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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엽 전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위원장은 "법무부가 내 발언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법무부의 주장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었다.
 최규엽 전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위원장은 "법무부가 내 발언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법무부의 주장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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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최규엽씨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그는 "법무부가 내 말을 완전히 왜곡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법무부의 왜곡'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첫번째 정당해산심판 공판에서 법무부측 대리인으로 나왔던 정점식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TF 팀장)의 발언을 가리킨다. 당시 그는 통합진보당의 위헌성을 논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적의 위헌성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입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미국의 식민지배를 타파해야 한다는 '반미자주', 특권계급과 독점자본가를 타도해야 한다는 '민중주권주의'를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계열이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그 내용이 동일합니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은 2011년 정책 당대회에서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의 '공산주의라는 말만 안 했지 다 들어가 있다'라는 발언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 추종세력이 반미자주를 목표로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법무부는 증거로 2011년 6월 19일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던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전신) 제2차 정책 당대회 회의록을 제출했다. 총 21페이지짜리 회의록의 10페이지에는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이었던 최규엽씨가 한 발언이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과거 당 강령의) 전문은 민주, 평등, 해방의 세상이라고 했는데 이걸 (이번에) 자주, 평등, 인간해방이라고 했다(고쳤다).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하는 건 상식적인 거라. 그리고 인간해방을 쓴 건 생태환경, 여성주의 문제도 있지만 인간해방이라는 게 뭐냐. 모든 억압과 착취를 폐지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든다는 것 아닌가. 공산주의라는 말만 안 했지 다 들어가 있다."

3년 만에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되살아난 "공산주의라는 말만 안 했지 다 들어가 있다" 발언의 전말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4일 최씨를 만났다.

정작 통합진보당에는 없고 법무부가 가지고 있던 민주노동당 회의록

지난 2013년 11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정점식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서울고검 공판부장)이 이날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 청구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28일 헌법재판소 첫 공판에서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2011년 민주노동당 당대회 당시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의 '공산주의 발언'을 제시했다.
 지난 2013년 11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정점식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서울고검 공판부장)이 이날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 청구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28일 헌법재판소 첫 공판에서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2011년 민주노동당 당대회 당시 최규엽 강령개정위원장의 '공산주의 발언'을 제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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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가 제출한 회의록이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작성한 것이 맞는가.
"맞는 것 같다. 그걸 부인할 생각은 없다."

- 맞는 것 같다? 현재 통합진보당에는 그 회의록이 없는가.
"나도 이번 일로 당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없다고 한다."

- 그럼 어떻게 그 회의록이 법무부 손에 들어가 증거로 제출하는 상황이 벌어졌는가.
"아마 관리를 잘 안 해 분실한 것 같다. 또는 여러번 있었던 압수수색을 통해 그쪽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문서는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 다만 회의록이 무슨 국회 속기록처럼 정확하고 정제된 것이 아니다. 워낙 난삽하고, 오자도 많고, 많이 생략되어 있다. 참고용일 뿐 정식 추인된 문서는 아니다. 현재 법무부는 그것을 가지고 주장하는 거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말 그대로 초본 수준이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여러 곳이었다. 해설이 필요했다.

- 회의록에 법무부가 지목했던 그 문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을 어떻게 왜곡했다는 것인가.
"첫째는 법무부도 이 회의록이 오탈자도 많고 앞뒤 안 맞는 문장이 많은 걸 알텐데, 그러면 발언한 사람한테 전화라도 해서 확인을 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을 추구하는 태도 아니겠는가. 실망스럽다. 두번째로, 회의록을 아무리 봐도 '진보적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라고, 민주노동당 강령을 공산주의라고 한 부분이 없다. 당대회 당시 최고 쟁점은 (이전 민주노동당 강령에 있던)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이라는 구절을 폐기하느냐 마느냐였다. 개정안 원안은 빼는 거였다. 개정위원 다수파가 빼자는 의견이었다. 다만 한 명이 반대했다. 개정위에서 다수결로 통과되니까 그 사람이 개정위원을 탈퇴했다. 그리고 그쪽 정파에서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 문구를 빼면 집단 탈당하겠다고 했다. 그 분들은 나중에 실제로 탈당했다.

2011년 6월 19일 일산 킨덱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제2차 정책당대회 당시 대회장 안에서 강령 개정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당원들 모습. 피켓 내용을 보면 "사회주의 삭제하는 강령 개정 반대",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은 계승 발전돼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최규엽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은 자신이 개정 강령에 대해 설명하는 내내 이렇게 항의 시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당시 회의록 내용과 부합할 뿐 아니라 법무부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는 최규엽 전 강령개정위원장의 증언을 뒷받침 한다. (최규엽씨 제공)
 2011년 6월 19일 일산 킨덱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제2차 정책당대회 당시 대회장 안에서 강령 개정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당원들 모습. 피켓 내용을 보면 "사회주의 삭제하는 강령 개정 반대",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은 계승 발전돼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최규엽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은 자신이 개정 강령에 대해 설명하는 내내 이렇게 항의 시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당시 회의록 내용과 부합할 뿐 아니라 법무부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는 최규엽 전 강령개정위원장의 증언을 뒷받침 한다. (최규엽씨 제공)
당시 그들을 상대로 설득을 했다.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폐기하되, 전문에 보면 '자주, 평등, 인간해방'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느냐, 물론 추상적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 '인간해방'이라는 것이 모든 정치적 이념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이게 당신들이 고집하는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도 다 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이해해달라. 이런 이야기를 한 거다.

회의록 속기하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정확하게 받아썼겠는가. 또 실제 내가 뭐 세게 이야기 하려고 '공산주의라는 말만 안 했지 다 들어가 있다'는 말을 했을 수는 있어도 취지는 그게 아니었다."

- 즉, 법무부가 문제 삼은 발언은 헌재에서 설명한 것처럼 '진보적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빼는 부분을 설득하는 과정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법무부도 회의록을 다 봤으면 잘 알텐데, 앞 뒤를 빼먹고 왜곡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 문구 최초로 넣었던 사람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최규엽씨의 증언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법무부가 밝혔듯이 그가 2011년 6월 민주노동당 강령 개정 당시 개정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씨에 의해 최초로 강령에 들어갔다.

- '진보적 민주주의' 부분은 법무부가 위헌성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이전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없던 '진보적 민주주의'가 2011년 6월 개정 때 처음 들어간 것은 맞는가.
"그렇다."

- 이후 통합진보당 강령을 만들 때 계승된 것도 맞는가.
"1년 뒤 통합진보당 강령을 만들 당시에는 내가 전혀 개입하지 않아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계승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러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강령에 처음 들어갈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으로서 그것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그래도 민주노동당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된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해방 후에 많이 사용된 용어다. 여운형씨도, 건국준비위원회도 썼다.

예전 민주노동당 강령 전문에는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었다. '사회주의 원칙' 하는 순간 그 강령은 사회주의 강령이 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아무튼 당시 그것을 빼려고 하는데,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예전부터 대체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한마디로 뭐냐, 이런 질문이 많았다. 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 자유주의냐, 뭐 이런 질문이었다. 진보진영의 정치노선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질문에 답을 할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보수적 민주주의', '극우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또 '자유 민주주의'를 포괄하면서도 '자유'보다는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많이 썼고, 현재 미국 민주당에도 진보적 민주주의 그룹이 있다. 그만큼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검찰이 제출한 회의록을 봐도 '진보적 민주주의'는 특정 이념이 아니라고 분명히 나와있다. 내가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민족주의자도 같이 할 수 있는 거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내가 쓴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책에도 이렇게 적었다. '민중해방을 위해서 싸우는 민족주의자, 진정한 복지를 위해 싸우는 사민주의자, 궁극의 인간해방을 위해 싸우는 사회주의자, 직접 민주주의를 제안한 민주주의자들 모두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의 주도적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게 우리가 생각한 '진보적 민주주의'다."

- 결론적으로 법무부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번지수가 완전히 다른 거다. 그것도 아주 자극적으로. 전형적인 괴벨스 전략이다."

- 당시 강령은 왜 개정했는가.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면서 당 강령이 만들어졌는데, 그 후 10년이 지났다. 그때까지 한 번도 개정을 안 했다. 세상이 많이 변하지 않았는가. 촛불, 신자유주의화 심화, 생태, 환경, 여성주의... 이런 것을 같이 고민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대중정당으로서 눈높이를 맞춰야겠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당을 해보니까 활동가 정당이어서는 안되겠더라. 그전 강령은 너무 길고 어려워서 당원들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장롱 강령'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당시 유시민, 노회찬 등과 통합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통합에 대비하는, 그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강령으로 조정한 것이다."

"이석기 의원의 최후진술, 대단히 유감"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법정에 입장하고 있다. 위헌정당심판청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재판에서 이 의원은 최후진술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면서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 언론에 공개된 '내란음모' 결심공판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법정에 입장하고 있다. 위헌정당심판청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재판에서 이 의원은 최후진술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면서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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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엽씨의 증언이 의미가 있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소위 '통합진보당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NL(민족해방)계로 분류되지만 2012년 통합진보당을 탈당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 왜 탈당했는가.
"비례대표 부정선거 때도 참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것은 중앙위 폭력사태였다. 당시 나는 중앙위원이 아니라서 참석은 못했지만, 인터넷으로 보면서 탈당을 결심했다. 너무 힘들었다. 당내 갈등에 대해 흔히 무슨 노선 차이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배지 쟁탈전이었다고 본다.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는 그 정점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조짐을 보여왔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터져버렸다."

- 어쨌든 당시 상황에 제일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현 통합진보당 중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지금 내란음모사건과 정당해산심판을 겪고 있고, 당신이 오늘 한 이야기는 그들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그 사람들을 편 들 생각은 없다. 내가 나서는 이유는 첫째로 법무부가 내 말을 완전히 왜곡해서 명예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방어하는 차원이다. 두 번째로 나는 통합진보당을 현재 주도하는 세력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산은 옳지 않다. 그 강령이 위헌적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민주노동당 창당 때보다 완화해 대중성을 강화한 게 2011년 강령이고, 그보다 더 완화한 것이 2012년 통합진보당 강령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유로 위헌 정당으로 몰아 해산하려 한다는 것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창피한 거다."

- 선고를 앞둔 소위 내란음모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다른 건 모르겠고, 이석기 의원의 최후진술 전문을 봤는데, 그래도 국민들 앞에, 또 진보진영 앞에, 그동안 진보정당을 해오면서 본인들의 오류와 한계를 성찰하는 자세가 전혀 없었던 것이 대단히 유감이다. 내란죄를 인정하라는 게 아니다. 본인은 억울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자세가 매우 아쉽다."


태그:#최규엽, #정당해산심판, #통합진보당,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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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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