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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측면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과 자연유산(natural heritage), 그리고 이들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진 복합유산(mixed heritage)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후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현재 10건의 문화와 자연유산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160개국의 981건으로 45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중국이나 40건의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에 비하면 절대 숫자가 적지만 우리나라의 영토규모와 인구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최근 세계유산이 해당 국가의 문화적 역량과 국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고, 관광객 유치와 문화산업 발전 등 실용적 가치가 커감에 따라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등재에 성공하기가 어려워지고, 심사 기준도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매번 세계유산 등재에 관련된 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각 나라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을 보고 다름 아닌 문화전쟁의 현장이라고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와중에 서대문형무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 반기문 사무총장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러 국내 일간지를 통해 소외를 밝혔는데 인류역사상 반인륜적인 범죄 현장에서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전하였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보편적 진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의 기본 취지와 맥을 함께하고 있다.

따라서 서대문형무소 세계유산 등재는 원칙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우경화, 또는 우리 민족의 아픔에 연결된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는 움직임 등에 대응하여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서대문형무소의 세계유산 신청에 관한 첫 번째 토론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기술적인 측면의 검토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등재에 필요한 절차와 추진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둘째로 정치적 측면에 대한 논의로서 서대문형무소라는 문화유산의 정치적 배경을 어떻게 소화하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정치적 의미를 극대화 할 것인가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단 한 차례의 토론에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어도 몇 가지의 중요한 이슈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독립, 민주, 역사, 문화 관련 단체들이 2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교육장에서 서대문형무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모임 발족식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독립, 민주, 역사, 문화 관련 단체들이 2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교육장에서 서대문형무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모임 발족식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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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측면의 논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한 가치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가 있다.

(Ⅰ)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을 대표해야 한다.
(Ⅱ)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지역 내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 계획 또는 조경 디자인의 발전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
(Ⅲ)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Ⅳ)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를 예증하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여야 한다.
(Ⅴ) 문화(복수의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적 정주지(定住地)나 토지 이용, 해양 이용을 예증하거나,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특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환경이 취약해졌을 때의 상호작용의 대표적 사례여야 한다.
(Ⅵ) 사건이나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뛰어난 보편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

물론 자연유산에 대한 가치기준이 별도로 있지만 여기에서 열거하지는 않겠다. 197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여 여섯 번째 가치기준을 적용하였다. 당시에는 세계유산 제도의 초기단계로 국제적인 관심도가 저조하였고 경쟁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한 가지 가치기준만으로도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지만, 최근의 경향으로 볼 때 두 가지 이상의 가치기준을 적용시켜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외압에 시달려야 했던 "역사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축물"로 네 번째 가치기준을 추가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 두 가치기준에 관한 진정성과 통합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진정성(Authenticity)은 당해 문화재의 문화적 가치(제안된 신청기준에서 인정하는 가치)가 형식과 디자인, 소재와 내용, 용도와 기능, 전통․기법․관리 체계, 위치와 환경, 언어와 여타 형태의 무형유산, 정신과 감성 및 기타 내부 및 외부 요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진실되고 신뢰성 있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완전성(integrity)을 충족시켜야 한다. 뛰어난 보편적 가치의 표현에 필요한 요소 일체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는지, 본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특징 및 과정을 완벽하게 구현할 만큼의 충분한 규모인지, 개발 및 방치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어느 정도 문제를 앓고 있는지 등이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약 2년의 기간에 걸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잠정목록은 문화재청장이 직접 정하거나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민간단체가 문화재청에 신청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잠정목록 대상을 정한다.

잠정목록신청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문화재청의 검토와 수정을 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강진 도유지, 남한산성,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 외암마을, 한국의 서원, 한양도성, 서남해안 갯벌, 염전 등 15건을 올려놓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긴밀한 협의와 상호협조가 필요하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세계유산 등재 대상을 확정한 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신청서를 작성하여 문화재청장에게 신청하여 문화재청의 검토를 받아 세계유산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한다. 이 절차가 통상 1차년도 9월 말까지 끝나야 한다. 유네스코 측은 각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신청서를 검토하여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에 대한 의견을 보내고, 해당 국가는 수정을 하여 2차년도 2월 1일까지 최종 신청서를 제출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각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신청서를 문화유산의 경우에는 '국제기념물 및 유적협의회'(ICOMOS)가, 자연유산의 경우에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이 현지실사를 수행하고 유산의 가치를 평가하여 그 다음 해 즉, 3차년도 5월까지 '등재가능(inscribe), 보류(refer), 반려(defer), 등재불가(not inscribe)의 네 가지 권고안을 채택하여 6월 말에서 7월 초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 송부한다. 사실상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이 단계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발제하는 엄승용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전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발제하는 엄승용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전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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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측면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고 필요한 협조를 확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첫째로, 전문가 집단의 토론과 세미나, 관련된 사이트의 벤치마킹, 세계유산 전문가 초청 자문회의 개최 등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ICOMOS 관련 전문가들은 여러 나라의 사이트를 방문하여 세계유산 가치를 검증하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현저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판단하는 데 보다 객관적인 의견을 얻을 수 있다.

둘째로, 무형의 관련 자료를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무형의 자원과 문헌자료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도 실증적인 자료들을 풍부하게 발굴하여 서대문형무소의 하드웨어가 보여주는 가치와 의미를 극대화해야 한다.

셋째, 주변지역의 주민들과 관련 단체의 동의를 얻고, 세계유산 등재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핵심보존지구(core zone)와 완충지구(buffer zone)등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규제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발생될 수 있다. 관련 커뮤니티의 이해상충 때문에 예상치 못한 갈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 여부는 세계유산 등재의 성패에 직결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측면의 고려 사항

2003년 북한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자국 영토에도 동일한 문화권의 유적이 있다고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심의를 '보류'(refer)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문화유산 계통의 전문가들은 '문화'에 '정치'적 힘을 가한 중국을 비난하였고, 세계유산 사업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상 세계유산으로 이미 등재된 문화유산 중에는 정치적 의미 또는 당사국 사이의 갈등을 내포하는 것들이 많다. 문화유산이 과거 인류문화 발전의 흔적을 의미한다면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부정할 수 없다. 경계하는 것은 그러한 정치적 배경이나 의미가 아니라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하는 데 정치적 힘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형무소가 사회적 일탈행위를 한 범죄자들을 격리시키는 곳이지만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폭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독립국가 탄생'을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희생'들이 끊임없이 이뤄졌던 공간이다.

비록 분단은 되었지만 독립국가 탄생의 기반이 된 우리 민족의 항거가 이뤄진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찾을 필요가 있다. 국가 독립 또는 현대국가의 탄생과 연관시키는 논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차별성을 이루는 부분으로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는 1960~197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정치범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당한 곳으로,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로서 서대문형무소가 현대 역사발전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이론(異論)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부분 완성된 국가로서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체제로 역행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문화적 차원에서 성숙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자신감을 갖는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국가발전의 과정에서 민주적 정치과정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공간으로 현대사 발전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의 연관성을 부각시켜 역사발전의 가치를 부각시킴으로써 아우슈비츠와 차별화를 통해 세계유산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대내외적으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 등과 달리 세계유산 등재는 순수하게 유네스코 제도의 기본 취지에 충실하게 따라서 추진한다는 입장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로 제시한 정치적 문제와 연관하여, 국민적 인식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국민정서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위험을 지적한다.

고구려 고분 등재 과정에서도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정서가 오히려 정부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되었었다. 일본은 반드시 서대문형무소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정치 쟁점화하여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 내부에서도 일본의 정치적 반응을 우려하여 서대문형무소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할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보다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언급할 점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제기하고 싶은 점은 우선순위와 추진과정의 완급 조절의 문제이다. 서울시는 현재 서울도성 등 다른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문화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노력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올해 당장 시작해도 2016년에나 등재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서대문형무소의 세계유산 등재에 관한 의지를 표명하고 준비작업을 시작하고, 충분한 사전준비를 거치면서 등재서류 준비를 보다 오래 진행할 수도 있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최소 6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준비를 했다. 서울시의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당장 시작하되, 그 과정을 보다 길게 잡고 모든 절차를 장중하게 거쳤으면 한다. 기술적 측면의 모든 과정과 정치적 측면의 여러 가지 전략을 균형 있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심포지엄에서는 서대문형무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다양한 전략과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서대문형무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다양한 전략과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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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간단한 논의를 바탕으로 서대문형무소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두 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긍정적인 역사발전에 방해하는 체제의 억압에 반항하여, 첫째로 항일독립투쟁의 역사적 사건이 깃들인 문화유산으로 신생독립국가 탄생과 연관이 깊고, 둘째로 근대화 과정에서 독재체제에 항거한 민주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 유적으로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한민족 역사의 중요한 증거이다.

단순히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을 고발하여 일본과의 긴장을 야기하기보다는 세계유산 제도의 취지에 충실한 논리와 가치인식을 바탕으로 준비하면 반드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믿는다.

등재기준에 대한 문제는 전문가들이 더욱 철저하게 분석할 것이지만, 서대문형무소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국민들이 현대사의 쟁점을 새롭게 인식할 것으로 기대하며, 세계유산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도 제고될 것으로 본다. 다른 세계유산과 달리 정치적 성격이 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 역량을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월 23일 서대문형무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모임 발족식 및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엄승용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전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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