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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유람을 하는 하우스 보트들이 야자수 나무 사이에 정박하여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 남인도 알레피 수로유람을 하는 하우스 보트들이 야자수 나무 사이에 정박하여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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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께랄라 주의 백워터 크루즈는 일반적으로 알레피와 꼴람 사이 코코넛이 늘어선 수로를 헤치며 유람을 하는 크루즈 여행입니다.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남인도 께랄라 주는 수로를 통해 쌀과 차 등의 물자와 사람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발달했습니다.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아라비아 해는 작은 배를 저어가다가 사고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안전한 항로를 개설하기 위해 해안에 가까운 육지 뒤쪽으로 우회를 하는 수천킬로미터의 수로를 내게 된 것이지요. 바다를 등지고 낸 수로라고 하여 '백워터 트립' 혹은 '백워터 크루즈'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아라비아해 등지고 육지 사이로 낸 수로

아라비아해를 등지고 육지 사이로 낸 수로는 좁은 곳도있고 바다처럼 넓은 곳도 있다.
 아라비아해를 등지고 육지 사이로 낸 수로는 좁은 곳도있고 바다처럼 넓은 곳도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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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연결된 수로는 육지 사이에 있어서 매우 잔잔합니다. 어떤 수로는 배들이 겨우 비껴 갈 정도로 매우 좁은가 하면 어떤 곳은 바다처럼 굉장히 넓습니다. 그러나 육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배들도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와 철도가 발달한 근대에 와서는 물자수송 대신 수로유람이 께랄라 주 최고의 관광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날씨가 덜 덥고 건기인 12월과 2월 사이에는 백워터 크루즈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합니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코코넛 나무들이 비스듬히 누워있고, 파란 하늘, 환상적인 노을이 어우러진 수로는 그야말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남인도의 수로여행은 주로 알레피에서 출발하여 꼴람까지 페리, 우람선, 하우스 보트로 하는데 그 수로가 수천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남인도의 수로여행은 주로 알레피에서 출발하여 꼴람까지 페리, 우람선, 하우스 보트로 하는데 그 수로가 수천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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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유람은 보통 알레피(Alleppy)에서 출발하여 꼴람(Kollam)을 오가는 항로를 취하게 됩니다. 승선장 근처의 관광사무소에서 승선권을 구할 수 있는데, 시간과 돈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저렴한 것은 알레피와 꼬따얌을 오가는 페리를 타는 것인데 현지주민들이 주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2~3시간짜리 유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주로 8시간짜리 유람선을 이용합니다.

하우스 보트(House Boat)는 침실과 식사가 제공되어 보통 배에서 기본적으로 1박 이상을 하게 됩니다. 쌀 수송선을 개량하여 만들었다는 하우스 보트는 선장과 요리사, 그리고 웨이터가 선상 서비스와 요리를 제공합니다.

또 빌리지 투어란 것이 있는데, 이는 작은 보트를 타고 수풀이 우거진 좁은 물길을 따라 원시적인 마을을 돌며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는 투어입니다.

작은 배를 타고 빌리지 투어를 체험을 떠나는 사람들
 작은 배를 타고 빌리지 투어를 체험을 떠나는 사람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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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보트에 올라 우리는 각자의 침실을 배정받았습니다. 2인 1실로 되어 있는 침실에는 각각 욕실이 달려 있고, 천장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에어컨 시설도 되어 있는데 전기 사정 때문에 밤 10시경에나 작동을 한다고 합니다.

침상 앞쪽에는 밖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게 유리로 된 창문이 나 있습니다. 갑판 맨 앞쪽에는 선장이 앉아 항해키를 돌리는 핸들이 놓여 있고, 그 뒤에는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룸 서비스 맨이 망고 주스와 바나나, 그리고 파인애플을 들고 왔습니다. 우리는 갑판의 식탁에 앉아 이국의 정취를 만끽하며 망고 주스와 남국의 과일을 먹었습니다. 문득 인도 북부에 있는 카시미르 달 레이크에서 하우스 보트를 타고 하룻밤을 묵었던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러나 이곳 알레피의 수로유람은 달 레이크보다 훨씬 이국적이고 운치가 더 있습니다.

코코넛 나무 사이 파란 하늘, 아무 생각이 안 난다

하우스 보트를 운항하는 선장
 하우스 보트를 운항하는 선장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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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매놓은 밧줄을 풀고, 콧수염을 기른 선장이 유연하게 핸들을 돌리자 보트가 스르르 움직이며 좁은 수로를 미끄러져 나갑니다. 나는 그저 유람선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며 하늘 높이 솟아 있거나 반쯤 누워있는 코코넛 나무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코코넛 나무가 도열해 있는 수로 사이를 스르르 움직이는 배! 마치 수상 낙원을 유람하는 느낌이 듭니다. 유람선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갑니다.  

어떤 곳은 두 대의 배가 마주 보고 지나가기도 벅찰 만큼 아주 좁은 곳도 있습니다. 좁은 수로를 지날 때에는 선장은 배의 속도를 아주 느리게 낮추고 서서히 운행을 합니다. 배들은 서로 몸체를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도 있는데 이곳은 제법 풍랑이 거세 배가 파도에 출렁거리기도 합니다.

두 대의 배가 겨우 비껴나갈 만한 좁은 수로에서 배들이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고 있다.
 두 대의 배가 겨우 비껴나갈 만한 좁은 수로에서 배들이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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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낭만적인 수로는 이 세상 어디에도 볼 수가 없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집트의 나일 강, 베트남의 하롱베이, 그리고 중국의 황허와 계림을 배를 타고 유람을 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남국의 정서가 물씬 풍겨오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낭만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배를 타고 수로를 유람을 하면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사랑은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명약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랑을 하거나 아플 때는 어디론가 떠나가야 하는 모양입니다.

손을 뻗치면 코코넛과 바나나가 따 먹을 수도 있는 거리에 있기도 합니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곳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고 하는데 지금 이 풍경이 바로 그런 순간인 것 같군요. 악한 마음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마음과, 선한 마음만 술술 흘러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행을 떠날 때 지치고 혼란스러워 하던 아내도 뱃전에 기대 앉아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심신이 치유가 된 듯 안정된 모습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엔도르핀이 솟아나와 아픈 심신이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할 때나, 아플 때 떠나라!"

참 좋은 말입니다.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풍광을 접하다 보면 어지간한 마음의 병은 치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심신의 병은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병이란 과거의 좋지 못한 잠재의식이 앙금처럼 침잠되어 있다가 그것이 심신의 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그 앙금을 지우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보트 한대를 전세를 내 한 달씩 유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트 한대를 전세를 내 한 달씩 유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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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길 보세요. 저 사람들은 배 한 대를 전세 내어 한 달 혹은 석 달 동안 유람을 하기도 해요."
"우와, 석 달 동안 무엇을 하지요?"
"그 사람들은 그냥 책 읽고… 낚시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래요."
"배를 타고 책을 읽기에는 딱 좋은 여행일 것 같아요."
"아, 그래요?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하루도 지루한데요. 하하.

우리는 인도 가이드 샌딥의 어눌한 한국말에 모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를 했다는데 신사동, 잠실, 무교동 낙지, 부산 자갈치 시장도 알고, 모르는 것이 없군요. 잠실에 한국인 양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참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어부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그물을 당기고 있다.
 어부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그물을 당기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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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호수에는 어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물을 당기며 웃는 모습이 퍽 행복해 보이기도 합니다. 수로에는 코코넛, 바나나 등 열대 과일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코코넛과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란 황금 벌판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고단한 현지인들의 삶...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수로 옆에 펼쳐진 황금벌판
 수로 옆에 펼쳐진 황금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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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지나며 우리는 현지인의 삶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 할머니가 낚시를 하고 있군요. 저녁 찬거리를 낚는 것일까요? 남자보다 여자들이 저렇게 앉아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군요. 

빨래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다리를 반쯤 담그고 서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퍽 인상적으로 보입니다. 수로 가에 사는 사람들은 강에서 세수를 하고 목욕도 합니다. 강과 더불어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단한 모습을 바라보자니 하우스 보트를 타고 가는 내 자신이 좀 부끄럽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수로에 사는 사람들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세수와 목욕도 한다.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수로에 사는 사람들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세수와 목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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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자 선장은 항해를 멈추고 어느 야자수 그늘 아래로 배를 정박했습니다. 이렇게 항해를 하다가 밤이 되면 적당한 곳에 멈추어 숙박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노을이 지는 선상에서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남인도의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더러는 도마뱀이 선실에 올라오기도 하는군요.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자연의 품에 안겨 새들과 물고기들, 그리고 야생 동물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밤. 이제 새들도, 물고기들도 밤에는 잠을 자는 모양입니다.

선상에서 맞이한 아침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군요.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새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있습니다. 코코넛나무 사이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그 모습이 과히 환상적이군요! 우리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인도 짜이와 토스트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니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느낌이 듭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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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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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좁은 수로를 지나 어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야자수 나무 사이 사이에는 아직 정박해 있는 배들이 많군요. 생각 같아서는 며칠 이렇게 배를 타고 휴식을 푹 취하고 싶은데, 이제 다음 여행지로 가는 일정 때문에 아쉬운 이별을 고해야 합니다.

"남인도에 가면 하우스보트를 타라!"

이 말씀을 꼭 해드리고 싶군요. 야자수 그늘 사이로 낭만이 뚝뚝 떨어지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13일까지 남인도 여행을 한 내용입니다.



태그:#낭만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남인도 수로여행, #알레피 백워터 크루즈, #남인도 기행, #백워터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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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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