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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9. 9. 미군들이 경례하는 가운데 성조기가 조선총독부(후, 중앙청) 광장에 게양되고 있다.
 1945. 9. 9. 미군들이 경례하는 가운데 성조기가 조선총독부(후, 중앙청) 광장에 게양되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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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1930년 3월 1일, 심훈은 "단장(斷腸) 2수"라는 제목으로 아래의 시를 발표했다.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후에 '그날이 오면'으로 개제) 

심훈의 '단장 이수(그날이 오면)' 삭제 원본. 일제가 문화 탄압을 한 흔적 '삭제(削除)'라는 붉은 도장이 뚜렷이 보인다.
 심훈의 '단장 이수(그날이 오면)' 삭제 원본. 일제가 문화 탄압을 한 흔적 '삭제(削除)'라는 붉은 도장이 뚜렷이 보인다.
ⓒ 심재호(심훈 3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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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날이 왔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날 정오 라디오에서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하고자 여기 충량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

철옹성 같았던 일본제국주의가 마침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스스로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항복 방송이요, 조선의 해방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1945. 9. 9.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미 점령군이 도열한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가고 있다.
 1945. 9. 9.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미 점령군이 도열한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가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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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 대부분 한국인은 일순간 멍해졌다.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는 이도,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이도 있었다.

일본의 항복을 미리 알았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遠藤)는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신변보호 및 그들의 안전 귀국을 위해, 여운형을 만나 행정권을 넘기기로 하였다. 여운형은 이를 수락하고 이미 비밀리에 조직했던 건국동맹을 모체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이튿날 정치범을 석방하고, 치안대를 조직하는 등, 발 빠른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 조선총독부는 38선 이남에 미군이 점령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일방으로 건국준비위원회에 행정권 이양을 거둬들인 뒤, 미군정이 실시될 때까지 모든 권한을 회수해 갔다. 그들에게 조선의 독립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는 우리 겨레에게 이름만의 '껍데기 해방'으로 앞날이 무척 험난함을 예고했다. 그 험남한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총독부 관리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총독부 관리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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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에게 고함'

미군은 한반도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1945년 9월 7일, 미 극동사령부 맥아더 사령관은 38선 이남에 대한 그들의 점령정책을 명시한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1호를 발표하였다. 이 포고문은 그 즉시 비행기로 남한 상공에 뿌려졌다.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제1조 북위 38도선 이남에 대한 최고 통치권은 당분간 본관이 사용한다.
제2조 정부, 공공단체 및 전 공공사업기관에 종사하는 직원과 고용인은 종래의 정상 기능과 업무를 수행한다.
제3조 모든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제5조 군정기간에는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미군은 9월 9일 서울에 진주하였다. 그날 오후 4시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조선총독과 조선 주재 일본군의 항복을 받은 다음, 오후 4시 30분 조선총독부 국기게양대의 일장기가 내려가고 대신 성조기가 올라갔다. 그 시간부터 북위 38도선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1945. 9. 9. 미군이 도열한 가운데 조선총독부 광장 국기 게양대의 일장기가 내려오고 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는 끝났다.
 1945. 9. 9. 미군이 도열한 가운데 조선총독부 광장 국기 게양대의 일장기가 내려오고 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는 끝났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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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그날의 사진을 보다

나와 권중희 선생은 2004년 2월 2일, 재미동포 주태상씨의 안내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첫발을 밟았다. 그때 우리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성금으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배후를 규명하고자 그곳에 갔다. 그날 오후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우리는 해방 당시의 사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이들 사진에서 그 무렵의 실상을 읽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날은 스캔할 줄도 몰라, 고가로 이들 사진을 현상해 왔다. 마치 고려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 가서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기듯이….

덧붙이는 글 | 현재 기자는 <미군정기>를 집필 중에 있다. 올 하반기에 출판할 예정이다.



태그:#미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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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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