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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류현진, 추신수, 이대호, 박인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다. TV와 신문 등은 앞 다퉈 이들의 소식을 전한다. 심지어 결혼 등 사생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중계된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일부 팬들은 유럽 축구나 미국 메이저리그, 프리미어리그 일정을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스포츠를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 중 캄보디아에 프로축구리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그 프로리그에 한국 출신 선수들이 3명이나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 더욱 적다.

부상에 군대... 돌아가는 걸 포기한 김정호 선수

전 광운대 축구팀 소속 김정호(24·우측) 선수가 프놈펜크라운 FC 입단식을 마친 후 함께 입단한 아프리카 짐바브웨 선수, 그리고 브라질 출신 선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 광운대 축구팀 소속 김정호(24·우측) 선수가 프놈펜크라운 FC 입단식을 마친 후 함께 입단한 아프리카 짐바브웨 선수, 그리고 브라질 출신 선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PHNOM CROWN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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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한국 출신인 세 명의 선수가 캄보디아 프로축구단에 정식으로 입단했다. 김정호 선수는 프놈펜 크라운 FC에, 장인용·김상민 선수는 나가코프 FC에 입단했다. 최근 김정호 선수와 장인용 선수를 만났다.

김정호 선수는 대학축구강팀 중 하나인 광운대 주전 공격수였고 포지션은 센터 포워드였다. 나이는 24살, 잘생긴 얼굴에 키 185cm, 축구선수로서도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캄보디아까지 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부산 부경고 재학시절, 그는 크고 작은 대회에서 팀에 여러 차례 우승컵을 안겨준 촉망받는 공격수였다. 당장 대학무대에서 뛰어도 주전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운명의 신이 그를 시샘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경기출장 횟수는 줄고, 벤치에서 지내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났다.

결국 그는 군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부상회복이 이유였지만, 역시 군입대는 특히 운동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인 공백기가 될 수밖에 없다. 디스크치료 후에도 과거 기량을 되찾기 힘들었다. 결국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마저 포기했다. 4년 가까운 시간을 남모를 고통 속에 참고 견뎌야만 했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도 타들어가는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후 15년 가까이 늘 축구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던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는 대학선배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캄보디아 프로축구단 입단테스트를 받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당시 그는 캄보디아가 지도상에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짐을 쌌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한 달이 다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 사이 그는 자신을 불러준 대학 선배 집에서 지내며 마음고생도 꽤 했다. 여기서도 살아남지 못하면 더 이상 축구와는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걸려오는 한국 가족들의 안부전화에 "잘 지낸다"며 특유의 쾌활함과 넉살로 안심은 시켰지만, 매일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현지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음식과 잠자리 때문에 겪는 불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구단으로부터 최종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유럽축구무대에서 뛴 적이 있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선수, 그리고, 브라질 출신의 베테랑 선수와 함께 지난 1월 21일 입단식을 했다. 현지 언론들도 이들의 입단소식을 스포츠신문 1면에 크게 실었다.

브라질에 대한 미련 접고 캄보디아로 온 장인용 선수

브라질축구유학파 미드필더 장인용(23·왼쪽) 선수와 전 광운대 축구팀 센터 포드 김정호(24) 선수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라질축구유학파 미드필더 장인용(23·왼쪽) 선수와 전 광운대 축구팀 센터 포드 김정호(24) 선수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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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다시 신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행복했다. 지금은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팀 주공격수로 조금씩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다. 부상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었냐는 질문에 그동안 "너무 쉬었던 탓에 아직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3경기 출전에 1골을 기록 중이다.

"부모님이 경기를 보려 오신 적이 있냐?"는 질문에 밝던 목소리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아직 없어요..."

성공한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은 24살 자식의 솔직한 마음이 소리 없이 느껴졌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팀에 입단한 또 다른 축구선수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인용. 김정호 선수보다 한 살 아래인 23살의 선수다. 체구는 김 선수보다는 조금 작은 편이지만, 그 역시 어릴 적 축구신동으로 소문이 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떠난 적이 있는 선수였다. 지금은 나가코프 FC 주전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꿈이 브라질 축구 영웅 '호나우도'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주변의 기대와 뜨거운 관심 속에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꿈을 꾸며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유명클럽 축구팀 입단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더 이상 남미클럽에서도 축구선수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게다가 오랜 축구유학생활을 지원해준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결국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의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고, 캄보디아 프로축구에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다.

1시간 남짓한 짧은 인터뷰였지만, 두 선수 모두 나이답지 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진지함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고생도 심하고 시련도 많이 겪었음을 반증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운동선수 특유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대한민국 젊은이들이었다.

역시 브라질 유학파는 다르구나...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는 프놈펜에 소재한 종합경기장 두 곳에서 치러진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잔디사정도 부상이 우려될 만큼 좋지 않지만, 축구를 향한 선수들의 열정은 프리미어리그 못지 않다.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는 프놈펜에 소재한 종합경기장 두 곳에서 치러진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잔디사정도 부상이 우려될 만큼 좋지 않지만, 축구를 향한 선수들의 열정은 프리미어리그 못지 않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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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터뷰 이후 일주일 쯤 후 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R.C.A.F 경기장을 찾았다. 마침 이날은 장인용 선수가 소속된 나가코프 FC가 경기를 하는 날이었다. 경기는 오후 3시가 넘어서 시작될 예정이었다. 35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탓에 그늘 밑 스탠드를 차지한 수백여 명의 관중들도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심의 휘슬소리와 함께 경기는 그대로 강행됐다. 이날 상대팀은 전년도 리그우승팀인 강팀 '스레이 웽 클럽축구팀'이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잠시 만나서 본 장 선수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 새벽 빗소리에 깨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 내내 몸이 무거워 보였다. 공격을 이끄는 미드필드였지만, 종종 가로채기도 당하고 유효슈팅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감독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 팀 모두 더위 탓인지 이렇다 할 득점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전반전을 0-0으로 마무리했다.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아 어쩌면 후반에 교체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드는 전반경기였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자 장인용 선수의 몸동작이 날래지기 시작했다. 여러 수비수들을 뚫고 전방으로 과감히 단독 돌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발끝에서 골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유효슈팅도 여러 차례 나왔다. 경기가 활력을 찾자, 관중들도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브라질 유학파는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결국 후반 58분 드디어 기다리던 골이 터져 나왔다. 장인용 선수였다.

경기 내내 표정이 어둡던 그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동료선수들도 그를 얼싸안고 축하해주었다. 경기 내내 굳어 있던 감독 표정도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이날 경기는 장인용 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1라운드 8경기까지 치러진 가운데 이날 골을 포함해 장 선수는 모두 3골을 넣어 득점랭킹 공동 5위를 기록 중이다. 경기 후 팀 내 가장 친한 일본인 동료축구선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장인용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은 다른 경기장에선 김정호 선수가 소속돼 있는 프놈펜 크라운 FC의 경기가 진행됐지만, 김 선수는 이날 경기에 뛰지 못했다. 지난 번 경기에서 경고누적으로 이날 경기 출전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김정호 선수는 이날 평상복차림으로 장인용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캄보디아의 유일한 한국친구인 장 선수의 득점 장면을 보며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대한남아 김정호·장인용 선수가 꿈을 이루길...

축구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관심은 뜨겁다. 주말마다 노천 맥주집은 유럽프리미어 축구를 보려 모여든 손님들도 북적인다. 축구장을 찾은 소년팬들이 플라스틱 통과 깡통을 두드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한다.
 축구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관심은 뜨겁다. 주말마다 노천 맥주집은 유럽프리미어 축구를 보려 모여든 손님들도 북적인다. 축구장을 찾은 소년팬들이 플라스틱 통과 깡통을 두드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한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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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캄보디아 프로축구에는 12개의 프로팀이 있다. 유럽 프로축구리그처럼 1부 리그와 하위리그인 2부 리그로 나뉘며 1부 리그 최하위 2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된다. 꿈나무육성을 위한 14세 이하, 16세 이하 유소년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심지어 일본 모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축구팀이 2팀이나 있으며, 그중 알비렉스 니가타 FC는 일본인 감독이 직접 선수로도 뛰기도 한다. 외국용병선수들도 예상외로 많다. 나이지리아, 가나 같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물론이고, 축구명가 브라질과 일본출신 선수들도 상당수 있다. 운영시스템 만큼은 어느 선진축구클럽 못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FIFA 랭킹이 4월 기준 190위로, 최하위권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현재 김정호 선수가 뛰는 프놈펜 크라운 FC와 김인용 선수가 뛰는 나가코프 FC가 6승 1무 1패로 나란히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금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장인용 선수가 뛰는 나가 코페이레션 FC다. 하지만 김정호 선수가 뛰는 프놈펜 크라운 FC 역시 리그 우승도 넘보는 강력한 다크호스다. 지난 2012년 AFC 프레지던트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만큼 저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 연습경기장을 보유할 만큼 후원기업의 지원도 든든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최대명절인 '쫄츠남' 덕분에 이날 경기 후 두 팀 모두 2주간의 달콤한 휴식기간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오는 26일 오후 6시(현지시각) 이들 최대 라이벌팀간의 경기가 프놈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공동선두로 달려온 양 팀의 순위도 갈릴 예정이다. 양 팀을 대표하는 한국 선수들간의 대결도 볼만할 것이다. 김정호 선수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축구유니폼을 입은 후 지금까지 축구만 생각하고 살아 왔어요. 축구가 (저한테는) 전부죠. 더 열심히 뛰어서 명성도 얻고 싶구, 축구시장이 더 큰 이웃나라 베트남이나 태국 프로팀에서도 뛰어 보고 싶어요."

장인용 선수 역시 같은 꿈을 갖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퇴 후 계획은 조금 달랐다. 김정호 선수는 축구관련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장인용 선수는 축구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상하다. 아무쪼록 이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유럽 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를 누비던 박지성 선수처럼 그들도...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김정호, #정인용, #PHNOM PENH 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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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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