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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그랬듯 요즘 아이들도 소풍 전날이면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다르다. 소풍 전날이면 잠 못이루는 이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직장맘이 작아지는 그 순간, 소풍날 김밥 싸기

수학여행 버스안에서 한껏 폼을 잡은 녀석.
 수학여행 버스안에서 한껏 폼을 잡은 녀석.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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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02동 601호 앞. 놀이방 선생님 품으로 옮겨 안겨진 남자 아이가 발버둥을 치며 운다. 한껏 벌린 입에서는 쇳소리와 비슷한 신경질적이면서 거친, 애받친 울음소리자 흘러 나온다.

매일 아침이 그랬다. 태어나 18개월 된 아들은 선생님 품에 가면서부터 발버둥치며 울어제낀다. 그런 아들을 뒤로하고 나는 매몰차게 뒤돌아선다. 직장으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온 몸과 마음이 맞추어진 상태인지라 직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버둥치며 울던 아들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자동 포맷이 된다.

당시 내 직장은 웨딩포토, 웨딩드레스, 웨딩메이크업 등을 하는 토탈 웨딩스튜디오였다. 다시 말하면 토요일, 일요일 하물며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해야 했다. 관리자가 되고 나서는 일주일에 하루 쉬는 평일 하루도 온전히 쉬지를 못했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일을 했고, 그런 나는 얼마되지 않는 기간 안에 만족감을 얻을 정도로 직급이 올랐다. 그럴수록 집안에서는 엉망진창 엄마가 되어갔다. 두 개를 다 잘하는 여성도 있다고 하던데, 난 그렇지 못했다.

어찌보면 그 치열한 직장보다 '집'이 더 치열했다. 우리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서 비상식량을 먹듯 밥을 먹고, 살아남기 위해 잠을 자고, 살아남기 위해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일찌감치 철이 들어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어른이 되어 갔다.

늘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은 엄마를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어느 순간 보니 아이들은 나를 보호해주는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여섯 살 된 딸아이는 머리에 수건을 올려주고 내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김밥
 김밥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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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밤늦게 퇴근을 하는데 비가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섯 살 된 아들이 엄마가 비를 맞고 올까봐 걱정했다며 내 가슴으로 와락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일을 했다. 우리는 양육하는 자와 양육받는 자의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는 한 팀이자, 같은 조직원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소풍날, 김밥이 바로 그것이다.

비상식량을 먹고 살던 우리는 손이 많이 가는 김밥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소풍때 김밥은 내가 직접 싸주고 싶어 큰아이때부터 줄곧 그렇게 했다.

큰아이를 키우던 어떤 날인가는 소풍날을 깜빡한 일도 있었다. 퇴근길에 빈손으로 퇴근했다가 김밥재료가 없어서 오후 11시가 넘은 한밤중에 온가족이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김밥을 못 싸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소풍 가기 전날 이 녀석은 나를 보고 눈꼬리를 내리고 애잔한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 진짜 내일 일찍 일어나서 김밥 싸줄 거야?"

퇴근이 좀 늦는 탓에 출근은 좀 늦게 하는 탓에 늘 늦잠자는 걸 봐서 그런지 아들은 나를 그냥 잠꾸러기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들의 불안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일찍 일어나서 우리 장혁이 김밥 싸줄거야! 맛있게 싸줄게."

그런데 이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기는 한 건가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죽을 만큼 맛있다"는 엄마표 김밥 계속 싸줄게

둘째 녀석의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 .
 둘째 녀석의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 .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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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첫 번째 소풍을 다녀오던날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감자(아들의 애칭)~~ 오늘 엄마가 싸준 김밥 맛있었어?"
"응~ 맛있었어~ 죽을 만큼 맛있었어~!"

이 녀석은 칭찬의 황제다. 녀석의 볼이 터져나가라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녀석과의 게임에서 내가 이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 녀석은 소풍이 있는 날 저녁이면 나를 세워놓고 김밥 재료를 사왔는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싸줄 수 있는지를 체크한다.

"이노무시키…. 원래 소풍가기 전에서는 설레서 잠을 못 자야 하는 거얏! 너는 어떻게
엄마가 김밥을 못 쌀까 봐 그 걱정에 잠을 못 자고 그러는 것이냣!"

같은 웨딩 계통에서 일하는 매우 능력있는 사람이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많이 흔들려하는 모습을 보았다. 퇴사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엄마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모습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태그:#소풍과 김밥, #소풍전날 잠못 이루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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