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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 눈을 어디에 둬도 그림이다. 붉은 용암덩어리는 바닷물을 만나 용이 되고 새가 되고, 오랜 세월 끝에 한 줌 모래가 된다. 거무스레한 바위는 파란 바다에 까매지고 파란 바다는 거무끄름한 바위를 만나 새파랗게 된다.

눈을 어디에 둬도 그림 같은 바다, 제주사람들에게는 바다는 그냥 바다, 땅 대신 바다다
▲ 대정 영락리 바다 눈을 어디에 둬도 그림 같은 바다, 제주사람들에게는 바다는 그냥 바다, 땅 대신 바다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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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에게 이런 바다는 그냥 바다, 땅을 대신하는 바다일 뿐이다. 터전이 땅에서 바다로 옮겨온 것일 뿐, 모질고 고된 삶은 바다로 이어진다. 이런 삶의 흔적들이 바닷가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불턱, 도대불, 연대, 방사탑, 해신당…. 농익은 제주바닷가유산이다.

밭에서 밭담 쌓듯 바닷가에서 불턱을 쌓았다. 땅만으로 살림을 꾸리기에 힘이 부쳤던지 바닷가 너럭바위에 소금밭을 일구었다. 밭담 길은 여러 갈래로 뻗은 사람길인 반면 도대불 따라 난 바닷길은 외길, 생명길이다. 외길이어서 일탈은 목숨과 바꾸는 일이다. 그만큼 바다삶이 더 절절한 것이다. 바닷가문화유산이 더 농도가 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들어 버린 도대불과 연대

조천읍 북촌리포구 한구석에 현대식 등대에 밀려 쉬고 있는 예전 등대, 도대불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도대불 화창(火窓)에 실낱같은 불 밝히고 밤바다에 나갔다가, 밸롱밸롱(깜박깜박의 제주말)거리는 도대불 따라 새벽에 돌아와 안도의 한숨으로 사그라져 가는 불을 끄곤 했다.

본때 없이 막 쌓아 어리숙하고 순둥이 같다
▲ 조천 북촌리도대불 본때 없이 막 쌓아 어리숙하고 순둥이 같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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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은 무덤 앞 비석처럼 자신의 비석에 출생연월을 밝히고 있다. '대정(大正) 4년 12월 건립', 나이로 100세다. 공들여 쌓을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었나 보다. 그저 바람을 이기고 멀리서 불빛만 보면 그만이라 생각한 게다. 본때 없이 막 쌓아 어리숙하고 순둥이 같아 정이 가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어리숙해 뵈는 것이 등대역할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데, 첨성대는 높아서 하늘을 관찰했던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워서 실오라기 불빛도 멀리서 보였을 게다. 키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깔봐서는 안 되는 목숨 줄 같은 존재였다.

도대불 옆에서 무자맥질하는 잠녀들의 거친 숨비소리가 들려온다. 그 숨비소리에 맞춰 불 꺼진 도대불은 무심하게도 코롱코롱(쿨쿨의 제주말)잠만 자고 있다. 

도대불은 잠녀의 거친 숨비소리가 들리든 말든 속절없이 코롱코롱 잠만 자고 있다
▲ 물질하는 북촌리잠녀 도대불은 잠녀의 거친 숨비소리가 들리든 말든 속절없이 코롱코롱 잠만 자고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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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세운 '봉수대', 연대(煙臺)라는 것이 있다. 연대는 해안가에, 봉수대는 오름 정상에 세웠다. 통신시설인 연대는 관(官)주도로 만들어져 어느 것이나 네모반듯하다. 네모반듯하면 정이 없어 보인다. 반듯하여 그럴 듯해 보이지만 도대불과 달리 정붙이기가 쉽지 않다. 연대도 도대불과 같은 운명이다. 통신시설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연기나 횃불이 오르지 않았다.

도대불과 달리 연대는 네모반듯하여 정 붙이기가 쉽지 않다
▲ 대정 일과리 서림연대 도대불과 달리 연대는 네모반듯하여 정 붙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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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얘기 터, 불턱과 마을목욕탕

불턱은 잠녀들이 물소중이(잠수복)를 갈아입거나 물질하다 짬짬이 불을 쬐며 쉬는 쉼터다. 마을 일을 의논하거나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던 잠녀들만의 소통공간이다. 조선 때에는 "남녀가 어울려 조업하는 것을 금한다"라는 기록도 있긴 하지만 불턱은 여성공간이다.

일부 불턱은 아직도 이용되고 있으나 많은 불턱이 이처럼 흔적만 남긴 채 죽은 불턱이 돼가고 있다
▲ 애월 불턱 일부 불턱은 아직도 이용되고 있으나 많은 불턱이 이처럼 흔적만 남긴 채 죽은 불턱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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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에는 "잠녀들의 나체조업을 금한다"라는 눈에 띄는 기록이 있는 거로 봐서 예전엔 나체조업도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무명잠수복은 1970년대 오면서 고무잠수복으로 바뀌고 1980년대 들어서서 목욕시설이 갖춰진 탈의실이 생기면서 불턱은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물이 많으면서 물이 없는 곳이 제주다. 땅의 겉과 속이 모두 현무암으로 되어 비가 와도 고이지 않고, 숨골(굴)이 많아 바다로 흘러가버린다. 겨우 바다에 이르러 물이 솟아나는 형편이다. 물이 솟아나는 바닷가에 마을이 집중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큰물은 여탕이고 자근돈지는 남탕이다. 이름처럼 여탕이 남탕보다 크다. 여러 가지 소소한 생각이 든다
▲ 조천리 마을목욕탕 큰물은 여탕이고 자근돈지는 남탕이다. 이름처럼 여탕이 남탕보다 크다. 여러 가지 소소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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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가 솟아나는 우물(물통)은 마을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어서 마을의 소소한 얘기가 오가는 정겨운 공간이 된다. 바닷가마을에서 용천목욕탕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조천리 용천수목욕탕도 그 중 하나다. '큰물'은 여탕이고 '자근돈지'는 남탕이다. 여탕이 크고 남탕이 작은 것도 흥미롭다.

자근돈지, 남탕이다
▲ 조천리 마을목욕탕 자근돈지, 남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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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이 왜 남탕보다 클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라 그렇겠지? 아니면 거친 환경 탓에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많이 해서 그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그것도 아닌가? 1980년대 초에 왔을 때 버스승무원이 남자인 거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모를 일이다. 제주만의 문화이겠지. 문화는 과학이 아니니까.

바닷가 너럭바위 밭, 소금빌레

'부지런한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억센 삶이다. 450여 년 전 애월 구엄리마을 사람들은 바위 위에도 밭을 만들었다. 너럭바위소금밭, 소금빌레다. 농사일에 손 갈라지듯 거북등처럼 갈라진 빌레틈 따라 찰흙 둑을 쌓고 바닷물을 길어 돌소금을 만들었다.

마을사람들은 바위위에도 밭을 만들었다. 너럭바위소금밭, 소금빌레다
▲ 구엄리 소금빌레 마을사람들은 바위위에도 밭을 만들었다. 너럭바위소금밭, 소금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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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굵고 맛좋은 돌소금이다. 1500평에서 대략 3만근을 생산하였다. 염전 일에 시간 뺏긴 마을사람들은 집마다 400근 남짓 되는 돌소금을 중산간 마을사람들과 곡식으로 바꿔 생계를 이어갔다. 한국전쟁 이후 만들지 않던 돌소금을 최근에 '체험·관광용'으로 만든다고 들었다. 돌소금마냥 달작지근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든다.

마을 공동체문화의 상징, 방사탑과 해신당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공경의 대상이요, 두려움의 대상이다. 억센 바다에 내맡겨진 사람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두려움도 함께하면 덜어지는 법이다. 마을공동으로 마을의 사악한 기운을 막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방사탑을 쌓았고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마을사람들이 제를 올리고 굿을 하는 해신당을 마련했다.

가까이 남쪽에 있는 탑이 1호탑, 멀리 북쪽에 있는 탑이 2호탑이다. 물이 들고 날 때 변하는 풍경은 오묘하다
▲ 조천읍 신흥리방사탑 가까이 남쪽에 있는 탑이 1호탑, 멀리 북쪽에 있는 탑이 2호탑이다. 물이 들고 날 때 변하는 풍경은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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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탑은 주로 내륙에 세워지는데 유일하게 바닷가에 세워진 방사탑이 있다. 조천읍 신흥리방사탑으로 남쪽에 하나, 북쪽에 하나있다. 새로 세운 탑과 함께 탑3개가 물이 들 때면 상체만, 물이 빠지면 아랫도리까지 드러낸다.

애쓴 정성이 통한 걸까? 탑을 세운 후 마을은 살기가 나아졌다 전해지는데 물이 들 때나 날 때 만들어내는 오묘한 풍광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어 마을사람들의 삶은 이래저래 형편이 더 나아지고 있다.

해신당으로 김녕리해신당, 종달리해신당, 용담동 다끄네해신당 등이 있다. 애월읍 애월리에도 해신당이 있다. 넓은 정방형으로 돌을 쌓고 북쪽 벽에 '바다신의 자리'라는 뜻으로 '해령지신위(海靈之神位)'라 새긴 비석을 세워 신체로 삼고 있다.

누가 금방 다녀간 걸까? 소주 한 병, 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외지에서 받은 설움을 털어놓은 걸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은 걸까? 소주 한 병에 갖가지 사연을 떠올려본다.

애월리 해신당은 해신당이 마을의 본향당이다. 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이 마을본향당의 신이 되는 것이다
▲ 애월리 해신당 애월리 해신당은 해신당이 마을의 본향당이다. 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이 마을본향당의 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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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떤 섬에 상수도 시설이 들어오면 우물에서 물 긷는 섬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질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섬 출신 선생님이 이 기사를 보고 대노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외지인 눈으로 보면 그저 아름다운 모습이 현지 주민들은 고단한 일일 수가 있다.

불턱은 잠녀의 처우나 작업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냥 이용하지 않는 쓸쓸한 바닷가유산으로 남겨져야 할 것으로 보이나, 내심 물질하다 불을 쬐는 잠녀들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잠들어가는 남도 유산을 잠들지 않게 하려면 제주사람들의 동의와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고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태그:#불턱, #도대불, #연대, #소금빌레, #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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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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