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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2000년 2월 22일 문 연 <오마이뉴스 >가 창간 14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시민참여 저널리즘'이라는 도전이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기자라는 든든한 토양 덕분입니다. 창간 14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번 글은 고상만 시민기자의 세상을 변화 시킨 '특종기'입니다. [편집자말]
2013년 9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생각치도 못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의무 복무 중 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쩐 일이시냐"는 제 물음에 어머니는 잠시 주저했습니다. 그러더니 "사실은 제가 너무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일을 당해 상의 드리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지금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인가 싶어 "무슨 말씀이든 상관없으니 편하게 하시라"고 하자 이어진 어머니의 말씀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른바 군 헌병대 수사관이 군 사망사고 유족 어머니에게 보낸 '성관계 요구 패륜 문자'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성관계 요구' 패륜 문자, 상상할 수 없는 '막장 드라마'

군에서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에게 사건 재수사를 담당했던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문자의 일부. "뭘 생각해 본다는거야. 결정하면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하지 말구."
▲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성적 요구 문자 군에서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에게 사건 재수사를 담당했던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문자의 일부. "뭘 생각해 본다는거야. 결정하면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하지 말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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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친구, 때론 애인으로 만나고 싶어. 무덤까지 비밀로 지키기로. 뽀도 하고 싶은데 어쩌지

좀 전 문자 왜 답 안 해, 빨리 답해, 때론 애인처럼 뽀하구 싶은데 어쩌지. 뒤끝 없이 화끈하게

뭘 생각해 본다는 거야, 결정하면 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 말구

의무복무 중 사망한 아들의 사인 재조사를 담당한 헌병 수사관이 그 어머니에게 보냈다는 문자 중 일부였습니다. 자식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빠진 이 불쌍한 어머니에게 헌병 수사관이 어떻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일단 그 문자를 저에게 보내 보라고 했습니다. 문자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저조차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어느 막장 드라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패륜의 극치'였고, 그래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송받은 문자를 통해 사실임을 확인한 후 다시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찌 처리해야 할까. 어머니 역시 처음엔 억울한 마음을 풀 수 없어 말하기는 했지만 이 문자를 세상에 전부 공개하는 문제 앞에서는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남편과 아들은 모르고 있는데 만약 이를 공개하여 알게 된다면 그들이 받을 정신적 충격 역시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는 문자 공개를 결심하게 됩니다. 어머니로서, 또 여자로서 치욕스러운 사실이지만 이를 밝히는 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패륜 문자를 보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지금의 잘못된 군 헌병대 수사 제도를 바로 잡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어머니는 동의했습니다.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에서 사망한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재수사를 맡은 헌병 수사관이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며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고 있다.
 김광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에서 사망한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재수사를 맡은 헌병 수사관이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며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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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방부 국정감사가 시작된 2013년 10월 14일,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은 김관진 국방부장관 앞에서 이 패륜 문자를 공개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사실을 국방부장관에게 알려 잘못된 실태를 바로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피해 어머니가 바라는 것처럼 잘못된 군 수사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금처럼 군대에서 발생한 군 사망사고를 군 헌병대가 독점적으로 수사하고 그 사인 결과도 혼자 내리는 제도로는 이같은 유사 사례를 막을 수 없으니 즉각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따라서 지난 2009년 활동기간 종료로 해산된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와 같은 민관 합동 재조사 기구를 구성하여 국민과 유족이 신뢰할 수 있는 조사 체계를 구축해 달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촉구한 것입니다.

국방부 대변인, 패륜 문자 거짓. 이럴수가...

그런데 놀라웠습니다. 국감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다음날, 피해 어머니의 패륜 문자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국방부가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모 언론사 기자가 저에게 전화해 "어제 김광진 의원님이 지적하신 문자건에 대해 국방부가 입장문 발표한 것 아세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참담한 심정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군은 그 아들을 죽였고, 헌병대 수사관은 그 어머니를 유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어머니의 '용기있는 고발'을 국방부가 대변인 입장문을 통해 '거짓말'이라고 재차 모욕한 것입니다. 두렵고 치욕적인 사실이지만 장관이 이를 통해 현 수사제도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할까 기대했던 그 어머니는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이 나라 국방부가 해도 해도 참 너무한다"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혹여 어떤 분들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확인해 보니 사실이 아니라고 여겨져 국방부가 그렇게 발표한 것이겠지 설마 고의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 했겠습니까."

'헌병 수사관 성관계 요구 패륜 문자'건이 국감을 통해 사회적 파문으로 불거진 후 저는 여러 국방부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그중 누구도 저에게 "진짜냐"며 이 건에 대해 되물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미안하고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함께 공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광진 의원이 국감 당시 제시한 문자 내용만 봐도 의심하거나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군 헌병대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진짜냐"며 반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생각은 많이 달랐던 듯합니다. 우리가 공개한 문자 외에 추가 증거가 또 있겠나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니 패륜 문자 건에 대한 비판 기사가 각 언론사에서 쏟아지자 이에 당황한 국방부 측이 일단 사실을 부인하기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 해도 이미 공개한 문자 외에 김광진 의원실이 추가로 제시할 증거가 또 있겠나 싶었겠지요.

실제로 어머니의 주장을 부인하는 국방부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확인한 후 이를 항의하고자 국방부 대변인실로 제가 전화를 했을 때입니다. 저는 대변인이 낸 입장문을 철회하고 다시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핵심 관계자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해당 조사관을 상대로 확인해 보니 그런 문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보냈다면 보낸 증거를 제시하세요. 그럼 사과할게요."
"이미 제시했잖습니까. 문자 내용 못 보셨습니까? 왜 그러세요."
"아니 거기에 보낸 사람 이름이 있습니까. 알 수가 없잖아요. 그거 말고 다른 증거가 있으면 공개하는 것 아닙니까. 공개하면 하겠다는데 계속 긴 말씀하지 마시고 있으면 공개하세요. 그럼 되잖아요."

말 그대로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이런 치졸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공개한 그 문자를 거짓으로 만들어서 공개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잖아요. 이미 우리가 제시한 문자만 봐도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를 보낸 적이 없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들어 우리 말을 믿을 수 없다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럼 좋습니다. 그럼 우리를 형사고소하세요. 국방부 말대로 본다면 수사관이 보내지도 않은 문자를 우리 의원실이 조작해서 만들어 공개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래서 국방부 말처럼 그런 조작된 문자를 통해 군 헌병대 수사관 개인과 부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니 차라리 형사 고소를 하세요. 안 그래요?"

사실 부인하던 헌병 수사관, 피해 어머니에게 "살려달라"

하지만 국방부의 기대(?)와 달리 우리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고 이를 공개했습니다. 성관계 요구 문자를 전송한 헌병 수사관이 피해 어머니에게 문자 전송을 인정하며 "제발 살려달라"며 대화하는 전화 음성 파일을 확보했고 이를 공개한 것입니다. 그 주요 내용입니다.

어머니 : 여보세요.
헌병대 수사관 (이하 '헌병대'): 아. &&& 어머니시죠.
어머니 : 네. 누구세요?
헌병대 : 네. 저 그때 사건 취급했던 사람이에요.
어머니 : 누구...아.. $계장님이요.
헌병대 : 네. 네.
(중간 생략)
어머니 : 지금 저한테 무엇을 확인하려고 전화하신 건데요?
헌병대 : 지금 보니까 인터넷 같은데 뭐 뜨는 것 같은데..
어머니 : 인터넷에 뜨는 것 사실이잖아요. 제가 뭐 없는 거 이야기했습니까?
헌병대 : 아니...뭐.... 죄송합니다.
어머니 : 아니, 지금 저한테 죄송하다고 사과할려고 전화하신 것은 아닐테고...
헌병대 : 아니, 아니 뭐...그 때문에 전화했어요. 제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어머니 : 뭐가 죽을 지경이신데요?
헌병대 : 제가 지금 그렇잖아요. 제가 아주 뭐...참...하여간 좀 이렇게...살려 주세요.
어머니 : 뭐를... 살려 달라는게 뭡니까?
헌병대 :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 잘못 하셨다는 것이 저에게 그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잘못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뭐를 잘못했다는 건가요?
헌병대 : 예. 예. 예.
어머니 :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라고요?
헌병대 : 아이구. 하여간 진짜 제가 잘못 했습니다.
어머니 : 아니 잘못했다고만 하시지 말고 제가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거냐구요?
헌병대 : 제가 용서를 구할려고 그랬어요.
어머니 : 예?
헌병대 : 용서를 구할려고.
어머니 : 용서를 구할려고 그랬다구요?
헌병대 : 네.
어머니 : 전 용서 못합니다.
(이하 생략)

이같은 음성 파일을 공개하자 그토록 당당하게 추가 증거를 제시하라던 국방부 측은 사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 유족 개인에게 국방부 대변인 명의로 잘못을 사과한 일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그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민원인에게 성적유혹 문자 발송한 군 조사관' 관련 국방부 입장>

◦ 국방부는 지난 2002년 발생한 군 사망사고 재조사(2003년) 과정에서 군 조사관이 유가족에게 성적유혹 문자를 발송하여 군의 명예와 신뢰를 실추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로 인해 심적 고통을 받아 온 유가족께도 깊은 송구의 말씀을 드립니다. <중략>
◦ 국방부는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되며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국방부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직자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군 수사관 행동지침을 규정화하는 등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을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 다시 한 번, 관련 유가족과 어머니께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3. 12. 26.  국방부 대변인

정말 다행일까요. 하지만 그 어머니는 다시 또 울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영혼없는 국방부 사과'거부, 진짜 사과하겠다면...

국방부가 또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처음 국방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문자는 처음부터 사실이었습니다. 헌병 수사관이 패륜 문자를 보냈던 그때도 사실이었고 국방부가 사실로 인정하든 말든 여전히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 문자에 대해 국방부로부터 사실임을 인정받고자 폭로를 결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어머니는 처음부터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이 문제를 제기한 진짜 이유, 그것은 잘못된 군 헌병대의 '독점적이고 독선적인 수사 제도'를 바꿔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국방부장관에게 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호소하고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치욕을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 측은 반성이 아닌 부인으로 그 어머니를  모욕하더니 결국 결정적 증거 앞에 그저 '영혼 없는 사과' 몇 마디로 끝내려 합니다. 우리가 요구한 근본 개선 방안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다시 눈물 흘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주장합니다. 국방부는 당장 군 사망사고시 공정하게 조사할 수 있는 '민관 합동의 외부 조사기구 구성'에 협조해야 합니다. 지난 2013년 9월 25일 김광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에 협조하면 됩니다. 그래야 이 같은 '패륜적 완장 권력'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처럼 군 헌병대의 독점적인 수사 권한을 통해 군인 사망사고를 조사한다면 이같은 패륜적 범죄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 '성관계 요구 패륜 문자 사건'의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 속에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은 우리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사랑합니다.


태그:#군 사망사고, #군 의문사,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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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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