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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연우를 위해 우리의 세시 풍속과 민속의 유래에 대한 자료를 알려주기 위해 책을 한 권 샀다. <우리민속의 유래>(도서출판 BMK)는 최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청소년권장도서'로 지정을 받은 책으로 초중등학교 교사 출신의 박호순 선생이 집필한 유익한 도서이며, 교재이다. 
  
우리민속의 유래
▲ 우리민속의 유래 표지 우리민속의 유래
ⓒ 도서출판 B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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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속의 유래>에서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정서라 할 수 있는 한(恨)의 정서와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을 만큼 예(禮)를 숭상하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 모습을 근본으로 삼아, 민속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왕후의 반란으로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까치, 쥐, 돼지, 용의 도움을 받아 그 위기를 넘겼다. 소지왕은 고마운 마음에 쥐와 돼지와 용은 띠 동물이므로 기념할 해와 날이 있지만, 까치는 마땅히 기념할 날이 없어 보은의 뜻으로 설 바로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의 날로 삼아 '까치설날'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까치 설의 유래다. 이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인가?

또한 제사와 차례에 왜 신위를 북향에 모시는가?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천'으로 간다 하여 돌아가신 분이 가신 쪽인 북향으로 신위를 모시는 것이다. 사십 대 후반이 되어서도 난 '이제까지 그 이유도 모르고 살았구나! 하고 한숨을 쉬게도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흔히 '정월 대보름' 아침 해뜨기 전에 행하던 3가지 풍속 중 하나인 '부럼 깨물기'는 요즘도 전국적으로 행하고 있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민속이다. 부럼을 깨물며 한 해 동안 몸에 종기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의미와 더불어,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견과류를 섭취하여 우리 몸에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 주던 건강을 위해 유익한 풍속이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 밤에 행하던 '다리 밟기'는 고려 때부터 전해 오는 풍속으로, 남녀 구분 없이 밤새도록 길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성행하였다고 한다. 남녀들이 밤새도록 길거리를 메워가며 돌아다녔으니 평소 보고 싶은 사람(?)도 몰래 만나지 않았을까?

결국에는 조선 시대에 조정에서 이를 금하였지만, 그 당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에게는 마음 놓고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지금의 걷기 운동과 같아서 건강을 위해 권장할 만한 풍속이다.

이 외에도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들이 우리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지 않은지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설을 맞아 부인들이 정월 초삼일부터 보름 사이에 여자 아이 종을 예쁘게 단장시켜 일가친척에게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게 한 '문안비(問安婢)' 풍습.

세배를 받는 상급 관원의 집에서 대문 밖에 마련해 둔 쟁반에 세배를 하러 온 하급 관리들이 종이쪽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 명함을 놓고 가는 '세함(名銜)'이라는 제도는 이웃을 배려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으로 우리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내용들이다.

또 봄에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과일 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우거나 가지에 줄을 매고 당겨 땅에 고정시키는 방법을 '과일나무 시집 보낸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옛날부터 시집을 보낸다는 의미는 혼인과 출신과 관련이 있는 일로 과일나무를 시집 보내는 행위를 통하여 풍년을 기원하던 농부의 마음을 담았다. 요즘 같은 3~4월이 과일나무 시집 보내는 시기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에 열리기도 하고, 5월 단오나 7월 백중, 8월 보름에 열리는 '줄다리기' 역시도 여자가 많은 팀이 이기야 풍년이 든다고 우리들 조상들은 믿었다. 땅을 뜻하는 지모신(池母神)이 여성인 관계로 여자가 이겨야, 하늘을 뜻하는 남자를 눌러 가뭄과 장마를 막을 수 있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아울러 전쟁에서 전술에 이용된 전술 연, 2월 삭일(朔日 : 초하루) 머슴 날에 먹던 노비송편, 경기도 이천의 거북놀이, 추석 다음날 행하던 풍속인 반보기 등도 우리가 모르고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의 민속들이 소개되어 있다.

6월 보름인 '유두'에 동편으로 흐르는 물을 찾아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것은, 무더운 여름철에 몸의 청결을 위해 냇물이나 강가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더위를 잊고자 물놀이를 하던 것이 되풀이 된 풍습이다.

7월 보름인 '백중'은 머슴들의 잔칫날이다. 여름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뽑아 광대처럼 꾸미고, 황소 등에 태워 집집을 찾아 다니며 덕담으로 풍요를 기원했다. 그러면 집주인은 술과 음식을 내어 이들을 대접했다.

또한 머슴들 가운데 일 잘하고 착실한 머슴이 총각이나 홀아비라면, 이에 걸맞은 처녀나 과부를 선택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9월9일 '중양절'에는 주로 국화전과 국화주로 가을걷이로 분주했던 집안을 다스리고 즐겼다. 그럼 '동지'에는 왜 팥죽을 먹었을까? 동지 팥죽은 우선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방과 마루, 곳간, 장독대 그리고 부엌의 조왕신과 용단지에게 바쳤다.

아울러 벽이나 대문에 조금씩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귀신이 팥죽의 붉은색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고 믿은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귀신을 막는다는 행위보다는 귀신을 달래줌으로써 인간에게 액을 막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여기에 팥죽을 통하여 조상신과 천신, 지신에게는 한 해를 돌보아 주심에 감사를 드리는 일이며, 또한 잡신과 역신에 대해서는 명년에도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빌고 달래어 해코지를 예방하는 행위였다.

<우리민속의 유래>에서는 현대화 속에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민속과 그에 따른 유래를 찾아 정리하고, 우리 민속이 왜 그렇게 이어 오게 되었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후손에게 전하여, 우리 국민, 특히 청소년들로 하여금 예(禮)를 바탕으로 한 곱고 바른 인성을 기르게 함에 그 목적이 있는 듯하다.

더불어 우리 민속에 나타난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찾아 후손에게 전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바른 인성을 길러 밝은 미래를 활짝 열어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우리민속의 유래>저자인 박호순 선생은 인천교대, 명지대 국문과, 단국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오랫동안 초등, 중등학교 교사와 교장, 장학사, 연구관, 장학관으로 일했으며 논문으로는 「安城郡 地域의 固有地名에 對한 考察」이 있다.


태그:#우리민속의 유래, #도서출판 B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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