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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토박이'였던 권오두(강릉원주대 겸임교수)씨는 17살에 고향을 떠났다. 타향인 서울에서 구두를 닦으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 성실하게 주경야독한 덕분에 경기공전(현 서울과학기술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13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강릉대(현 강릉원주대)에서 국제경영학 석·박사과정을 밟았다. 강릉과는 무관해 보이는 '국제경영학'을 전공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미래가 글로벌 세상이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해안시대를 열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는 지금 '신강릉역 원안사수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경영학 박사는 왜 신강릉역 문제에 관여하게 됐을까?

최명희 시장 재선 직후 '금광리역'이 사라졌다

권오두 신강릉역 원안사수위원회 사무국장
 권오두 신강릉역 원안사수위원회 사무국장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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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가 지난 80년 강릉역 이전을 철도청에 건의하면서 '일'은 시작됐다. 일제시대 설치된 강릉역이 도시를 가로질러 강릉시를 양분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강릉역을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강릉시 이전이 받아들여져 지난 97년 강릉역을 이전할 곳(가칭 '신강릉역)으로 금광리를 최종 결정했다. 이후 지난 2003년에는 강릉역 이전이 국가사업으로 확정됐고, 지난 2010년에는 원주-강릉간 복선전철사업도 확정됐다. 특히 강릉역 이전지로 확정된 금광리는 '인천공항-서울-원주-강릉간' 철도망과 '부산-경주-삼척-동해-강릉-속초-고성-제진간' 철도망(계획중)의 연결지점으로 관심을 모았다. 

문제는 지난 2011년 3월에 일어났다. 신강릉역 후보지가 금광리 외에  회산동, 지변동이 추가된 데 이어 강릉역(현 역사)까지 4곳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후 신강릉역 부지선정 자문위원회가 구성됐고, 강릉역을 최종부지로 선정했다(2011년 5월).

오랫동안 의견수렴과 건의, 청원, 서명운동, 설계용역, 교통환경영향평가, 도시기본계획수립 등을 통해 결정된 정책이 부지선정 자문위원회가 구성된 지 한달여 만에 바뀐 것이다. 최명희 강릉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따라 최초 결정된 '금광리역'은 없어지고, 금광리에서 강릉역까지 연장된 구간(단선, 9.8km)이 생겨났다. 

권씨는 "강릉시 입맛에 맞는 자문, 유리한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강릉역 이전부지를 금광리에서 기존역으로 바꾸어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금광리-강릉역 연장구간은 당초에 없던 계획이어서 이렇게 하려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해야 하는데 B/C(비용 대비 수익)가 0.2도 채 안 나온 걸로 안다"라며 "기획재정부의 과장도 '예타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강릉도심구간 지하화 확정'을 발표했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강릉도심구간 지하화 확정'을 발표했다.
ⓒ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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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강릉역 지하화 확정? 그것은 거짓말"

강릉역 이전부지를 기존역으로 바꾸면서 '지하화사업'이 추가됐다. 애초에 '도시 양분'을 명분으로 강릉역 이전을 추진했기 때문에 금광리-강릉역 도심구간을 지하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4600억 원이 넘는 사업비가 추가됐다. 그런데 최명희 시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원주-강릉 복선전철 강릉도심구간을 지하화하기로 기획재정부와 최종 합의했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쪽은 "확정된 바 없다"라고 해명했다.

권씨는 "저희가 기획재정부에 확인한 결과 강릉도심구간 지하화는 결정된 바도 없고, 예산도 확보되지 않았다"라며 "그런데도 최명희 시장은 확정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릉이 지역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몇억 원의 국비만 받아도 몇천 명에게 문자가 날라옵니다. 그러면 4600억 원의 예산이 확보됐다면 엄청난 문자가 날라와야 해요. 그런데 그런 문자를 받았다는 사람은 한명도 못봤습니다."

권씨는 "금광리-강릉역 구간을 연장하고 이를 지하화해서 최명희 시장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표밖에 없다"라며 "결국 12월 30일 지하화 확정 발표 기자회견 등은 최 시장이 자신의 3선을 위해 벌인 사전선거운동이다"라고 꼬집었다.         

"시골지역까지 합하면 강릉시 인구가 24만명 정도 됩니다. 그 가운데 14만-15만 명 정도가 도심에 살아요. 금광리는 인구가 얼마 안되요. 역사가 금광리로 안가고, 강릉역 이전부지가 도심에 있는 기존역으로 바뀌고, 연장구간을 지하화하면 업적이 하나 생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시장이 일을 하나 해내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권씨는 "최명희 시장이 80%가 넘는 전국 최다 득표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기고만장해졌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으로 뜨면서  대통령이 된 것이 멋있어 보였는지 최명희 시장도 '지하화 사업을 성공시키면 나중에 강원도지사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명희 강릉시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강릉도심구간 지하화 확정 발표' 기자회견을 연 뒤 강릉시내에 걸린 현수막.
 최명희 강릉시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강릉도심구간 지하화 확정 발표' 기자회견을 연 뒤 강릉시내에 걸린 현수막.
ⓒ 신강릉역 원안사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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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들이 의견광고조차 거부하더라"

하지만 지역여론이 '원안사수'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어느 지역보다 '지역카르텔'이 강고한 강릉지역의 특성 때문이다. 권씨는 "강릉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못낸다"라며 "'너 몇 기야?' 이렇게 나오면 꼼작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연·학연·혈연 등으로 이루어진 지역카르텔이 강고하다는 것이다. 최명희 시장도 '학연 카르텔'의 정점인 강릉고출신이다.

"강릉 사람들이 싫은 소리를 못해요. '산 송장'이나 다름없어요. 최명희 시장이 거짓말을 하는데도 '그런가 보다' 하고 잊어버립니다. 문제의식이 없어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다 연결돼서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거죠. 반대하면 나쁜 놈으로 몰아요. 그러니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겁니다.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지경입니다."

권씨는 "시청 공무원인 친구가 '핵심인 너만 입다물어 주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되겠지만 옳지 않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얘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강릉역과 관련된 '지역카르텔'에 지역언론들까지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언론들이 신강릉역 문제점을 잘 다루지 않을 뿐더러 원안사수위원회의 의견광고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권씨는 "지역에서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지만 기사를 실어주지 않았다"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강원도민일보>, <강원일보>, 강릉MBC, 강원민방 등이 다 그렇습니다. <강원일보>의 사주는 동부그룹인데 강릉역 옆 주차장 부지가 동부그룹 소유입니다. 강릉역이 다시 개발되면 개발가치가 상승하니 반대쪽 광고를 실어줄 이유가 없는 거죠. <강원도민일보>는 처음에 광고를 실겠다고 해서 문구와 광고비까지 다 책정했는데 다음날 못실겠다고 하더군요. 기사야 안 써주더라도 돈을 내고 광고를 하겠다는 것도 거부하는 것은 뭡니까? 완전히 입을 막겠다는 것 아닌가요?" 

권씨는 "금광리에서 강릉역까지 자동차로 8-10분 걸리는데 기찻길을 만들면 최소 15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라며 "그런데 이런 데다 4600억 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럴 돈이 있다면 노숙자를 먹여살리는 게 낫다"라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권오두, #강릉시, #최명희, #신강릉역, #금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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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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