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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봉사 사천왕상
 만봉사 사천왕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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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그런지 절에 사람 하나 없다. 그러고 보니 영월 만봉사와 불화박물관을 나 혼자 관람하는 것이다. 박물관을 독점하다니, 요즘 말로 대박이다. 절문을 들어서며 보니 좌우로 사천왕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사천왕상이 전혀 무섭지 않다. "어서 와요,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넓은 안마당이 나오고 정면에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전의 좌우에서 앞으로 회랑 형식의 건물이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만봉불화박물관 전시실이다.

만봉불화박물관에 전시된 불화들

불화박물관은 모두 6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인이 열쇠로 문을 열어주고 들어가 보란다. 나는 불화 하나하나를 독점하며 감상한다. 불화는 불경의 내용이나 부처의 삶과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리고 전각의 내외부를 장식한 단청, 사자, 코끼리, 연꽃처럼 불교와 관련된 그림도 불화에 속한다. 또 티베트에서 많이 그려진 만다라도 불화에 속한다.

산신도
 산신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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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전시된 불화는 주제, 소재, 존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석가모니불도, 영산회상도, 팔상도, 극락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나한도, 신중도, 십이지신도, 시왕도, 칠성도, 독성도, 산신도, 신선도, 감로도. 이들이 어떤 그림인지 대부분 알테지만 몇 가지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무슨 그림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고, 보살, 아라한, 비구 등 수 많은 권속이 이를 듣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석가모니불도가 부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영산회상도는 권속들과 함께 하는 부처가 그려져 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압축해 그린 그림이다. 그 중 우리는 탄생, 깨달음, 설법, 열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영산회상도
 영산회상도
ⓒ 만봉불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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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좀 더 구체화하면 탄생 전 도솔천에서 내려옴, 탄생, 출가 전 사대문 밖에서 생노병사를 목격함, 출가, 깨닫는 과정에서의 설산수행, 마군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 5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함, 열반이 된다. 나한도는 석가모니의 제자인 나한을 그린 그림이다. 오백나한도와 16나한도가 있다. 신중도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그림으로 대표적인 것이 팔부신중도다. 시왕도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과 함께 지장보살을 그려 넣었다. 감로도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의식을 그린 불화다. 

불화는 어떻게 그려지는가?

나는 이들 불화를 보면서 그것이 그려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불화를 그릴 바탕재료(바탕감)를 준비하는 것이다. 바탕감으로는 나무, 흙벽, 베, 종이, 금속, 돌 등이 사용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것이 베다. 베를 고정시키기 위한 틀에 바탕감을 얹은 다음 철사 등으로 틀에 베를 고정시킨다. 그 다음 베에 아교를 입히는데, 바름과 마름을 열 번 정도 반복한다.

초치기하는 만봉스님
 초치기하는 만봉스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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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하는 일이 바탕에 탱화초 그리기다. 아교가 스며들어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한 바탕감에 탱화의 초본을 그려 넣는다. 이 초본은 대개 전승된 것을 모사한다. 그리고 나서 탱화 뒷면을 종이로 배접한다. 배접은 검은색 화선지에 풀을 발라 하게 되며, 이것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한다. 세 번째 하는 일이 탱화 바탕 채색하기다. 바탕 채색은 주홍색을 가장 먼저 칠한다. 가사, 보관, 연꽃 등이 주홍색이다. 그리고 나서 청색, 녹색, 보라, 황색, 흑색의 순서로 칠한다.

네 번째 하는 일이 탱화에 금박 입히기다. 금박을 입히려면, 금박을 입힐 부분에 다시 아교를 칠해야 한다. 이것을 고분이라고 한다. 고분 다음에는 그 위에 황색으로 칠을 하고 그 위에 옻칠을 한다. 옻칠이 마르면서 약간 끈기가 있을 때 그곳에 금박지를 붓으로 눌러 붙인다. 한두 시간 지나면 옻칠이 완전히 마르고 부드러운 붓으로 고분 옆부분을 쓸어낸다. 그러면 고분한 부분만 금박 문양이 남게 된다. 

만봉스님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

모란도
 모란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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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는 불교적인 소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 박물관에는 불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그림들도 보인다.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호작도(虎鵲圖)가 있고, 모란을 그린 궁모란도, 굿당의 걸개그림인 무신도(巫神圖)도 있다. 그리고 12지신상을 그린 십이지신도도 있다. 이 중 호작도는 산신도에서 파생된 것이고, 십이지신도는 약사여래를 지키는 호법신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들 그림은 불화의 일종이다.

그에 비해 궁모란도와 무신도는 불교적인 색채가 덜한 편이다. 실제 만봉스님이 이들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신도들의 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신도가 찾아와 "병풍 만들게 목단 그림 하나 그려주세요" 하면, 재료값만 받고 그려주었다고 한다. 또 어려운 무속인들이 무신도를 하나 그려달라고 하면, 이 역시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봉스님이 1998년에 그린 허준 초상화
 만봉스님이 1998년에 그린 허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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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과는 성격이 다른 그림이 하나 있다. 허준 초상화다. 허준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한의사다. 허준은 오른손에 산삼을 들고 그것을 골똘히 살펴보고 있다. 왼손에는 한의사답게 약함을 들고 있다. 이 그림은 1998년에 그린 인물화다. 이 그림을 보면 만봉스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들려주었다는 산삼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만봉스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하루는 산삼을 파는 사람이 스님의 화실로 찾아왔다. "스님, 산삼 한 뿌리 사 잡수세요." 가난한 화승(畵僧)에게 산삼을 사 먹을 돈이 어디 있으랴만, 지나가는 사람도 그냥 보내지 못하고 밥이라도 먹여 보내는 스님이었기에 값을 물어보았다. "그래, 산삼 한 뿌리 값이 얼마나 하는가?" "7백 원입니다." 7백 원이면 쌀 몇 말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돈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그 큰 돈을 들여 어떻게 산삼을 먹나?" 마침 스님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반스님이 산삼 한 뿌리를 옷에 쓱쓱 문지르더니 만봉스님의 입에 넣어주면서 말했다. "맛도 안 보고 어떻게 물건을 사나? 스님이 먼저 맛을 보세요." 얼떨결에 입으로 들어온 산삼 한 뿌리를 다 먹고 나자 도반스님이 물었다. "스님, 그래 맛이 어떠세요?"

불화를 그리는 만봉스님
 불화를 그리는 만봉스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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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긴, 산삼 맛이 쓰지 뭐 별 건가. 스님도 한번 맛보게." 곁에 있던 몇 스님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산삼을 먹다 보니 한 뿌리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스님들이 산삼장수에게 말했다. "하나 남았으니, 이건 자네가 먹어야겠네." "그러고 보니 저도 안 먹어 봤습니다." 일곱 뿌리가 다 없어지자 스님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스님의 화실을 떠나게 되었다.

그제서야 산삼장수는 마음이 급해져 만봉스님의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스님, 저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응, 그만 가보게." 산삼장수가 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스님, 그런데 산삼 값은 누가 주지요?" "아니, 나는 맛을 보라고 해서 먹은 것인데." 순진한 스님은 자신이 다 먹은 듯 미안해했다. "지금은 가진 돈이 없네. 다음에 돈이 모아지면 연락할 테니 그때 와서 받아가게나."

그러자 산삼장수가 사정하듯 말했다. "스님, 저희 집 쌀독에 쌀이 다 떨어졌어요. 그리고 며칠 후 부친 제사라서 산삼을 팔아 장을 보려고 했던 건데 이를 어떻게 하나요?" 정말 난처한 노릇이었다. 스님은 일어나 그려놓은 그림을 둘둘 말아 주었다. "팔면 이천 원은 받을 걸세." "죄송합니다, 스님." "아니야, 괜찮아. 나중에 산삼 한 뿌리 더 가져다주게나." "예, 감사합니다." 산삼장수는 얼른 그림을 받아들고 나갔다. "어디에 팔기나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 쯧쯧쯧."

만봉불화박물관을 나오며

수월관세음보살도(1996)
 수월관세음보살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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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온 나는 관리사무실로 가서 이곳에 있는 책들을 살펴본다. 나는 그 중 저널리스트 박원자씨가 쓴 금어 만봉스님의 삶과 불화이야기<현세에 꽃 피운 극락>을 산다. 그리고 마침 만봉스님 관음도가 실린 달력이 보여, 하나 얻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관리인이 흔쾌하게 두 개를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달력 인심이 후한 편이다. 표지에는 1996년에 그린 수월관세음보살도가 실려 있다.

흐르는 물과 바위, 대나무 숲과 달이 그림의 배경을 이룬다. 관음보살은 머리 위에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보관 한 가운데 화불이 있다. 관음보살은 반가부좌로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본다. 바위를 받치고 있는 왼손 뒤로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 정병이 보인다. 얼굴과 몸매가 상당히 육감적이다. 인도에서는 관음보살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황룡해수관음도
 황룡해수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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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달력 안의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각기 다른 표정과 포즈 그리고 배경을 가진 관음도다. 그 중 황룡해수관음도와 백의관음도가 인상적이다. 황룡해수관음도에서 관음보살은 황룡을 타고 바다 위를 날며 선재동자에게 지혜의 법을 가르쳐 준다. 이들 지혜는 오른손에 들려 있는 정병과 왼손의 버드나무 가지에서 나온다. 만봉스님의 또 다른 해수관음도에서는 관음보살이 청룡을 타고 나타난다.

백의관음도
 백의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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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관음도는 정말 여성적이다. 흰옷의 깨끗함과 다소곳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신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잔잔한 바다 위에 만개한 연꽃이 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관음보살이 반가부좌의 자세히 살포시 앉아 있다. 가슴과 머리 뒤로는 불꽃무늬 광배가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다. 십자형으로 포갠 왼손에는 버들가지가 들려 있다. 이 불화를 통해 나는 관세음보살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절을 떠나면서 만봉사와 만봉불화박물관의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절 앞의 조경이 진행되고 있었고, 9층석탑을 세우기 위한 불사와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법당 외부의 단청도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았다. 만봉사를 나오면서 보니 해가 서쪽으로 좀 더 기울었다. 이제 여기서 예밀정류장까지 1.5㎞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만봉불화박물관, #만봉스님, #불화그리기, #허준과 산삼, #관음도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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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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