 걱정인 듯했다.

"우리에게는 매일매일이 세마나 산타야.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지. 그냥 삶이야.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몸이 안 좋다면서도 성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레예스씨의 뒷모습은 꽤나 벅차 보였다.

레예스 아주머니와 나사레로 모습
 레예스 아주머니와 나사레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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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삶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진심

처음 스페인에 와서 세마나 산타를 보았을 때 그 이색적인 풍광에 놀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나 역시 이 기간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나도 세마나 산타 행사의 표면만 보고 너무 가톨릭적인 행사라며 비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행사에 깊이 참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개인의 진심까지 비판하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한 나사레로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50여년은 족히 넘게 이 행렬에 참여했을 그의 손에서 그의 인생이 느껴졌다. 시끌벅적하게 도시를 채운 이 거대한 행사의 표면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의 한 모습을 통해 이 행사를 바라본다면,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태그:#세마나산타,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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