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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우리집에 지상 최고의 걸작이 탄생했다.

얼마 전, 갑자기 수도물이 안나왔다. 그것도 연 이틀이나. 동네 상수도 모터가 탔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동네에서 집이 높아 겨울이면 쫄쫄 나오던 수도물이 안나오니 제일 곤란한 것이 화장실이었다.  급한대로 마당에 있는 밭에 거름(!)을 주기 시작했다.

사실 집지을 때 부터 나는 화장실에 대한 궁리가 많았다. 집안 화장실을 생태화장실로 만들고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내 재주로는 실현 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깥화장실 '건축'을 우리집 숙원사업 상위 순번으로 정해놓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밖에서 거름(!)을 주다 보니 촌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쓰는 일이 아무래도 '이건 절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퇴비 신청을 안해서(아니 못해서. 보조가 줄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신청을 못한다) 거름이 아쉬운 참에 귀한 거름이 될 것을 돈주고 버리다니(물세와 정화조 푸는 돈이 들어간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임시로라도 바깥 화장실을 만들자

이 점 만은 남편과 내 의견이 100% 일치했다. 자 어떻게 만들것인가. 나는 서서 궁리만 하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무슨 영감이라도 떠오른 듯  마당에 있는 큰 나무둥치를 낑낑대며 굴려오고 부지런히 나무 토막을 날라와 쌓기까지 했다.

"아니 저걸로 뭘 하려고. 나무토막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는 속으로 궁시렁대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멋진 화장실 울타리가 될 줄이야.

엉성 소박한 화장실 울타리
 엉성 소박한 화장실 울타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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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하고도 소박한 울타리 속에 못쓰게 된 의자와 변기 뚜껑을 놓고 재와 왕겨, 잿간을 대신 할 화분, 오줌통을 놓으니 초간단, 초간편, 지상최고의 화장실이 탄생했다.

초간단 초간편 화장실
 초간단 초간편 화장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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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지상최고?  그건 화장실에 앉아보아야 안다. 그 속에서 보이는 경치란. 눈 앞에 보이는 꽃만 해도 목련, 동백, 진달래, 명자꽃, 수선화, 개복숭아, 자두 등이다. 꽃 속에 앉아 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뿐이랴. 근경 중경 원경 할 것 없이 모두 그림이다. 바라다 보이는 것이 산이고 밭이고 들이다. 누가 지나가는지, 어디서 일하는 지도 환히 알 수 있다. 게다가 해가 나면 햇빛에, 바람이 불면 춤추는 대나무숲 구경에, 바람소리, 계곡 물소리가 난다.

"내가 설치미술을 했군."

화장실을 만들고 난 남편의 소감이다.

사립문도 달았다.
 사립문도 달았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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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 가는 재미로 밖에 나간다. 아무리 가도 또 가고 싶은  화장실,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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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촌 ,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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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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