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3년 3월 6일 수요일] 현장 숙소를 준비하고 전화와 인터넷 개통

이사짐을 날랐다. 다음 주 월요일(3월 11일)부터 목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현장 숙소로 빌려 둔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불들을 싣다 보니 짐이 커졌다.

부천을 출발해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는데도, 타버린 집을 다시 보아야 하고 고된 노동이 시작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금방 마을회관에 도착해 버린 것 같다.

집은, 가장 큰 자산으로 집값이 오르면 팔고 저축해 둔 돈을 보태서 좀 더 비싼 집을 갖는 것이지, 우리의 삶과 하나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집을 잃고 났더니 모든 생활이 흐트러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집은 삶을 영위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마을회관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읍내의 여관을 2개 정도는 임대해서 두 달 동안 힘들게 생활했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넓은 방 두 개와 거실을 내 집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열심히 일하고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을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 구계1리 마을회관 마을회관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읍내의 여관을 2개 정도는 임대해서 두 달 동안 힘들게 생활했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넓은 방 두 개와 거실을 내 집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열심히 일하고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을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 박인성

관련사진보기


마을회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있으려니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와 손을 잡고 격려해 주신다. 70대 이상이 대부분인 마을이다 보니 마을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셨고, 우리가 이곳에 온 후로 동네에 새 집이 세 채나 지어지고 10여 명의 주민이 늘어나서 매우 좋아하셨다. 그런데 지난 겨울의 화재로 혹시나 우리가 이곳을 등질까 싶어서 매우 걱정하셨다고 한다.

사실 이곳을 떠날까도 생각했었다. 연초에는 정농(기자의 아버지)께서 팔이 부러지시고, 봄에는 수천(기자의 어머니)께서 손가락을 크게 다치시어 봉합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셔야 했다. 12월 1일의 화재는 2012년 한 해의 모든 불행 중에서 가장 큰 불행이었다. 이 땅이 이제 와서 우리의 정착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던 곳을 정리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무농약 무제초제로 되살려 놓은 땅이 아깝고, 새로운 땅을 다시 살리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결국 집을 수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전화와 인터넷을 개통해 달라고 114에 전화를 했더니 이틀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이틀 동안은 사이버 세상과 거의 단절이구나 생각했더니, 한 시간 쯤 후에 며칠 전 정농께서 따로 신청하신 전화 이전을 하러 오겠다고 한다. 참 잘 되었다. 오는 김에 인터넷도 같이 이전을 해 달라고 했다.

집 수리를 위해 거실에 쌓여 있는 가재도구들과 외부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기사들이 와서 순식간에 전화선과 인터넷선을 연결해 주고 간다. 인터넷이 열리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고마운 분들이다.

저녁은 마을 청년회에서 토끼고기로 특식을 마련해 주었다. 커다란 거실에서 환갑을 바라보는 청년들이(?) 직접 요리한 토끼탕으로 식사를 하는데 참으로 맛이 있다. 토끼 한 마리가 열댓 명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고, 강한 양념으로 맛을 내니 냄새가 나지 않아 먹을 만했다. 진도 고모가 보내 주신 봄동에다가 쌈을 싸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집짓기 첫날을 무난하게 보내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인간의 노동력과 시간은 참 신비롭다. 차근차근 손을 쓰고 발길을 옮기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되어가니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한 걸음씩 새로운 집을 만들어가자.

[2013년 3월 7일 목요일] 일머리를 잡다 : 집짓기 둘째 날

화재의 잔해는 전부 폐기물이다. 우리는 집을 잃었지만 지구는 쓰레기를 떠안아야 하니 모두에게 고통스런 일이다.
▲ 비닐 포대에 가득 담긴 화재의 잔해물과 나무를 태우는 드럼통 화재의 잔해는 전부 폐기물이다. 우리는 집을 잃었지만 지구는 쓰레기를 떠안아야 하니 모두에게 고통스런 일이다.
ⓒ 박인성

관련사진보기


마을회관의 우리 방은 오래 동안 비워둔 방이라 냉랭했지만 잠은 잘만했다. 입맛이 없어서 뻑뻑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현장으로 가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비가 오든 안 오든 할 수 있는 일은 할 것이다.

정농께서는 컨테이너 내부 정리, 수천께서는 비닐하우스 내부 정리, 무일은 외부 현장을 정리하여 공사 착수를 준비하기로 했다. 마을회관에서 가져간 드럼통에다가 밑불을 피우고 타다 남은 통나무들을 집어넣었다.

아침에 내린 비로 통나무가 많이 젖어있었는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한참을 씨름해서 간신히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렇게 불을 붙이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허무하게 화재가 난다는 것이 또다시 믿기지 않았다.

일단 태워야 할 나무토막들을 가져다 넣으며, 어떻게 해야 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한 달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땔감이었으니 양이 꽤 많아서 태우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집 외벽에는 군데군데 유리섬유도 드러나고, 지붕재로 쓴 아스팔트 슁글도 바닥에 뒹굴고 있다. 단순히 나무만 태운다고 현장이 정리되기는 어려웠다. 힘이 들더라도 분리 수거를 해서 비닐 봉투에 담아 놓으면 폐기물 처리가 쉽고 일도 진척되는 것이 보일 것 같았다.

나무를 충분히 집어넣어 놓은 뒤에 퇴비를 뿌리고 보관해 둔 비닐포대를 꺼내왔다. 서른 장이 넘으니 꽤 많은 양의 쓰레기를 담을 수 있겠다. 불에 녹은 아스팔트 슁글, 유리섬유, 플라스틱 조각들을 천천히 푸대에 담아 한 곳에 쌓았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타다 남은 땔감들도 나중에 태우기 좋게 한쪽 구석에 정렬해 놓았다.

불에 탄 장작더미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서 나무가 떼어지지를 않는다. 봄이 왔으나 구석구석까지 다 스며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삽으로 얼음을 깨어가며 작업을 하게 되니 일이 더디다. 두 시간 가까이 정리작업을 했는데도 현장은 일을 한 흔적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포대에 담긴 폐기물의 양은 제법 되어 위로가 된다. 국수를 끓여서 점심을 먹고 다시 두 시간 남짓 일을 했더니 그제서야 일한 흔적이 드러난다. 하루 정도만 더 일하면 보일러실 옆에 쌓여 있던 불탄 장작과 폐기물들은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역시 일은 해 보아야 일머리가 잡히는 모양이다.

보일러실, 작은방, 화장실, 뒷베란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목조주택이 의외로 화재에 견디는 힘이 강해서 불이 번지는 속도가 느려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다.
▲ 보일러실 쪽에서 바라본 화재 현장 보일러실, 작은방, 화장실, 뒷베란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목조주택이 의외로 화재에 견디는 힘이 강해서 불이 번지는 속도가 느려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다.
ⓒ 박인성

관련사진보기


저녁을 먹고 하루 일을 정리하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다시 신고를 해야겠다. 책이나 보려다가 카톡으로 부천과 서울의 식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토요일에 전부 내려와서 일손을 돕기로 했단다. 화재현장이라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내일 일을 좀 진행시켜두면 큰 문제없이 주변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가족이 가장 큰 위로이며 힘이다.

덧붙이는 글 | 첫 편을 쓰고 1년 만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연재를 할 수가 없었지요. 시간이 많은 것을 잊게 해 주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을 지으시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집짓기, #무일, #무일농원, #가족, #마을회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 없이 살아도 나태하지 않는다. 무일입니다. 과학을 공부하고, 시도 쓰며, 몸을 쓰고 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