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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벚꽃이 다 져버렸다. 북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눈이 온 듯 하얀 빛이었는데 그새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서 파르스름해졌다. 고려궁지를 나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길로 들어섰다. '궁골'의 좁은 골목길들이 여기저기로 나 있다. 그중 한 길을 잡아 따라가 본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의 양 옆으로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길은 마치 미로처럼 요리조리 맴돌고, 이마를 맞댄 집들은 나직하다. 두어 사람이 어깨를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이 골목은 우리를 옛날로 훌쩍 데려가 준다. 고려의 궁궐 아래에 있던 동네라서 '궁골'이라 불렸다는 이곳의 골목길은 좁고 구불구불해서 꼭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다.

'궁골' 골목길로 나들이 가다

마치 탐험이라도 하는 양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 골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오뚝하니 앉아서 나를 보고 있다. 굽은 길 저 너머에 뭐가 있기에 고양이는 저렇게 보초를 서는 걸까. 허리를 구부리고 살금살금 접근해도 통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정물인 양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나를 구경한다.  

돌담에 머무는 햇살처럼...
 돌담에 머무는 햇살처럼...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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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록 담장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돌담도 있다.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내딛으면 온통 최신식이 활개를 치는 이 시대에도 아직 옛것이 남아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돌담에 머무는 햇살이 포근하다. 

관우를 모시는 북관제묘(北關帝廟)를 지나 얼마쯤 가니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 장사가 똑같이 지어 분양을 한 이곳의 집들. 모양은 한옥이지만 아취는 찾아볼 길이 없다. 더구나 담장들이 높아서 집 안이 하나도 들여다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감마저 든다.  

"뭐 볼 것도 없는데, 구경하러 왔시꺄?"

동네 아주머니가 나더러 그런다.

"여기는 집 장사가 똑같이 지은 집들이야. 지은 지 한 40년은 됐나?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사 올 때도 지은 지 10년 넘었다 그랬거든."

별 볼 것도 없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보러 온다고 하면서 아주머니는 동네 내력을 풀어놓는다.

"골목에 사람들이 없어. 전에는 많이 살았는데 이제는 노인네들 밖에 안 살아. 젊은 사람들은 다 밖으로 나가고 노인네들만 있는 거지 뭐…. 강화에 뭐 벌이가 있나? 공무원 아니면 돈 벌 데가 없어.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가 버리지."

아주머니도 혼자 산다고 했다. 그래도 공무원인 아들이 근처에 살아서 좋다고 하시며 은근히 아들 자랑을 하셨다. 

"다리가 좋을 때 많이 구경 다녀"

"다리 안 아플 때 구경 많이 다녀"라고 하시던 어머니들.
 "다리 안 아플 때 구경 많이 다녀"라고 하시던 어머니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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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구경 다니는 내가 부러운 가 보다.

"다리 안 아플 때 많이 구경 다녀요. 아프면 아무 데도 못 가."

그러자 다른 아주머니가 불쑥 바지를 걷어 올리며 무르팍을 보여준다.

"아이고, 파스 없이는 못 살아."

아주머니의 무릎에는 살구색 파스가 두 장이나 붙어 있었다.

이야기는 이내 무릎으로 옮겨갔다. 다리가 새콤새콤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한다면서 수술을 해야 할까 보다 한다. 오래 써먹었으니 탈이 날 때도 됐다며 스스로 위로를 하듯 말하지만 그래도 두 발로 쑥쑥 걸어 다니는 내가 부러운지 "건강할 때 많이 구경 다니라"라면서 충고해준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 말벗이 그립던 차에 말을 붙여주는 게 반가워서 그런 걸까. 이야기를 붙이면 말맛이 나도록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떤 때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집 안으로 이끄는 분들도 있다. 강화나들길은 이렇게 어르신들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궁골의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바로 강화여고가 있다. 대개의 경우 학교들은 교문을 지나 운동장이 있고 또 그 너머 교사(校舍)가 있기 마련인데 강화여고는 교문과 건물이 바투 붙어 있다. 그래서 길에서 보면 운동장이 보이지가 않아 학교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 교문과 건물 사이에 여유 공간이 별로 없어 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다.

강화여고입니다.
 강화여고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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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을 짓기 전 강화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모습은 낯설게 다가올 것 같다. 더구나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니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모습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강화 여성 교육의 산실, 강화여고 

강화여고 뒤에는 강화여중이 바짝 붙어 있는데 여고에서 크고 높게 새 건물을 올리면 강화여중은 그 뒤에 가려서 햇빛 한 줌 받지 못할 형편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강화여고는 여중을 배려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새 건물을 올린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건물에 가려서 운동장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됐고, 학교는 답답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강화여고가 운동장을 뒤로 두고 새 건물을 올린 덕분에 강화여중은 앞이 환하게 트였다. 언니들 덕분에 중학생 동생들이 환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강화여고를 올려다보니 다시 보인다. 마치 배포가 크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강화여고가 대견해 보였다.

강화여고를 지나자 홍살문이 서 있다. 그 뒤로 태극 문양을 한 큰 문도 보인다. 홍살문은 궁전이나 관청 또는 능이나 향교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을 말한다. 이 문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곳은 강화향교다. 

강화향교 뒤로 강화여자중학교가 보입니다.
 강화향교 뒤로 강화여자중학교가 보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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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향교는 강화여고와 담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이었는데 지금으로 보면 국립대학이나 대학원쯤이 되지 않을까. 지금 세상은 누구나 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시대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 계층만이 학문을 할 수 있었고 더군다나 향교 출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지방관들도 새로 부임을 하게 되면 전교(典敎)를 찾아 인사를 올리는 게 예의였을 정도로 향교의 위세는 높았다.

그런 향교였으니 어찌 감히 여성이 가까이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 시대에 여성은 공부는 고사하고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않았는데, 아무리 개화가 됐다고 해도 향교 옆에 여자학교가 둘씩이나 있다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강화여고가 개교를 한 해가 1954년도이니 그때는 아직 봉건적인 사상이 많이 남아있던 시대였는데도 향교 옆에 여자학교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강화 사람들의 트인 식견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강화는 다른 지역보다 일찍 서양의 문물과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빨리 개화가 돼 명리보다는 실리를 따지게 됐을까. 아니면 어떤 풍수적인 해석에 따라 여자학교를 향교 옆에 지었던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간에 강화는 교육열도 높다. 또한 남녀를 차별하는 의식 역시 다른 곳에 비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유교 이념을 가르치던 향교 옆에 여성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여자학교가 있으니 강화 사람들의 열린 마음 자세를 보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강화 여성들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산길은 탯줄 같다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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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를 지나 산으로 올라간다. 산과 바투 붙어있는 강화여중의 좁은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놀고 있다. 운동장은 좁지만 그 뒤에 있는 노천강당은 세상 어느 학교에도 없는 걸 가지고 있다. 뒷산이 온통 강화여중의 뒷마당이나 마찬가지이니 학교 앞을 강화여고에게 내준 대신 얻은 보상인 셈이다.

마침 체육시간인 듯 체육복 차림인 여중생들이 좁은 운동장에서 복닥대며 뛰어놀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듯 자유로우면서도 정겹기까지 하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도 즐거워 보인다. 공부도 저렇게 놀이처럼 하면 재미있는 것이구나. 

강화여중 뒤는 야트막한 산이다. 강화읍에서 한 발자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도 깊은 산 속에 들어온 양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들은 들리지 않는다. 우쭐우쭐 서 있는 소나무들 속으로 좁다란 산길이 나 있다. 그 속으로 들어서니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들어선 듯 포근하고 다정하다. 산길은 탯줄처럼 길게 뻗어있다. 그 속에서 유영하듯 너풀너풀 걸었다.  


태그:#강화도, #강화나들길, #강화여고, #강화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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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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