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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4인 가족 기준으로는 어림잡아도 1년에 1억60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인데, 대통령이 야심차게 제시한 청사진임에도 전혀 현실감이 안 느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인 신년기자회견 자리에서 474비전(4% 성장률, 70% 고용률, 4만 달러 국민소득)을 제시했다. 난 기자회견을 보면서 국민소득 4만 달러 팡파르가 울릴 3년 뒤를 생각해봤다. 과연 난 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중산층 70%의 일원이 돼 4만 달러 소득이란 달콤함을 향유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기대보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금은 한껏 떠받들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변방으로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건 비단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후보시절이었던 불과 1년여 전,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제일 앞에 내세웠다. 그러나 불과 1년이 지났건만 박근혜 정부 사전엔 '경제민주화'는 없다. 경제민주화 자리를 경제성장이 꿰찬 것이다.

경제성장을 외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종종 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으며 서민 달래기에 나서면서도 대형마트 편들기는 멈추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은 '서민과의 인연 끊기', 혹은 '재벌에 대한 구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가계부채는 이미 2013년 말 기준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 2013년 9월 991조 7000억을 육박하던 가계부채는 10~11월 대출만 9조 원 늘어 연말을 전후로 1000조 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2004년 말 가계부채가 494조 원임을 감안하면, 8년 사이에 무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취임 1년, 실종된 '경제민주화'를 찾아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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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념 투쟁에 빠져서 민생을 외면하거나 성장에 집중하다가 민생에는 실패하는 잘못을 결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민생이 이념이라는 철학으로 지금까지의 정부들과는 완전히 다른 철저한 민생위주, 국민행복 중심의 정책을 펼쳐갈 것입니다. (중략)  집과 일터, 공동체 모두에서 행복을 이뤄갈 수 있는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를 즉각 추진할 것입니다."

18대 대선을 불과 보름 앞둔 2012년 12월 2일, 박근혜 후보는 KBS 1TV 대선 후보자 방송 연설에서 '중산층 재건을 위한 국민행복 10대 약속'을 제시했다. 고용불안에서 일자리를 지켜주고, 공공부문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겠으며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도 공약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펼쳐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경제민주화'는 실종됐다. '2013년 11월 현재 경제민주화 18개 공약 중 이행된 공약이 4개에 불과하다'는 경실련의 조사내용은 경제민주화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를 자처하던 박근혜 정권의 경제 멘토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마저 "그런 거 이미 다 잊었고 이제 관심도 없다"라며 공약 후퇴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 없이 드러낼 정도니, '경제민주화 공약 용도폐기'가 야당만의 정치 공세라 볼 수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1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한 뒤 경제 문제 논의는 급속하게 '민주화'에서 '활성화'로 이전됐다. 노인연금 등 복지 공약을 후퇴시킨 정부와 여당이 경기 불황과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공약 불이행에 대해 '셀프 사면'을 남발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취임 6개월 만에 경제 '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로 정권의 유지 동력을 갈아치운 박근혜 정부 때문에 서민 경제는 회복은커녕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이 길거리로 나앉았고 중소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청년실업이 줄고 노동자의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문제가 나아졌다는 통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서민들 어깨에 오른 빚더미는 나날이 무거워졌고 그때마다 정부는 위로하는 척 '좋은 대출' 카드를 꺼내들었다. 두 얼굴의 정부가 내놓은 '좋은 대출'이 결국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빚도 갚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하면서 서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하면서 서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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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월 중으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6월 내놓은 하우스푸어 지원 방안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 대책인 셈이다. 아직 대책의 근간은 나오지 않았지만, 또 다시 정부가 '이율이 낮은 대출'을 대책이랍시고 내세울까봐 걱정이다.

이자와 대출 심사를 완화해 은행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서민을 위한 '가계부채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는 중병이 걸린 사람에게 구체적인 치료는 하지 않은 채 고통을 줄여준다며 진통제만 남발하는 것과 같다. 가계부채 대책의 기본은 저임금 구조와 고용불안 해소가 돼야 한다. 자신이 정직하게 번 돈으로 먹고 살만 한 사회여야 더 이상 빚도 안 내고 있는 빚도 줄여 나갈 수 있다. 이건 가장 초보적인 경제 상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제민주화가 아닌 활성화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는, 그래서 틀렸다. 국민이, 서민이 원하는 건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가 아니라 적은 소득이라도 골고루 나눌 수 있는 사회다.

2013년 대한민국은 연봉 6000만 원 받는 20여년차 노동자를 파업도 하지 말아야 할 '귀족'으로 취급한 '이상한 사회'였다. 그리고 2014년 대한민국은 6000만 원 이하 연봉자 절대 다수와 6000만 원의 몇 수십 배를 받는 상위 1%의 조합이 만들어낸 '비극 사회'일 뿐이다. 서민들에게 경제 민주화 없는 국민소득 4만 달러는 축복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난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뿐이다.

명색이 '국민행복시대'이건만, 아침 첫 뉴스를 장식하는 건 빚더미에 떠밀려 아이들과 함께 사선을 넘는 가장의 모습이다. 이들의 죽음이 개인일탈이 아니라면, 그래서 정권이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경제 민주화 공약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부터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취급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런 세상이어야 서민도 살 것 아닌가. 열심히 일하면 빚을 청산할 수 있고 아이들 데리고 외식이라고 한 번 할 수 있는 세상이라야 국민소득 4만 달러가 의미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국민 행복 시대 아닌가.

정부가 또다시 가계부채 대책이라며 대출 카드를 내미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지 않길 바란다.


태그:#가계부채, #국민소득 4천만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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