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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3일 청와대와 중앙정보부는 '친북 노동자·농민 정권 수립 기도'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세칭 '민청학련'사건을 발표하고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다. 학생들의 단순 유신반대 시위조차 친북, 용공으로 몰아 최하 징역 5년 이상에 사형, 무기징역까지 처하도록 했다. 이 사건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 지학순 주교, 김찬국 교수 등 1024명이 무차별 연행돼 조사받았고, 180명이 구속·기소되고 8명이 법정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후 유족과 피해자들의 줄기찬 노력의 결과, 2005년 '국정원 진실위원회'는 민청학련 사건을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한 학생운동 탄압사건"으로 규명했고 이후 피해자들은 재심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유신독재에 의한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려진 민청학련 사건 외 '정권안보'의 숨겨진 희생양은 또 있었다.

민청학련 사건에 가려진 유신정권의 희생양, 울릉도 사건

전직 대통령과 교수, 문인, 대학생, 재야인사 등 명망가와 지식인들이 포함된 민청학련 사건이 발표되기 불과 한 달 전인 1974년 3월 15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통혁당 이후 최대 간첩단"이라며 '울릉도 거점 간첩단사건'을 발표했다. 평범한 중산층이자 섬마을 주민들이었던 47명의 연루자들은 발표 당일 무죄 추정은커녕 언론에 나이, 본적, 주소, 직업에 얼굴 사진까지 낱낱이 공개되었다.

울릉도 사건 피의자들은 재판과정에서 "중정에서 취조 받을 때 강한 고문과 강요를 이겨낼 도리가 없어 추궁 받은 대로 시인한 것이지 전혀 사실 무근"(홍OO), "모두 중정에서 취조 받을 때 피고인과 수사관 사이에서 대화 중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진 범죄이다"(이OO)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중앙정보부의 고문 가혹행위의 진상은 이러하다.

"남산 분실로 이동해서 조사 받을 때 수사관들이 '동생 옷 벗게 해야 하는데(당시 동생 이OO는 현역 준장이었음) 아직 결정이 안 되었으니 협조하라'며 회유를 하다가 얼마 뒤 건장한 청년 3~4명이 들어와 장작을 바닥에 깔더니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한 뒤, 야전침대에서 각목을 빼서 머리를 제외한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이 '난수표, 무전기를 내놓아라' 하면서 1시간 정도 때려서 정신이 반쯤 나갔으며 온몸은 피와 내복이 엉겨 붙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조서를 작성하였다. 구타를 당하고 조서를 작성하기를 반복했다." (이OO)

"나는 '이치왕'(수사관)이 지옥에 가라고 명복을 빌고 싶을 정도로 (이치왕으로부터) 지독하게 고문을 당했다. 조사받을 때 주먹으로 얼굴을 너무 많이 맞았고, 30cm짜리 자로 얼굴을 맞아 많이 부었다. 주먹으로 맞으니 입 안이 모두 터졌고, 잇몸이 전부 터져 늘 입안에 피가 고였다. 그래서 나중에 구치소에 가니 치아가 5~6개 빠져서 구치소 의무관이 틀니를 해 넣어 주었다. 그리고 미군담요를 물에 적셔서 얼굴만 덮고는 수사관들이 온 몸을 구타했다. 담요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너무 괴로워서 소변을 다 지릴 정도였다. 그리고 각목을 무릎 뒤쪽에 끼워 넣고는 앉게 하고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밟았다. 그때도 다리가 좋지 않았는데 그때 그렇게 당하고 나서는 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했다." (손OO)

47명의 고문피해의 참상은 형용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구속 기소된 32명 중 현재 14명이 생존해 있으나, 생존자의 현재 평균 연령은 79.4세(68세~90세)이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는 중정이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를 가한 점에 대하여 신청인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화해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 3명은 1977년 12월 5일 사형이 집행되었고, 나머지 피해자들도 십수 년의 징역과 보호관찰로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후였다. 피해자들은 현재 법원에서 재심 중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최근 검찰의 잇단 항소로 지긋지긋한 고통을 이어가고 있다.

40년 만의 해후

2013년 8월 울릉도 사건 재심공판 방청석에 1974년 4월에 일어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몇 사람이 모습을 보였다. 민청학련 사건은 이미 재심에서 무죄판결과 법적 배상이 완료된 상태였다. 이들은 민청학련-인혁당 사건 직전에 발표된 '울릉도 거점 간첩단사건'이 오랜 세월 아무런 사회적 연대와 지지 없이 힘겹게 재심까지 오게 된 과정을 듣고 직접 재심공판정에 참석한 것이다. 그 날 공판 이후 가진 저녁식사에서 민청학련 관련자들과 울릉도 사건 생존자들은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나누었다.

1974년 유신반대 학생운동 민청학련사건조차 당시 "북괴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중앙정보부와 관제언론의 악의적 비난을 받았지만, 박정희 유신독재도 이들을 덮어놓고 '간첩'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간첩사건 조작에 가장 손쉬운 대상은 '조작을 해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박정희 독재 18년간 조작간첩사건 피해자의 대부분은 재일동포 유학생과 같이 한국어조차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울릉도 사건에서와 같이 납북어부나 북한에 연고가 있는 이산가족들이었다. 이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거나 월북자 가족 등의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간첩으로 날조해도 제대로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변방에 위치한 사람들이었다.

2014년 1월 10일 서울고법은 울릉도 사건 재심에서 간첩단 사건 무죄 판결을 내렸다.
▲ 울릉도 사건 무죄선고 2014년 1월 10일 서울고법은 울릉도 사건 재심에서 간첩단 사건 무죄 판결을 내렸다.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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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남 가운데 민청학련 관련자로 1980년대 마당극을 이끈 연극연출가이자 소리꾼인 임진택은 민중음악 작곡가 최창남이 쓴 울릉도 사건 이야기 책 <울릉도 1974>를 전달받았다. 임진택은 자신이 40년 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었으면서도 동시대에 일어난 울릉도 조작간첩사건을 이제야 알게 된 자책감과 이 분들의 피눈물나는 사연을 접하면서 이를 연극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극작가 양정순, <신주쿠 양산박>의 재일동포 연출가 김수진 선생이 결합하면서 서사 치유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 제작이 본격화됐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제작 후원을 맡았다.

4월 3일부터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무대에

김봉준 화백의 작품이다.
▲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포스터 김봉준 화백의 작품이다.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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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발생한 고문 등 국가폭력의 실상을 다룬 영화들(<남영동1985>, <변호인>, <청야> 등)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독재정권 하에서 발생한 간첩조작사건을 연극예술로서 치유하는 과정을 다룬 치유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개막하는 치유연극 <상처꽃>은 고문과 치유라는 주제적인 측면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선, 한국 마당극의 얼굴 임진택과 일본 현대연극의 대표주자 반열에 있는 재일동포 연출가 김수진이 총감독과 연출을 각각 맡은 것만으로 기대가 크다. 간첩, 고문, 치유라는 어려운 주제가 임진택 총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 김수진 연출가의 풍부한 경험과 세련된 형상화 과정을 거쳐 대중을 만난다.

또 극단 길라잡이에서 <직녀에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기획한 양정순 작가, 두렁패 그림의 창시자로 치유미술을 연구해온 김봉준 화백이 미술감독으로 함께한다. 극단 길라잡이의 8명의 40대 중견 배우들은 우연히도 당시 피해자들의 연령대와 일치하여 어느 때보다 몰입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극단 길라잡이 배우들의 연습장면
▲ 치유연극 <상처꽃> 연습장면 극단 길라잡이 배우들의 연습장면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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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배우들은 지난 3월 15일 울릉도 사건 실제 피해자들과 만났다.
▲ 극단 길라잡이 <상처꽃> 연습장면 출연 배우들은 지난 3월 15일 울릉도 사건 실제 피해자들과 만났다.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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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극에는 특히, 70, 80년대의 민주화운동가들의 깜짝 카메오 출연도 볼 수 있다. 개막날인 4월 3일은 함세웅 신부가 재심 재판장 역할을 맡았고, 배심판사로 민청학련의 이철, 울릉도 사건피해자 이사영 선생이 출연한다.

임진택 총감독과 김수진 연출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의 <상처꽃> 시연 장면
 임진택 총감독과 김수진 연출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의 <상처꽃> 시연 장면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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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 까메오 명단
 <상처꽃> 까메오 명단
ⓒ 임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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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 까메오 명단
 <상처꽃> 까메오 명단
ⓒ 임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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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울릉도 사건의 개요
▲ 울릉도 간첩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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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유신체제가 선포될 즈음 중앙정보부 공작과는 재일공작망을 통해, 재일민단 소속으로 유신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업가 이OO에 대한 공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재일민단은 1971년 민단장 선거과정에서 유신과 반유신파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있었고, 중정의 개입으로 유신지지파가 당선되어 유신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이 진행되고 있었다. 중정은 민단 내 유신반대파의 이OO을 '간첩'이라고 전제하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역용 공작을 진행했다.

하지만 후에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울릉도사건에서 '간첩총책'이 된 이OO이 간첩임에 대해 당시 일선에서 공작을 진행했던 중정 수사관들조차 그 근거를 대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재일교포 이OO씨가 조총련 소속 간첩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중앙정보부가 '재일간첩'이라고 발표한 이OO은 전라북도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사업에 성공한 재일 실업가였을 뿐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진행되던 비밀공작은 1974년 1월 긴급조치 1호가 선포되자 급진전되었다. 중앙정보부는 서둘러 2월 3일부터 한 달여간 전OO, 김OO, 전OO, 이OO, 이OO 등 관련자 수십 명을 모두 전격 연행하였다. 연행자들 가운데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부모 모두 끌려간 후 나이 어린 자식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방치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1960년대 초 북에서 내려온 조카를 만나 경제적 도움을 찾아 단순 월북했던 울릉도 거주 O씨 일가 몇 사람과 일본 유학 중 호기심에 북을 다녀왔던 유학생 한 사람에 대한 혐의가 전부였던 사건이 '통혁당 이후 최대'라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갑자기 왜곡되어 부풀려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사건을 발표하면서 재일 한국인인 이OO을 중심으로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울릉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 각기 서울, 대구, 익산 등의 도시와 농어촌을 무대로 대학, 정당, 군에서 농어촌에 침투해서 공작활동을 하고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고 주장하였다.

전라북도 출신인 이OO이 "울릉도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OO과 사업적 교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울릉도 사람들과 전라북도 사람을 단일 사건으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 울릉도 사건으로 기소된 32명 중 전라북도 사람들은 12명인데 실제 이들은 울릉도에 가본 적도 없고 울릉도 관련 피의자 20명을 이전에 알지 못할 뿐 아니라 1974년 7월 재판받을 때 처음 보았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조직 규모만 부풀린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혐의 사실도 크게 부풀려 조작하였다. '재일 간첩 이OO'을 허구로 설정하고 유학이나 사업 관계로 이OO과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과 지연, 학연, 혈연 관계로 만난 모든 사람들을, 오직 수사당국의 주관적 판단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에 근거하여 대규모 간첩단으로 조작한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울릉도 간첩단조작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는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는 3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된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2회 공연), 일요일은 오후 3시에 막을 올린다.(월요일은 쉼) 단체 및 개인 관람 문의는 극단 길라잡이 070-8158-3754.



태그:#상처꽃, #울릉도간첩단 조작사건,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치유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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