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섬사람들은 헛웃음을 지을지 모르겠지만, 뭍에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 섬은 늘 아름다운 낭만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섬으로 떠나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게 되며 설렘과 섬에 대한 달콤한 기대감으로 들뜬다.

  사량도 가마봉(303m)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아스라이 출렁다리가 보인다. 상도와 하도(사진 오른쪽)를 잇는 연도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사량도 가마봉(303m)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아스라이 출렁다리가 보인다. 상도와 하도(사진 오른쪽)를 잇는 연도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지난 6일 경남산마루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사량도(경남 통영시 사량면) 상도 산행을 나섰다. 오전 6시 20분에 창원시 마산회원구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고성 용암포 선착장에 이른 시간이 오전 8시께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서 8시 40분 발 뉴다리호 카페리에 올랐다. 여기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상도 내지마을(경남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2005년,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사량도 산행이다. 세 번 모두 산행 초입이 내지마을이다. 우리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지리산(397.8m), 불모산 달바위(400m), 가마봉(303m), 옥녀봉(281m)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타서 진촌마을 사량면사무소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나는 낯익은 시멘트길 따라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가면 지리산 등산로 푯말이 보이면서 부드러운 흙길로 접어든다. 다리 관절이 좋지 않아 한동안 산행을 안 했더니 적이 긴장되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올라갔을까, 울퉁불퉁 바윗길이 나왔다. 바위에 서서 아스라이 내지마을을 내려다보니 햇빛 부스러기들이 반짝반짝하는 바다 위에 꿈꾸듯 누워 있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다른 산객들이 내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기를 바라며..
 다른 산객들이 내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기를 바라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사량이란 섬 이름에는 뱀에 얽힌 사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어사 박문수가 고성 문수암에서 이 섬을 바라보니 마주하는 상도와 하도의 모습이 짝짓기 직전 뱀의 형상과 흡사해 뱀 '사(蛇)' 자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어 흥미롭다.

오전 10시 40분께 상도의 대표적인 산이라 할 수 있는 지리산 정상에 이르렀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이 보인다해서 본디 지리망산이라 부르다가 언제부터인가 지리산으로 줄여 부르고 있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다른 산객들이 내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림 같은 풍경이 되기를 바라면서.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가마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예전에는 로프 구간이었다.  
 가마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예전에는 로프 구간이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예전에 없던 기다란 계단들이 많이도 생겼다. 가마봉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로프 구간도 지금은 계단으로 설치되어 있다. 위험스레 보이던 겉모습과 달리 퍽이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서 사실은 아쉬웠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은 경사가 상당히 급해 처음부터 겁먹는 산객들이 더러 있어 이 구간에서는 사람들의 걸음이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으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으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몇 년 전만 해도 로프를 꽉 움켜잡고서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올라가고, 암벽에 축 늘어진 줄사다리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딛고 내려와야 했었던 연지봉과 향봉 사이에 지난해 출렁다리가 만들어졌다.

1구간이 39m, 2구간은 22.2m로 전체 길이가 61.2m이다. 제법 출렁출렁하는 다리를 건너가자 로프로 오르내리며 후들후들 떨리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한 스릴을 맛보았던 옛 생각이 절로 났다.

  사량도 출렁다리.
 사량도 출렁다리.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출렁다리를 지나면 산행에 재미를 더해 주는 가벼운 로프 구간이 나온다. 그냥 암벽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친 암벽 경사면에 두 줄로 놓여 있는 굵직한 로프를 이용하는 게 더 안전하고 수월하다.

돌무덤처럼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올린 옥녀봉 정상 표지석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25분께. 전에는 번듯한 정상 표지석이 없어 산객들마다 옥녀봉 위치를 달리 말하곤 했었다. 심지어 옥녀봉의 기가 너무 세어서 마을 주민들이 세우지 못하게 한다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다.  
  사량도 상도 종주산행의 마지막 코스인 옥녀봉이 눈앞에 있다. 
 사량도 상도 종주산행의 마지막 코스인 옥녀봉이 눈앞에 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사량도 옥녀봉은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옛날에 아버지와 단둘이 외딴집에서 살고 있던 옥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욕정에 눈이 멀어 딸을 범하려 하자 딸이 옥녀봉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옥녀봉 정상에서 진촌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에 다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기분 좋은 통증이다.

산행 초보였을 때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산행이 바로 사량도 상도 산행이었다. 신나는 도전과 스릴 만점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던 사량도 산행. 이제는 출렁다리와 계단 설치로 바위 능선의 아름다운 경관과 햇빛이 곱게 내려앉은 파란 바다를 더욱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사량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겐 달콤한 꿈의 섬이다.

우리 일행은 진촌마을 금평항 선착장에서 통영 가오치행 사량호 카페리에 몸을 실었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산악회 회원들로 복작거렸다. 사량도 상도와 하도를 잇는 연도교가 내년에 개통될 예정이라 한다. 거친 바다 위를 멋지게 비행하는 갈매기들을 바라다보며 나는 윗섬과 아랫섬 산행을 한날에 즐길 그날을 꿈꾸었다.


태그:#사량도바위능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