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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기업 고용증가, 절반은 삼성전자·현대차의 힘"(<조선일보>)
"2013년 100대 기업 신규채용 절반 삼성전자 - 현대자동차가 책임져"(<동아일보>)


7일 오전 신문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경기침체에도 일자리를 크게 늘렸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들은 CEO스코어라는 회사가 지난해 매출 기준 100대 기업의 2012~2013년 고용률(국내 상주 직원)을 조사한 결과를 분석한 보도자료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현대자동차가 최대 주주인 <한국경제>는 '대기업들, 수익성 악화에도 고용 2.4% 늘린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같은 기간 이들 기업의 매출액이 2.8%, 영업이익이 0.3% 늘어나는데 그쳐 영업이익률이 0.4%포인트 떨어진 속에서도 정부의 고용확대 노력에 화답해 일자리를 늘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벌 대기업이 비정규직과 같은 '나쁜 일자리'만 늘리고 정규직 일자리는 늘리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는데, 정말 고용이 늘었을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재벌들이 금고를 열어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 4년 간 순이익 88.9%↑에도 정규직 고용은 0.3%↓

삼성전자와 현대차 덕분에 일자리가 창출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덕분에 일자리가 창출됐다?
ⓒ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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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스코어라는 회사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고용인원은 74만5098명으로 전년 72만7429명보다 1만7669명(2.4%) 증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9만700명에서 9만5794명으로 5000여 명(5.6%), 현대차가 5만9831명에서 6만3099명으로 3000명 이상(5.5%) 일자리를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지난해 두 회사가 늘린 직원 수는 8365명으로 100대 기업 전체 증가분의 47%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독자들은 기사의 제목만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신규채용 절반을 책임졌다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경영 실적이 최악이었던 2009년을 제외하고 본격적인 회복세가 시작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치 사업보고서의 매출액, 당기순이익, 정규직과 계약직 현황을 살펴본 결과 두 재벌회사는 매출액과 순이익의 증가에 비해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삼성전자는 2010년 매출액이 154조 원에서 2013년 228조 원으로 47.9%가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16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88.9% 늘었다. 그러나 이 기간 정규직 인원은 되레 362명(증감률 -0.38%)이 줄었고, 계약직만 497명(증감률 36.3%) 증가했다.


2013년 삼성전자의 정규직 인원이 9만3928명으로 2012년에 비해 4924명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2011년의 정규직 인원인 10만353명인 것에 비하면 무려 6425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왜 삼성전자에서 2012년에 1만1000명의 정규직 인원이 갑자기 줄어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현대차 매출액 137% ↑... 촉탁계약직 8421%↑

현대자동차는 매출액이 2010년 36조 원에서 2013년 87조 원으로 무려 137%가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5조2670억 원에서 8조9935억 원으로 70%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정규직은 6.7% 느는 데 그쳤고, 촉탁직이라고 불리는 계약직 노동자는 38명에서 3238명으로 무려 3200명, 8421%가 늘었다.

현대차의 정규직이 늘어난 이유는 외부에서 신입사원을 새로 뽑아서가 아니다.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1600명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때문에,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내 발탁 채용했다.

현대차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야 할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일 뿐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했다. 더구나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신규채용한 자리에 3238명의 촉탁계약직 노동자들을 넣어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키고 있다.

고용노동부, 법적 근거 없이 사내하청 고용 현황 공개 연기

더욱 심각한 문제는 통계에서 빠져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숫자다.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사업보고서에는 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의 숫자만 보고하고 있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가 얼마나 증감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 역시 올해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입력을 완료해 공개하기로 한 '고용공시제도' 공개를 4월 1일이 아닌 7월 1일로 연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사내하청 사용 실태 역시 파악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3월 31일까지 입력된 기업의 고용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4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보완기간을 둬 정보를 수정하도록 했다. 그 뒤에도 두 달 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7월 1일부터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7월 1일 이전에는 사내하청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도 사내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정규직은 2500명이었고, 사내하청 노동자는 3018명이었다. 삼성전자 184개 서비스센터 중에서 7개 직영센터 800여 명만이 정규직 기사이고, 나머지 1만 명의 서비스 기사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다.

2013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에는 5744명의 사내하청(생산하도급)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식당·청소·경비·출고 등을 포함하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수는 1만1259명에 이른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현대차가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신규채용을 계속해 2010년에 비해 2000명 정도 줄어든 상태다.

국민 혈세 받은 대기업, 일자리 창출은? '거짓말'

이명박 정권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이유로 '법인세 인하' '고환율 정책' '폐차보조금' 등 재벌퍼주기 정책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대기업에 쏟아부었다. 박근혜 정권도 재벌 퍼주기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대기업의 매출액과 순이익은 급증했고 기업의 이윤은 사내보유금·주식배당금·임원 연봉 등의 이름으로 재벌들의 금고로 들어갔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재벌들을 지원했지만, 대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지 않은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자료에서 확인된 것처럼 2010~2013년 4년 동안 매출액과 순이익은 급증했지만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았거나 오히려 줄어든 대기업들도 많았다. 기술력·자동화 등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규직을 사용해야 할 자리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차가 경기 침체에도 일자리를 늘렸다는 기사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신문에 버젓이 실리고,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법적 이유도 없이 '고용 공시'를 공개하지 않는다. 조금만 살펴보면 확인되는 뻔한 거짓말이 인터넷에 즐비하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시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점규 기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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