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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마에 그 딸!

"어! 없어? 내가 엄마 준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나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받은 것 같기도 해! 지금 우리 둘 다 없는 거 확실하니 카운터에 전화해 봐!"

어제 딸과 함께 온천욕을 하고 과일 과게에 갔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찾았는데 온천에서 결제를 하고 카드를 되돌려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나도 딸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딸이 기억나는데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좀 눈치가 보일터인데 둘 다 생각이 잘 안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서로 피식 웃고 일단은 은행에 분실신고를 하고 카드를 정지시켰다.

예전에도 둘이서 다니다 보면 가끔 내 차 열쇠와 카드를 딸이 빌려가서 돌려주는 것을 깜박했는데 나는 한참 찾았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출근할 때 딸 아이집에 들러 카풀을 하기로 했는데 깜박하고 평소의 동선대로 그대로 직장에 가버렸고, 딸아이는 치장을 다하고 기다렸는데 내가 안 와서 낭패를 보았을 때도 더러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건망증이 늘어나는 것은 주변의 사례를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같기도 한데 내 경우는 나이와 상관없이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붓 한 자루 잡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온 정신 다 쏟고 전력전심을 하다 보니 다른 것에 자연스럽게 신경이 느슨해지는 것이라고 내 스스로 자위한다.

하지만 신경계 장애이다 보니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지 않으면 나는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10년을 가르치거나 20년을 아는 관계라 해도 며칠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수십 번 다녀왔지만 아직도 엄마와 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오직 한 개만 있는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도 매주 쓰지 않으면 외우지 못한다. 부모님 기일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의 생일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 없다.

매일 사용하는 어떤 번호라도 그날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신경을 집중해야 단어 하나 하나를 말하는 내 혀도 이상한 언어를 만들어 내서 아예 침묵을 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때는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집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난다. 하도 이런 일이 잦으니 그냥 전자감지로 열리는 장치로 아이들이 바꾸어 주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여권이 없다

나는 작품을 제작할 때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형설의 공이 되도록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나만의 내음새가 들어간 창의성을 표현하는 데 매진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종가집에서 살았고 맏며느리 역할도 십수 년 한지라 집안 대소사에 친지들이 모일 일이 생기면 이 또한 계획대로 잘 해내고, 지금의 기획자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 그때 덜렁덜렁하는 습관이 들어 벼락치기가 다반사이다.

최근에는 10년 지기들과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고속전철을 서울역에서 타기로 하고 특실을 예매했는데 차 시간을 혼동해서 놓치고 입석으로 갔던 경우도 있다. 그 뒤부터는 항상 기차표를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이전에 비영리민간단체 대표가 되어 방콕으로 출장을 갔을 때는 꼭두새벽 4시에 청주에서 출발해서 인천공항에 갔다. 그런데 아뿔사! 여권을 놓고 와버렸다.

나와 동행하기로 한 전국의 여러 대표들은 사무처장과 함께 예정대로 탑승해서 출장을 갔지만 내 비행기표는 취소하고 그날 마지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안그래도 일행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무처 직원들이 나 때문에 더욱 분주해졌고 나는 여권을 가지러 다시 인천에서 청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 후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다시 인천으로 올라갔다.

방콕에 먼저간 일행은 나를 차에 태워 세미나장으로 안내하는 사람을 섭외해서 보내주었다.

' WELCOME! 이영미!'

그들은 이렇게 영어와 한글이 함께 쓰여진 눈에 잘 띄는 큰 피겟을 들고 공항에 나와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측에서도 나 때문에 신경을 쓴 셈이다.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럽고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새 평안해진 것은 건망증으로 인한 내 실수에 대해서 아무도 개의치 않고 모두들 그런 경험이 있다고 토닥거려 준 것이다. 그 경험으로 인해서 여권에 관해서는 건망증이 재발하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문하생들이 전국공모전에 내는 작품을 열 개 정도 넘겨 받았다. 가로 140센티와 세로 70센티의 작품들이었는데 마감을 끝낼 때 작품을 선별해주고 내 딴에는 도와준다고 내가 이왕에 가는 김에 작품을 접수하려고 작품과 원서와 출품비를 받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마트로 가서 시장을 보았다.

이마트의 빨간 카트에는 작품들이 들어있는 긴 비닐종이와 부식들이 담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고 분주히 저녁꺼리를 만들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뭔가 허전했다. 아뿔싸! 작품 열 개를 모두 카트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부랴 부랴 마트로 다시 갔고 마트의 분실보관소와 폐지를 버리는 청소함 모두 샅샅이 뒤졌다.

그날 밤 나는 주최측에 사정이야기를 하고 마감을 하루 늦춰달라고 했고, 문하생들에게도 연락해서 선별하고 남은 차선 작품을 가지고 오게 하거나, 하루 더 작품을 제작해서 가지고 오게했다.

그렇게 해서 열 명이 다시 작품을 만들어서 무사히 제출했는데 두고 두고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길다란 목을 뽑고 얼굴을 반듯이 들고 다니면서 고맙게 그들과 동고동락한다.

내 실수와 건망증을 탓하지 않고 내 마음의 온기를 알아주는 문하생들은 때로는 나의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내 삶의 스승의 역할도 한다. 서로의 건망증을 이해하고 따스히 보듬어주는 것은 마치 허리 잘린 산도 보듬어 안고 날마다 변하는 달도 품는 호수의 마음처럼 서로가 아직도 따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아 무척 고맙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래도 살아있음에 고마워하자는 마음에서 쓴 작품
▲ 고마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래도 살아있음에 고마워하자는 마음에서 쓴 작품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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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건망증이 없어지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살아있는 동안에는 부디 횟수가 많아도 좋으니 건망증으로만 그쳐 건망증과 동고동락하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소소한 건망증은 그래도 지나서 보면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를 확인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기회와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하구나!'하는 유대감도 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유대가 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생기는 건망증과 내 신체적 장애때문에 생기는 기억장애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애로가 있는 현실로 인해서 나는 반복학습을 쉼없이 하고, 그 덕분에 나도 모르게 이러한 반복 행동은 일상적인 습관이 되어 내 삶의 목표에 제대로 가는 거름이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건망증때문에 겪은 일 응모



태그:#건망증, #여성장애인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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