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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인권단체(LICADHO)가 검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도. 이 지도엔 지난 13년간 캄보디아 13개 주에서 발생한 토지 분쟁 건수가 담겨 있다.
 캄보디아 인권단체(LICADHO)가 검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도. 이 지도엔 지난 13년간 캄보디아 13개 주에서 발생한 토지 분쟁 건수가 담겨 있다.
ⓒ 리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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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캄보디아의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는 대규모 토지 임대(Land Grabbing)로 발생한 소유권 분쟁 문제를 수치화해 지도와 동영상으로 완성했다.

리카도는 2000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13년 동안 캄보디아 전국 13개 지역에서 일어난 분쟁을 지도에 표시했는데, 빨간색 온점은 장기토지임대로 인해 소유권 분쟁이 발생한 곳을 나타낸다. 아울러 리카도는 지역별로 분쟁 빈도를 0회에서 25회까지 나누어 규모와 빈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인권단체인 리카도가 캄보디아 각 지역에서 입수한 검증된 분석 자료로 이 지도를 제작한 이유는 캄보디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강제퇴거 문제와 외국인 토지 임대규모를 객관적이고 통계화하기 위해서였다.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주 집권기(1976~1979)에 토지소유권에 대한 문서들이 대부분 소각되었기 때문에 토지의 소유권을 증명할 만한 소유권 등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방의 경우 외부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 마을 이장이 판단해 토지 사용을 허락하는 허가증을 발급한다. 이 경우, 개개인의 캄보디아인은 토지의 소유주가 아니라 임대인이다.

물론 한 곳에서 임대인으로 10년을 살면 땅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10년을 생활해도 마을 지도자가 땅의 소유권을 주지 않으면, 임대자로 남게 된다. 거주 사실을 근거로 해도 문서상의 법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캄보디아인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13년간 발생한 토지분쟁으로 50만 명 피해 입어

리카도가 내놓은 지도는 캄보디아 전국 장기임대 토지의 규모가 아니라 리카도의 지역 사무소가 있는 13개 지역에 접수되고 조사한 토지임대에 따른 분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 규모는 그 이상일 것이다.

캄보디아는 현재 24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는데, 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나머지 11개 지역의 토지임대를 추가하면 천문학적 규모의 분쟁이 발생했음을 예측할 수 있다. 2000년부터 토지 소유권 분쟁 조짐이 보이다가 2004년부터 분쟁의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분쟁 건수는 2004년에 120건, 2005년에 140건 등 2004년에서 2013년까지 10년간 해마다 평균 100건 이상의 토지 분쟁이 발생해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특히 2004년에 1만 2000 피해 가구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피해 가구 수가 급속히 증가한다. 이는 중국 등 외국 기업의 투자가 탄력을 받고 한 기업이 대규모로 캄보디아 토지에 투자를 하면서 불거졌다. 외국 기업이 투자한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시에 토지에서 내몰렸다.

2012년 5월, 국제적으로 압력을 받은 캄보디아 정부가 토지 장기임대를 제한한다는 발표를 하기 전까지인 2005년~2011년 사이 강제퇴거가구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05~2011년 사이에 집과 땅을 잃고 근거지를 등져야 한 인구수만 줄잡아 83만 가구다. 한 가족을 4명으로 추산해 계산하면 320만 명이 넘는다. 1500만 명을 조금 웃도는 캄보디아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캄보디아 전역이 토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적 여론의 질타와 압력을 받은 캄보디아 정부가 2012년 5월 토지 장기임대를 제한한다는 발표를 한 뒤 분쟁 발생 건수가 조금 주춤했지만, 2014년 들어 분쟁 건수가 다시 상승하는 모양새다. 지도를 제작한 인권단체 리카도는 13년 동안 발생한 토지분쟁으로 캄보디아인 5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분쟁을 부채질하는 또 한 가지 요소는 캄보디아 정부가 외국 기업과 외국인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캄보디아 경제 및 투자유치 정책' 문건에 따르면, 캄보디아가 투자법을 발효한 건 1994년이다.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2003년 투자법을 개정한 뒤 2005년 투자법 시행령을 내렸다. 이듬해부터 캄보디아 개발위원회 조직 및 기능에 관한 시행령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에 후한 캄보디아 정부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대한 토지 장기임대가 가속화되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거나 낯선 땅으로 내몰렸다.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대한 토지 장기임대가 가속화되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거나 낯선 땅으로 내몰렸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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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1994년 설립된 '캄보디아 개발위원회(CDC)'는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투자 관련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관세나 세금 면제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기업 등록, 비자 및 고용 허가 등 외국인 투자가들의 현지 활동을 관리하고 지원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이미 만성이 돼버린 재정적자와 1인당 GDP 500달러의 빈곤 상태에서 빠져나오고자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외국 자본에게 감세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2006년에는 '농업부문의 향상, 인프라 복구, 민간부문 개발과 고용창출, 능력향상과 인력개발 등의 4대 전략(Rectangular Strategy)'을 세우며 중점분야 투자 유치에 주력했다.

외국기업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전폭 지원은 투자자들을 캄보디아로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외국 투자자가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토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은 마련돼 있었지만, 법적 절차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토지법상 외국인은 토지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캄보디아 정부는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토지에 대해 투자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외국인은 현행법상 토지를 살 수 없으니, '임대'를 하는 것이다. 캄보디아 외국인 투자법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도 내국인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국유지 토지 소유"에 대해서는 예외로 되어 있다.

크메르루주 이후 별 문제 없이 정착한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의 외국인 투자 장려 정책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본거지에서 내몰렸다. 캄보디아에서 국유지(Stage Land)는 공공국유지와 사적국유지로 나누는데, 경제적토지양허에관한시행령(Sub Decree on Economic Land Concession)에 따라 경제적토지양허(Economic Land Concession, 약칭 ELC)는 사적국유지만 해당한다.

공공국유지는 정부기관, 학교 시설 등 공공 목적을 위한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매매나 양도 임대임차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국유지에 대한 정부 문서, 즉 공공국유지와 사적국유지에 대한 각각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거래가 금지된 공공국유지에 대한 투자를 허가했다. 이로 인해 수십 년 동안 한 마을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일순간 법적 보호의 대상 밖으로 밀려났다.

캄보디아 정부 "신빙성 없어 인정 못 한다"

외국인과 외국업체들에 대한 토지 장기임대가 가속화되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거나 낯선 땅으로 내몰렸다.
 외국인과 외국업체들에 대한 토지 장기임대가 가속화되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거나 낯선 땅으로 내몰렸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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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소유권이 아닌 토지허가권을 가진 대다수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정부가 토지를 필요로 하는 투자자에게 ELC, 즉 경제적 토지를 양허하거나 장기임차(Long Term Lease, 최장 90년)를 허가하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자국의 국민들은 한순간 집을 잃고 있는 상황이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토지를 빌린 외국 기업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캄보디아 경제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자국 국민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등의 폭력사태를 촉발시키는 캄보디아 정부의 모습이다.

리카도의 '토지 장기임대에 인한 분쟁 지도'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1일 캄보디아 일간지 <프놈펜포스트>를 통해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지난 1일, 인권단체 리카도의 필로제(Naly Pilorge) 대표는 리카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 지도는 13개 지역에서 리카도의 각 지부가 발로 뛰고 현지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지난 13년간 수집한 증거들에 근거했으며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더 많은 분쟁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라고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그는 "2014년 들어 최근 석 달 동안에 발생한 토지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수만 2246가구"라면서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리카도가 만든 동영상 보러 가기


태그:#캄보디아, #토지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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