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또레 로마노>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인터뷰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또레 로마노>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인터뷰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 로세르바또레 로마노

관련사진보기


염수정 추기경이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아래 사제단)의 시국 미사와 관련해서 "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은 완전히 비이성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의 내용은 염 추기경이 지난해 11월 "사제가 정치, 사회문제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보수적인 성향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의 보도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교구는 문제가 된 인터뷰 내용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사제는 정치·사회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사제는 배후조종이나 하고 신도들이 알아서 참여하도록 하라는 이야긴가? 사제들은 그저 사상적인 유희에나 머물라는 이야긴가? 종교의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 문제는 '정교분리'와 '정교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가 권력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개신교의 한기총이나 보수기독교단체처럼 권력 지향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지, 불의한 현실을 만들어가는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 자들, 사회적인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직접 나서는 일은 종교의 신성한 의무다.

이러한 신성한 의무 앞에서 '사제는 뒤로 빠져 있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인간의 삶이 의도하지 않든 의도하든 정치, 경제, 사회문제와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누구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사제의 신앙적인 행동 역시도 정치, 사회문제에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예수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는 뒤에서 군중을 선동하거나 혹은 제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 삶을 직접 살아감으로써 본을 보였다. 그 정점이 십자가의 고난을 친히 감당한 것이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나라'였으나, 현실에서는 그를 정치범으로 다뤘다.

불의한 권력에 대해 예언자들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를 위해 충성했던 우리야를 전쟁터에 나가 죽게 했을 때, 예언자 나단은 직접 왕 앞으로 나가서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외쳤다. 불의한 아합 왕과 엘리야의 싸움은 목숨을 내건 직접적인 싸움이었다. 이런 모습은 신앙적인 행동이었지만, 결국 정치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구약의 다른 예언자들을 예로 들지 않아도 예언자들이 직접 정치, 사회문제에 개입하여 적극 행동했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염수경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정치, 사회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적극 개입하는 것이 사제의 본연의 임무라고 말해줘야 한다.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인정을 받는 이유

큰 틀에서 '기독교'의 범주 안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타락할수록 천주교로 이동하는 기독교 인구는 증가한다. 일부 보수적이고 몰지각한 개신교에서는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매도하기도 하지만, 개신교에서 실망한 합리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단을 선택하기보다 천주교를 선호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천주교의 예식은 오히려 종교적인 감성들을 채워주어 현대인들의 종교적인 심성들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사제단의 활동이다. 각종 사회문제와 정치문제에 대해 '천주교는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사제단은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전체적으로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보수와 진보 둘 다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개신교처럼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나뉘지 않고, 하나의 교회로 존재한 것이 천주교의 장점이었다. 개신교는 워낙 대형 보수교회나 단체들이 권력 지향적인 데다가, 이런저런 사회적인 물의를 많이 일으키다 보니 그 이미지가 추락할 대로 추락하여 마침내 '개독교'라 불리게 되었다. 천주교의 사제격인 목사는 '먹사'로 추락했다.

천주교가 하나의 교회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다는 이미지를 준 것이 개신교와의 차별성이기도 했으며, 그런 점을 일반인들도 높게 산 것이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오른쪽)과 정진석 추기경이 13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열린 염 대주교 추기경 서임 환영식에서 성호경을 긋고 있다.
▲ 성호경 긋는 염수정-정진석 추기경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오른쪽)과 정진석 추기경이 13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열린 염 대주교 추기경 서임 환영식에서 성호경을 긋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정치적인 성향이야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치 성향에 대한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어떤 대표성을 갖고 있다면,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개인의 생각이 곧 그 집단의 생각이라 여겨질 수 있으며, 막대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의 해명대로라도 개인적으로는 염 추기경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이 진실이라고 했다. "합리적이지 않다"와 "비이성적"은, 말의 강도는 다르지만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염 추기경은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사제들에게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하기 전에, 공권력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당선했으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 혹은 "비이성적이다"라고 해야 했다. 아니면 아예 말을 말든지.

과연 누가 합리적이지 않을까

천주교는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로마 교황청에서부터 교황, 추기경, 사제 등에 이르기까지 서열이 분명한 집단이다. 추기경의 말이나 생각이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일반인이나 신도는 추기경의 행보에 따라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 혹은 신앙을 형성해 간다. 추기경이라고 인간적인 흠이 없을 수는 없지만,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 덕분에 천주교는 이 사회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었다. 그것이 천주교 신자의 유입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불교에서는 법정 스님이 그런 역할을 했다. 개신교에서는 마땅한 인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 등 개신교 내의 분열 때문이다.

나는 개신교 목사지만, 천주교가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 주길 바란다. 그간 사제단의 활동이나 사제단의 속한 신부님들의 헌신적인 활동들을 보면서 많이 감동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추기경의 인터뷰를 들으니 씁쓸하다. 이렇게 가다간 천주교도 개신교 짝 나지 싶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종교는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권력 지향적으로 사회, 정치문제에 접근하는 종교 역시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불의를 바로잡고,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들이 믿는 신이 이루라고 한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죽어서 혼자 '천국(신국,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그러기 위해 '지금 여기서'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설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불의한 일을 바로잡고자 하는데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을 하니,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것 판치는 세상에 침묵하자니, 이 어찌 바른 종교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들풀교회 담임목사입니다.



태그:#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사제단
댓글7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