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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8일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2010년 4월 8일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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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내 또래 20대 대학생 셋이 건설 현장의 크레인과 한강대교 위로 올라갔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생사가 갈릴 수 있는 높은 곳에서 그들이 외쳤던 것은 다름 아닌 '학과 통폐합 반대'였다. 그들은 중앙대 문과대 학생들이다.

그해 중앙대는 77개 학과 중 인문계열 등 소위 '돈 안 되는' 학과를 통폐합 해 44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2008년 두산그룹이 학교를 인수한 이래 준비해오던 일이다. 돈이 아닌 학문의 가치로 대학을 운영해야 한다는 교수·학생 사회의 반발을 무시한 채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던 두산 재단이 이사회에서 이를 최종 의결하기로 한 날, 세 학생은 고공농성을 벌였다. 귀를 틀어막고 소통을 거부하는 두산 재단과 중앙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상으로 내려와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나온 그들을 기다리던 건 '징계'였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벌이던 다른 학생 한 명까지 포함해 퇴학이 둘, 정학이 둘이었다.

두산 재단이 가는 길에 감히 어깃장을 놓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중앙대가 오로지 재단에 순종하는 학생들만 필요하다고 선언한 셈이다. 징계를 받았던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징계의 부당성을 인정받고 캠퍼스로 돌아왔지만 중앙대는 교묘하게 징계의 내용을 바꿔 이들을 다시 학교 밖으로 쫓아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3년 겨울, 중앙대에 사건이 하나 더 터졌다. 당시 징계를 받았다가 학교로 돌아온 한 학생이 단과대 학생회장에 출마하자 학교 당국이 학칙을 들어 '징계를 받은 학생은 학생회장에 출마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학생자치에 학교가 개입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선거를 강행하려 했지만 선관위원들에게 징계를 내리겠다는 학교의 협박 속에 결국 선거는 무산되고 만다.

학생회 활동도, 학생 징계도 총장이 정하는 대로?

이랬던 중앙대가 지금 학칙 개정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관련기사 : 학칙 개정안은 수정됐지만 우려는 그대로 <중대신문> 2014. 4. 14.) 지난 달 27일 학교 측이 마련한 개정안의 골자는 이렇다. 먼저 총장이 별도의 규정을 세워 학생회 등 학생자치 기구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거 무산 논란 속에서 학칙과 학생회칙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논란이 일자 아예 학칙에 학생회 운영에도 총장 재량이 포함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정안에는 학생 징계를 사실상 학교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기존 학칙에는 모호하게나마 징계 사유를 항목별로 정리해두었는데, 개정안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삭제되고 별도로 마련된 세칙에 따라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제·개정되어야 하는 학칙과 달리, 내규에 가까운 세칙으로 징계 사유를 정하는 것은 사실상 학교 입맛에 안 맞는 학생들은 언제든 징계 처분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론, 결사 등 학내자치활동에 대한 규정을 학생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내용 등도 개정안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학칙 개정 이유에 대해 중앙대는 "학교의 학칙과 학생회 회칙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칙을 개정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중앙대 홍보팀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회칙에 따라 활동했다 해도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회칙과 학칙이 충돌할 경우 학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소모적인 분란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발에 따라 개정안이 일부 수정되었으나 학생들이 제기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서울-안성 양 캠퍼스 총학생회가 개정안과 수정안 모두를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측은 학칙 개정을 강행할 모양새다. 학칙 개정안은 지난 8일 교무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24일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으면 공포된다.

중앙대가 추진하고 있는 학칙개정 내용
 중앙대가 추진하고 있는 학칙개정 내용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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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적 학칙 근거로 비판적 학생들을 내쫓는 학교

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진 원인을 단순히 두산 재단 때문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중앙대가 두드러지게 이런 양상을 보이는 것뿐이지 다른 대학들도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대학의 비민주적 학풍의 중심에 '학칙'과 관련된 문제가 놓여 있다. 학칙은 학교의 운영원리를 담은 일종의 '법'이다. 그런데 많은 대학들이 이해되지 않는 조항들로 들어차 있는 학칙을 앞세워 비민주적인 학풍을 조성해가고 있다. 최근 학칙 개정 운동을 진행하는 '대학, 안녕들하십니까?'에서 발표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지난해 고려대에서는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시국강연회가 느닷없이 학교로부터 강제 취소당한 일이 있었다. 학교가 장소 대관을 갑자기 철회한 것이다. 사유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사'이기 때문이었다. 강연회는 결국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막는 일은 다른 학교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국민대에서는 학교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써온 학내 언론사 기자들을 학칙을 앞세워 학보사에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쫓겨난 기자들은 학교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기 위해 <국민저널>이란 새로운 학보를 만들었다. 성균관대, 성신여대, 가톨릭대 등지에서도 대학언론의 자치권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학교 당국에서 허가해주지 않은 대자보나 유인물이 '학칙'에 의거해 찢겨져 나가는 학교도 많다. 한술 더 떠서 아예 학내에서 학교를 상대로 하는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학교들도 있다. 정당 가입이나 사회단체 가입과 같은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까지 간섭하며 이를 금지하는 학교들도 존재했다. 헌법에 의거해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일부 학교 학칙에서는 깨끗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칙들이 부당하다고 여겨서 반발하는 학생들을 위해 징계에 대한 학칙도 마련돼 있다. 여러 학교의 학칙에서 '품행이 방정하지 않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등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모호한 문구들을 학생의 학업을 중지시키는 퇴학·정학 등 징계의 근거로 쓰고 있다. 중앙대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모호성은 학교에 비판적인 학생들을 교정에서 내쫓는 일에 악용되고 있다.

'순종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란...

20대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지금, 대학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이 곧 한국 사회의 미래상이 될 것이다. 10년, 20년이 지나고 지금의 20대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류세력이 되었을 때, 그들이 대학을 다니며 듣고, 보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곧 우리 사회의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의심과 토론, 합의의 과정이 거세된 캠퍼스에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겪으며 '순종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교훈을 배운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들이 비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의 참여와 비판을 차단하려는 생각의 바닥에는 대학을 교육기관이 아닌 일종의 돈벌이 수단이나 기업과 같은 사유물로 인식하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기업이 재단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한 몇몇 대학에서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관련된 사건들이 타 대학에 비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유재산인 대학을 소유자인 재단과 대학본부가 마음대로 운영하겠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데 그곳에 민주주의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처럼 비민주적인 학칙과 기업식 운영 마인드로 제멋대로 고등교육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여러 대학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가령 학과 통폐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과 같이 대학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 속에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학이 교육환경의 개선이 아닌 자산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무분별한 투자를 벌인다든가, 재단이 대학교육을 담보로 비리 행위를 저지른다든가 하는 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학문적 자율성은 보장하되, 대학 운영은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교육 공공성이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여러 대학에서 학과 통폐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막무가내 식으로 이를 밀어붙인다. 토론과 소통이 부재한 공간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비민주적 학칙에 의해 불이익을 받게 될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비민주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민주적인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태그:#학칙, #중앙대, #학칙 개정, #학과 통폐합,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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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시민의 힘으로 지키는 군인의 인권, 군사 독재의 잔재를 걷어 낸 시민의 군대를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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