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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추진되는 돌봄교실 사업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의 돌봄교실(사진 속 돌봄교실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지방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추진되는 돌봄교실 사업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의 돌봄교실(사진 속 돌봄교실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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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낮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돌봄교사(돌봄전담사) A씨가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학생 20여 명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거나 의자에 앉아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학생들을 지켜보던 A씨는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아이들을 교실에 붙잡아두는 돌봄으로 전락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 돌봄교육 운영비가 대폭 줄어들면서 각 학교 돌봄교실에서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보조교사도 모두 학교를 떠났기 때문에 아이들은 돌봄교실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분한 예산이 반영되지 못한 탓이다. 일부 학부모는 돌봄교실 신청을 철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돌봄교실이 혼란에 빠졌지만, 박근혜 정부는 학부모 부담이 줄었다며 무상교육 공약을 실현하고 있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A씨는 "가짜 무상급식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교육을 보여주기 위해 돌봄교실을 늘리는 데만 돈을 썼다"면서 "돌봄교실의 질이 떨어지고 부실해졌다"고 비판했다.

보수언론은 돌봄교실을 무상복지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돌봄교실을 졸속으로 추진한 탓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돌봄교사들은 "지금껏 돌봄교실 평가는 좋았다"면서 "예산을 적재적소에 배정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환영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개학 한 달 앞두고 예산 내려와... 뒤늦은 교실 공사로 '혼란'

돌봄교실 확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지난해 10월 교육부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을 초등학교 1~2학년 학생 중 희망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돌봄교실 참여 학생 수를 45만4000명으로 내다봤다. 이는 당시 돌봄교실 참여학생 15만9000여 명의 3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문제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졸속 발표였다는 점이다. 돌봄교실 확대 시행을 위한 예산 6109억 원을 국고가 아닌 각 시도 교육청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재원 마련 등 준비 없이 무상교육 생색만 낸다는 비판이 일었다. 교육부가 돌봄교실 계획을 확정한 것은 개학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 1월 28일이었다. 올해 돌봄교실 참여인원 수는 24만6000여 명으로 교육부의 예상에서 크게 줄었다. 교육부는 돌봄교실 확충에 필요한 시설비 597억 원을 각 시도교육청에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각 학교에 돌봄교실 설치 예산이 내려온 것은 2월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입찰 계약을 하면 3월 이전에 사업이 완성될 수 없다"면서 "수의 계약을 통해 사업자를 조속히 선정해 개학 이전 돌봄교실 설치 완료를 추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 보내며 압박했다.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일부 학교에서는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돌봄교실을 열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돌봄교사는 "교실 공사가 끝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방치해야 했다"고 밝혔다. 일반교실과 함께 쓰는 겸용교실에서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책상을 뒤로 밀어놓고 돌봄교실 생들을 받았다.

예산도 낭비됐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돌봄교실을 2곳 설치했다. 하지만 한 곳만 운용하고 있다. 이 학교 돌봄교사는 "돌봄교실 신청자가 27명"이라면서 "교사가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제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아이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1500만 원을 들인 돌봄교실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장선생님 모임에 가면 돌봄교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남는 교실도 없고 준비할 시간도 없는데, 윗선에서 돌봄교실을 열어 희망하는 학생을 받으라고 하니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상교육은 거짓말? "학생 아닌 박 대통령 위한 돌봄교실"

최근 육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돌봄교실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7일 한 육아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돌봄교실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들끼리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면서 "성의있는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돌봄교실 혜택을 받는 학생 늘리기에 치중하면서 돌봄교육의 질은 크게 떨어졌다.

올해 오후 돌봄교실 간식비는 월 3만 원이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저녁 돌봄에 참여하는 학생은 석식비로 8만 원을 내야 한다. 모두 11만 원이다. 지난해에도 저녁 돌봄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2만 원가량을 내야 했다. 학부모 부담은 그대로다. 하지만 돌봄교실의 질은 추락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보조강사가 없기 때문이다. 곽승용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은 "돌봄교실 공약은 대국민 사기였다"고 지적했다.

돌봄교실 운영비가 크게 줄어든 것 역시 돌봄교육 부실화의 원인이다. 월 운영비가 지난해 30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2014 초등 돌봄교실 운영 길라잡이>에서는 돌봄교실에서 예체능, 체험학습과 같은 단체활동과 개인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운영비 부족으로 이를 따를 수 없다.

한 돌봄교사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는 데다 보조교사도 없다"면서 "돌봄교사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행정업무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돌봄교실이 파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돌봄교사 처우가 낮은 점도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하기 어렵다. 현재 돌봄교사는 시간 당 6640원을 받는다. 월 120만 원가량이다.

돌봄교실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는 것을 두고 정치 논리에 의한 정책 추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학교가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졸속으로 돌봄교실을 진행했다"면서 "교육 내용이 없이 단순히 학생들을 붙잡아 두고 있다, 학생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돌봄교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태그:#돌봄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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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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