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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괴> 표지
 <대붕괴> 표지
ⓒ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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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생태학은 본디 어원이 같다. 경제(economy)는 '집 혹은 서식지'를 뜻하는 'eco'와 '학문'을 의미하는 'nomy'의 합성어고, 생태학(ecology)은 역시 '집 혹은 서식지'를 뜻하는 'eco'와 '관리하는 담론'이란 뜻의 'logy'를 합친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제와 생태학의 관계는 반의어에 가깝다. 4대강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의 가치는 자주 부딪힌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승리하는 쪽은 보통 경제 성장이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는 당장의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 부양 같은 경제논리 앞에서 무력하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환경 보호를 외쳤지만, 여전히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런 점에서 폴 길딩의 <대붕괴>는 독특하다. 그린피스에서 활동한 환경운동가 폴 길딩은 윤리적 정당성에 호소하기보다는 환경 파괴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라

저자는 지구 생태계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구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너무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다.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지구 1.4개가 있어야 현재와 같은 경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위기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어업 분야다. 어업의 30%는 이미 허물어졌고, 지금도 계속 붕괴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 논문을 보면 이런 추세로 어업이 계속 성장할 경우 2048년에는 어획량이 90%나 줄어든다. 어업이 붕괴하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생선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8년의 상황 역시 생태계 위기가 인간에게도 위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2008년 당시 경제 성장에 따라 석유 수요는 늘어난 반면 채유 속도가 줄어들면서 유가가 상승했다. 기후 변화로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자 농산물 수확이 줄면서 식량 가격도 상승했다. 식량 가격 상승과 유가 상승은 각국의 정치 불안을 낳았다. 이는 결국 2008년의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이런 추세가 지속할 경우 발생할 파국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전 세계적인 기근으로 10억 이상의 인류가 굶어죽고, 중동 지역이나 다른 지역에서 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여러 차례의 전쟁이 벌어지고, 식량난과 정치 체제 붕괴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문제 때문에 중국, 인도, 파키스탄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며, 폭풍우가 밀어닥치면서 지표가 낮은 섬나라와 주민들이 물에 잠기거나 익사하고, 천재지변이 빈발하면서 전 세계 보험산업이 파산상태에 빠지고, 그 여파로 담보물건이 보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은행업도 함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이런 온갖 리스크가 주식 시세에 반영되면서 세계 증권시장이 붕괴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대붕괴> 191p

폴 길딩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 대신 "덜 일하고 부채를 줄이며 물질에 덜 의존하는 대신, 즐거움과 공동체 생활, 안전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이 답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에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쇼핑을 줄이고, 빈곤을 몰아내며,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 포함돼 있다. 특히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새로운 생활방식'의 핵심 과제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은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한다. 사람마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평등이 있기에 사람들이 노력할 동기가 생기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폴 길딩은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의 <평등이 답이다>를 인용하며 심각한 불평등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설명한다.

즉 상대적 불평등은 평균수명과 비만, 교도소 수감 비율, 10대 임신, 정신 건강, 공동체 내부의 신뢰 수준, 교육 성과, 여성의 지위 등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그 차이도 하찮은 정도가 아니다. 불평등의 정도가 심한 사회에서는 지표가 대부분 3배나 10배까지 나빴다.-<대붕괴> 398p

또한 불평등은 통념과는 달리 부자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공평성이 제고될 때 상위 25%의 소득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행복까지 증진된다. "최상위 소득 그룹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보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 중독에서 벗어난 후 인류의 과제는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폴 길딩의 주장이다.

조금 더 친절한 책이었다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한 책이라는 것이다. 환경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것은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과학계 안에서도 크게 논쟁이 되는 이슈이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을 전제로 서술했기 때문에 기후변화 논쟁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기후변화 회의론'(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믿지 않는 입장)을 소개하고 그런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보여줬다면 초보자들에게도 더 유익하고, 주장의 설득력도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붕괴>는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경제와 생태학이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느꼈다. 환경, 즉 인류의 집(eco)을 파괴하는 일은 결국 경제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경제 활동의 기반인 환경을 파괴하며 경제를 성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꼭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대붕괴>(폴 길딩 / 두레/| 2014.3/ 25,000원)



대붕괴 - 기후 위기는 세계 경제와 우리 삶을 어떻게 파멸시키나?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두레(2014)


태그:#대붕괴, #폴 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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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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