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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고운 절집> 표지
 <길이 고운 절집> 표지
ⓒ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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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고운 절집>. 제목부터 맘을 편히 해준다. 길이 곱고, 절집도 고운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은 그냥 단순하게 '걷기 좋은 사찰 기행', 혹은 '힐링이 되는 사찰이야기'가 아닌 절집을 가며 인생을 반추하는 고운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24개의 절집 이야기를 수놓고 있다. 그렇지만 일정한 틀은 보이지 않는다.

네 개의 범주(Ⅰ. 나부끼는 꽃일에 마음은 흔들리는데, Ⅱ. 먼지 낀 이 마음을 무엇으로 씻어낼꼬 Ⅲ. 유리로 된 땅에 맑은 바람 불어오니 Ⅳ.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더라)가 사계절로 구분되거나 지역으로 나눈 것이 아닌 그저 호젓하게 갈 수 있는 절집에, 작가의 감정을 덧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형식 없이 마곡사, 부석사처럼 잘 알려진 절에서부터 봉서사, 천장사처럼 그리 크지 않고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절까지 다양한 발걸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절집을 찾게 될까? 종교를 떠나 산사에 있는 절집은 우리에게 민족적 모향 그리고 일상의 원형을 담고 있다. 길이 고운 곳에 절집이 있는 것인지 절집이 있기에 고운 길이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절집을 찾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얻기에 그렇게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작가도 머리말에 절집을 찾는 의미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람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절집을 찾는다. 절집 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내 마음 속의 길로 접어든다. 처음에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걷기 시작한 길도 한참을 걷다보면 걷는 일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 …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지면 이런저런 감정에 막혀 가려져있던 내 마음의 길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시간, <길이 고운 절집>을 찾아가는 이유다.(<길이 고운 절집> '머리말'에서)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순한 가이드 수준의 여행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절집 소개나 여러 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여행에세이와 포토에세이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꼼꼼히 다니고 그동안 답습한 몇몇 부분에 대한 바로잡음을 보여주며 진정한 여행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내소사의 꽃살문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우리는 내소사하면 밖에서 본 꽃살문만 신경을 쓰며 사진을 찍어댔지 그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꽃살문에서 시작하여 대웅전의 불단, 외부의 공포 등에 상징적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며 "꽃살문으로 장엄한 반야용선에 오르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그냥 단순하게 10분만 휘둘러보고 내소사 꽃살문을 다 보았다는 말하는 이들에게 조곤조곤 외치는 일갈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사진이 글을 읽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단순하게 관광 사진이 아닌 이야기가 담긴 사진으로 사진도 글처럼 한참을 바라보며 읽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표지의 시각처럼 뒤집어 놓거나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아야 또 다른 깨달음 또 다른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할 것이다.

우리는 절집을 찾다보면 인스턴트식으로 국보, 보물을 휘둘러보고 사진을 찍어대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빠른 속도로 절집 관광을 완료한다. 때로 몰려 단순히 그곳에 다녀왔다는 자랑거리 하나 만들 뿐, 마음을 다듬고 마음을 비우고 채우지는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여정을 함께 가다보면 기다림과 열정적인 성실함 속에 '텅 빈 충만'을 얻을 수 있다. 며칠 동안 운주사에서의 기다림 그리고 운주사와 관련 있는 별자리 이야기는 정말 일어날 것 같은 저녁 와불 사진을 통해서 그대로 표출되어 나타난다.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 특별한 형식 없이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무형식의 형식에도 형식이 있듯, 이 책은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앞 부분에서는 문경 금룡사의 노스님과 일화로 시작하여 많은 일화를 담아내다가 고운사, 신륵사에 와서는 인생에 대한 질곡이 드러나더니 마지막 여정인 괴산 각연사에 와서는 길이 잃고 해맨 모습을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과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혹은 살다 보면 가끔씩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가끔씩 길을 잃어보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진 않다. 중요한 것은 길은 잃더라도 내 자신은 결코 잃지 않는 것이다. 내 자신을 잃지만 않는다면 길은 어디로든 다시 이어지게 마련이다.(<길을 잃고 나를 얻다 괴산 각연사>, 381쪽.)  

머리말에서 저자는 본인이 길치라 당당히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글은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결집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길치가 아닌 사람이 있으랴. 다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가고 있는 길치들일 뿐.

그래서인가 요즘 세태는 그런 길치들을 위해 많은 걸 친절히 제공해준다. 가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맛집까지 친절히 적어준 여행서나 가장 편하게 절집에 들어갈 수 있게 주차장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처럼 스스로 느끼고 헤쳐 나가고 생각하는 바가 없어진지는 오래다. 길치를 위해 규격화된 여정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또 다시 우리를 길치로 만든다. 길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하루 종일 고운 절집에 머물 때 혼자 스스로 헤쳐나갈 방향을 얻고 또 다른 의미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나 여행에 있어 우리는 길을 잃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오며 자신을 찾는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절집을 찾고 나를 찾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길이 고운 절집>(한선영/민속원/2014/25,000원)



길이 고운 절집

한선영 글.사진, 민속원(2014)


태그:#절집, #사찰, #불교, #힐링,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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