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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생이 과제를 보내면서 덧붙인 인사말
 어느 학생이 과제를 보내면서 덧붙인 인사말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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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리 떨어진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편지지에 한 글자씩 정성을 들여 썼다.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걸 접어서 편지봉투에 넣고 상대방의 주소를 적었다. 우표를 붙인 봉투를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가 전달되기까지는 적어도 이틀이 걸렸다. 하긴 그 시절에는 '손편지'나 '손글씨'라는 말조차 없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담당교수가 내준 리포트도 원고지에 펜으로 써서 작성했다. 쓰다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부지기수였다. 작성한 리포트는 까만색 철끈으로 정성스럽게 묶어서 담당교수의 연구실로 갖고 갔다. 교수가 부재중일 때는 발걸음을 돌렸다가 다시 방문하는 번거로움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상상해 보자. 대학생 K군은 리포트를 들고 담당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간다. 노크 따위는 번거로우니까 생략하고 문을 벌컥 연다. 마침 교수가 책상에 앉아 있다. K군은 인사는커녕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성큼성큼 걸어가서 과제물을 책상에 던져놓는다. 그러고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없이 연구실을 유유히 걸어나온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학생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방에 들어가려면 노크부터 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교수와 눈길이 마주치면 리포트를 제출하러 왔다고 말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내키지 않아도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 한마디쯤은 건네고 연구실을 나와야 하는 거 않을까. 그게 예의고 기본 아닐까.

새삼스럽게 무슨 말이냐고? 당연한 일 아니냐고? 그런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맞다. 맞긴 맞는데 리포트를 작성하는 방법이나 전달하는 양상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앞서 봤던 K군 같은 이들이 적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리포트를 PC로 작성한다. 그걸 프린트해서 제출한다.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담당교수 이메일로 전송하는 게 일상화되어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직장의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도 문건을 '파일첨부' 기능을 활용해서 이메일로 주고받기도 한다. 신속하고 편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K군과 같은 이들이 의외로 많다.

달랑 첨부파일만 보내면 그걸로 끝인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메일로 리포트를 전송하면 담당교수의 '받은 편지함'에 보낸 사람 이름이나 아이디와 함께 제목도 뜨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달랑 '제목없음'이다. 심지어는 이걸 누가 보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성의가 없어 보이고, 급기야는 좀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문건을 첨부파일로 보낼 때 짧은 인사말 몇 마디라도 곁들이면 좀 좋을까. '교수님, 무슨 학과 아무개입니다. 과제 제출합니다.' '선배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자료를 이제야 찾았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해요. 조만간 한번 뵐게요.'와 같은 식으로…. 이런 정도로만 써도 서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다.

물론 그림과 같이 써서 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교수님 마지막 과제입니다.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 막막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일기쓰기는 꼭 꾸준히 해나가겠습니다. 한한기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방학 보내세요.'라고 썼지 않은가. 

중간에 띄어쓰기가 좀 틀린 것만 빼면 깔끔하게 잘 다듬어 썼다. 이메일로 과제를 보내거나 선후배에게 어떤 문건을 보낼 때 이렇게 짧은 인사말 몇 마디만 덧붙여도 그걸 주고받는 이들은 따뜻하게 소통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교수도 사람인지라 아까의 그런 학생한테는, 설령 과제 내용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태그:#이메일, #소통,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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