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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의원 '친노'야?"

"어. 노무현 때 청와대에 있었어."

 

가끔 들을 수 있는 정치부 기자들의 대화다. 이런 분류는 더 손쉽게 기사를 쓸 수 있게 해준다.

 

127명의 민주당 의원을 각 계파별로 분류한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친노'라는 한마디에 일부 언론은 민주당 내 '주류' '강경' '좌파' '진보' 세력이라는 의미를 모두 담는다. 집단적 목적을 가지고 당권을 잡으려는 부정적인 의미의 '계파주의' 성격도 부여한다.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을 분류할 때 적용되는 첫 번째 기준이 됐다. 그 이후는 다소 복잡해진다. 친노무현(친노), 비노무현(비노), 또는 중도로 나눈 후 비노는 다시 김근태계, 손학규계, 김한길계, 박지원계 등으로 분류된다. 친노 역시 친노직계부터, 문재인계, 넓게는 정세균계까지 나뉜다. 분류 방법과 구성 인원이 항상 고정돼 있지는 않지만, 이런 복잡한 분류는 당내에서 어떤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적용된다. 누가 말을 하면 '어디 계'인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때마다 민주당은 '계파 충돌'이라는 말을 듣는다. 정당의 성격상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음에도 '다양성'보다는 '분열'로 읽힌다. 이것은 민주당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고착됐다. 소위 말하는 '친노 프레임'이다.

 

이러한 '친노 프레임'은 새누리당의 공격 무기와 언론의 비판 재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도 서로를 가르는 큰 강으로 존재한다. 김한길 대표가 신년연설에서 '분파주의 극복'을 당의 과제로 내세운 것은 결국 당 안에 쉽게 건널 수 없는 큰 물길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당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친노 프레임'에 휘말려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가 억눌리는 체제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마이뉴스>는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이 적극 활용하는 '친노 프레임'을 분석한 것(관련기사 : "종북 버금가는 '친노프레임'... 블랙홀이다")에 이어 민주당 내부에서 바라 본 '친노'의 의미와 계파주의의 실체를 진단해봤다.

 

"친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친노인지 모른다"

 

우선 기존 언론의 분류 방식으로 친노와 비노, 그리고 중간지대에 있는 의원들에게 친노라는 계파의 실체와 '친노 프레임'의 원인을 물었다. 대부분은 '친노'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 계파성은 부정했다. 민주당이 배출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지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친노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실제 계파로 작용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당에서 계파정치는, 특정 계파가 당권을 쥐고 공천권을 비롯한 당내 각종 권한과 정책 등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현 의원은 "당연히 친노는 있다, 나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뜻을 계승하고 구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라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고 우리 모두 그 뜻을 함께 하는 정치인들이지만 그게 무슨 계파로 묶여 있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계파라고 한다면 수장이 있어야 하고, 수장을 중심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거나 계파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친노 의원들은 그러지 않았다"며 "누가 친노 의원이라는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다 각자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의원은 "계파가 있다면 누군가가 출마여부를 결정해줘야 하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노 인사라는 사람들은 다 자기 뜻대로 결정했다, 노 대통령 자체가 계파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친노는 모두 그 뜻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전해철 의원은 "나한테 친노냐고 물어보면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가 친노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말처럼 친노는 있지만 그것이 계파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그런 질문을 수천 번은 받았다"며  "그동안 당에 여러 가지 사안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강경파도 온건파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NLL논란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놓고 논쟁이 있었을 때, 강경했던 사람은 다 친노라고 하는데 과연 그랬나?"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민주당은 대통령기록물인 2007년 남북정상회의록을 공개를 놓고 의견 대립이 있었다. 대다수 언론은 친노 진영이 NLL 정국의 전환을 위해 회의록 공개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비노 진영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묻히고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문재인 의원이 나서서 대화록 공개 의견을 내놓은 것이 이 사안을 친노-비노의 충돌로 보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당시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 대표도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당내 비주류로 분류돼 왔다는 점에서 대화록 공개 사안은 전혀 '친노-비노'의 대립이 아니었다는 것이 전 의원의 지적이다.

 

"분파주의 극복은 당에서 한 목소리 나오게 하겠다는 것"

 

'친노'와 관련한 이런 생각은 친노 밖에서도 대부분 일치했다.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진성준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은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다, 의원이라면 누구나 다 두 사람 안에 있다"며 "노무현의 이념이나 정신을 특정 세력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출신 분들이 노무현 이념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대변을 맡아 일부 언론에서 친노로 분류하기도 했으나 그 전까지는 친노-비노 사이 중간지대로 알려졌다. 진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른바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그룹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그런 취지에서 지금의 지도부가 구성됐다"며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당에서 목표는 동일하다고 해도, 그 수단과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당 내의 의견 충돌은 그 당의 건강함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략홍보위원장인 최재천 의원은 "국회의원은 그 자체로 헌법기관이고 국민대표이기 때문에 지극히 귀한 존재다, 분파주의라는 프레임으로 국회의원의 대표성을 왜곡시키는 정치 선동에 대단히 비판적"이라며 "선호나 정책적 지향이나 연고주의 때문에 최소한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민주당원"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기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던 최 의원은 한미FTA 등 정부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다. 이후 언론들은 최 의원을 비노 또는 반노(반노무현) 인사로까지 분류하고 있다.

 

최 의원은 "당 내에서 서로 경쟁하고 특정사안을 두고 갈등하는 것은 정당 원리상 당연한 것이고, 그런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해서 하나의 정책으로 충분히 수렴할 수 있다"며 "현재 당의 리더십은 그런 쪽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당의 지도부 역시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노웅래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주도적으로 나선 분들을 친노라고 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친노"라며 "자기 특권을 내려놓고, 통합하려는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게 친노라면 나도 친노"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결국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된다, 김한길 대표가 분파주의를 극복하겠다고 한 것 역시 특정 계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친노는 있지만 계파는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당 최고위원인 조경태 의원이다. 조 의원은 "'친노'를 단지 프레임이라고만 볼 수 없다,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고, 바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주류였던 사람들"이라며 "나도 친노고 지난 선거에서 주류로서 권한을 누렸던 사람이다, 친노를 중심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렀고 패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친노의 계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친노는 자신들이 권한을 누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니 잘못된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선거 패배를 제대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또다시 변신해서 세를 만들려고 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의 악의적인, 의도된 프레임"

 

조경태 의원을 제외하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의원들은 거의 모두 '친노 프레임'을 보수언론이 만든 '악의적인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전해철 의원은 "이미 프레임을 짜놓고 그것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물어보는 사람들도 말하는 사람도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을 모두 안다, 알면서도 그 사람의 주장을 희석하기 위해, 약화시키기 위해 악의적인 프레임으로 실체 없는 계파 싸움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묻는 질문에 전 의원은 "당내 실제로 그런 계파 싸움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바꿔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친노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실체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진성준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친노 인사들이 물러나야 했던 상황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와 경선부터 같이 치른 인사들이 본선에서 요직을 맡지 못하고 악의적 프레임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함께 호흡을 맞추고 준비해 온 사람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거에 어려움이 생겼다"며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악의적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장병완 정책위원회 의장은 "언론이 의도적으로 만든 프레임"이라며 "참여정부에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총선 때 주도적으로 나섰던 한명숙 총리가 공천했던 그룹을 그렇게 부르는데, 그때 공천 받은 사람이라고 다 똑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경우 이재오 의원이 정당공천폐지나 개헌 논의를 주장해도 계파 다툼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언론에 잘 전달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 대부분의 의원들이 '친노 프레임'의 원인을 언론에서 찾았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이 프레임을 적극 활용해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것만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마이뉴스>의 취재과정에서 상당수 의원들은 자신들을 비롯해 다른 의원들까지 '친노' 또는 '비노'로 구분하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상대를 손쉽게 규정했다. '친노 프레임'을 비판하지만 스스로가 그 프레임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익숙해질수록 만들어진 프레임을 깨는 것은 점점 어려울 것이다.


태그:#민주당, #친노, #노무현, #비노, #김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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