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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능한가요???"

아내가 내게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다. 오후 늦은 시간. 통화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될 걸 굳이 왜 묻지? 근무 중이던 난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내는 다급하게 말했다.

"오빠, 막내이모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리 집 경매 날짜가 1월 00일로 나왔대…."
"그래?"

난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속으로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초조한 말투였다.

"경매액이 약 4억 얼마고 경매 1차부터 낙찰되지 않고 보통 2차, 3차까지도 가니까 몇 개월 정도면 우리 집도 결론이…."

나는 불안해 하는 아내를 애써 위로했다.

"너무 놀라지 말고…. 이미 예정됐던 절찬데 뭐…. 새로운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지."

우리 집이 경매에?... 어쩐지 전세보증금이 싸더라니

집주인으로부터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작년 4월, 아내와 나는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주인을 찾아가 언성을 높여 따졌다. 내켜하지 않는 집주인을 설득해 우리에게 보증금을 갚겠다는 각서도 받았다.
 집주인으로부터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작년 4월, 아내와 나는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주인을 찾아가 언성을 높여 따졌다. 내켜하지 않는 집주인을 설득해 우리에게 보증금을 갚겠다는 각서도 받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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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다가구주택 3층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2011년 4월경 이사했으니 올해로 3년째다. 집 가까이에 숙명여대가 있고 여학생들을 위한 하숙집들이 모여 있다. 아직 아이가 없다 보니, 우리는 전세보증금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분리형 원룸 구조의 우리 집이 첫 눈에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있는 주택들보다 높은 3층이라 전망도 좋은 편이다. 아내는 우리 집의 제일 큰 장점이 방안에 앉아 서울타워를 볼 수 있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가 이 집을 계약하기 전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다. 건축물대장에 1층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로 기재되어 있는데 실제는 주택으로 임대하고 있었다. 때문에 구청은 건축법령 위반으로 집주인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했고, 집주인이 이를 납부하지 않아 압류 처분까지 된 상태였다.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와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어?' 그게 중대한 실수였다. '어쩐지 주택의 위치나 상태에 비해 전세보증금이 싸더라니….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이런 거구나…' 아무리 후회해도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집주인으로부터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통보 받은 작년 4월, 아내와 나는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주인을 찾아가 언성을 높여 따졌다. 내켜하지 않는 집주인을 설득해 우리에게 보증금을 갚겠다는 각서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우리의 전세보증금을 보장해 주진 못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돈이 없어 빚을 못 갚아 자기 집이 경매로 넘어간 소유자한테 세입자가 당장 받을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오히려 자신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진 격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대로라면 우리는 전세보증금 7500만 원 중 2500만 원밖에 보장을 받지 못한다. 집주인이 우리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나머지 50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릴 판국이다. 소위 '깡통 전세'인 셈이다. 나처럼 집주인이 은행 대출금 이자를 계속 연체하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전세로 들어간 사람이 전세보증금을 몽땅 날릴 처지에 놓인 경우를 말한다. 뒤늦은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한동안 집 얘기만 하면 자주 훌쩍였다.

"오빠가 민원인들한테 욕먹어가며 7년 동안 모은 돈인데… 어떡해 …."

나와 비슷한 민원인의 전화... 말을 자를 수 없었다

그 즈음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도 깡통전세 어쩌고 하는 말만 들리면 귀가 번쩍 뜨였다. 업무 중에 걸려오는 전화상담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즈음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도 깡통전세 어쩌고 하는 말만 들리면 귀가 번쩍 뜨였다. 업무 중에 걸려오는 전화상담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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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몇 푼이라도 더 받을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어느 때는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명색이 주택건축분야 민원을 처리한다는 공무원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하나….' 어느 변호사의 사실인지 모를 얘기가 내게 위로라면 위로였다.

"못 믿겠지만, 판사들도 당해요. 운이 나빠 그런 거지…. 집주인한테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 즈음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도 깡통전세 어쩌고 하는 말만 들리면 귀가 번쩍 뜨였다. 업무 중에 걸려오는 전화상담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서울에서 점포를 운영한다는 40대 여성 민원인이 상가보증금을 날리게 됐다는 상담전화가 내게 연결됐다. 통화가 시작되고 십여 분이 지나도 그 민원인의 말을 자를 수가 없었다. 한숨 섞인 말들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내용을 듣고 보니 상가보증금이라는 것만 다를 뿐 깡통전세에 대한 상담이었다. 참 난감했다.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이 아닌 상가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분쟁이라 우리 기관이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깡통전세로 인한 세입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는 일간지 기획기사를 읽은 때였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주무부처인 법무부에 제도개선(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피해자가 적지 않으니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보호받는 보증금 액수도 향상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 경험과 민원상담 내용도 포함시켰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법무부는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보증금 일부를 가장 먼저 변제 받을 수 있는 소액임차인의 보호 범위가 2014년 1월 1일부터 확대된다고 발표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서울지역 기준으로 지금까지는 보증금 7500만 원 이하 세입자만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2500만 원까지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9500만 원 이하 세입자까지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선 변제 보증금도 현재보다 700만 원 늘어난 3200만 원이다.

내가 제안했던 제도개선(안)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들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번 개선(안)에 대한 내 문의전화에 법무부 담당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님의 주택은 이 개정법률(안)이 시행되기 전 이미 권리설정 등의 절차가 진행되어 적용대상이 아닙니다."

아내와 나는 세입자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깡통전세 일을 겪으며 몇 가지 귀한 깨달음도 배웠다.

전세계약 시 대출과 전세금액이 주택가격의 60~70%를 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고 이런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도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은 불리한 조건(불법증축, 불법용도변경 등)을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도 있는 점, 주변 시세보다 수천만 원 이상 보증금이 낮은 주택이나 상가라면 싼게 비지떡일 수 있다는 점, '설마…'라고 방심하지 말고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부동산거래의 기본 중의 기본까지.

다 좋은데, 우리 부부가 치러야할 수업료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태그:#깡통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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