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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카페베네의 김선권 대표는 <조선일보>에 '청년들이여. 안녕하지 못하다고? 도전하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김선권 대표는 이 글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대기업 등에만 매달린다고 꼬집으며, 이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갖고 도전할 것을 주문했다. 오늘날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의 배경에는 기성세대와 정치권의 잘못도 있지만 결국 인생은 각자의 것이니 청년들 스스로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 더 나아가서 청년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접고 현실로 돌아오라며 훈수를 두었다. 김 대표가 기고한 글은 온라인에서 회자되며 누리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힘들게 사는 친구들에게 어설픈 훈수 두지 말고 커피나 맛있게 만들라는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지만 차마 이 지면에서 다 인용하지는 못하겠다.

체불임금으로 쌓아올린 김선권 대표의 '창업가 정신'

한 카페베네 매장 외관.
 한 카페베네 매장 외관.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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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선권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베네 매장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하루 8시간 주5일을 꼬박 서서 수백 잔의 음료와 수십 개의 빙수를 갈아가며 딱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강남에 위치한 제법 정신없는 매장에서 일한지라 굉장히 바쁜 편이었다. 손님이 몰린 시간에 10여 가지 재료들을 잘게 썰어서 얼음에 쌓아 올리는 '과일빙수' 주문이 들어오면 손에 쥐고 있던 키위를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대체 이런 메뉴는 누가 개발하신 겁니까!).

가끔은 일을 하다가 손님들이 남긴 허니브레드나 와플을 몰래 집어 먹기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굶주리는 인류를 떠올리며 '음식을 남기면 안돼'라고 생각해서 집어 먹은건 아니다.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먹었다. 일하는 중간에 밥 먹을 시간이라도 잠깐 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기가 일수였다.

나는 내 시급보다 비싼 음료를 연달아 만들어가며 김선권 대표의 '창업가 정신'에 이바지 했지만, 그는 나에게 임금 체불을 안겨주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을 하지 않는 휴일에도 하루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를 유급휴일 수당이라고 하는데 당시 카페베네에서는 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4개월 정도 일했던 나는 약 60만 원에 달하는 임금을 카페베네, 그러니까 김선권 대표로부터 받지 못했다. 알바생 주제에 카페베네 대표님을 노동청에 고발하는 무례함을 범하고 나서야 나는 내 임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내가 김선권 대표의 글을 보고 느낀 첫 번째 감상은, 불쾌함이었다. 2년 전인 당시에 임금을 체불 당한 직원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 조사 대상 46개 매장 중 91%에 달하는 카페베네 매장에서 직원들의 임금(유급휴일 수당)이 체불된 것으로 드러났다(2011년, 청년 유니온).

최근에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지난해 8~9월 진행한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카페베네 56개 매장 중 55개에 달하는 매장에서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 실태가 드러났다. 비율로 따지면 98.3%에 달한다. 따지고 보면 김선권 대표가 쌓은 부와 명성은 카페베네 알바생들이 지급받지 못한 임금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을 체불 당해서, 근로기준법을 보장받지 못해서 '안녕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대자보 보면서 카타르시스 느끼지 말고 현실로 돌아와 '창업가 정신'을 발휘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김 대표 자신

김선권 대표는 청년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으나, 진정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바로 김 대표 자신이다. 지난해 12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기업생멸(生滅) 행정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를 포함한 창업 기업 중 5년 이상 폐업하지 않고 생존한 사업장은 10곳 중 3곳(29.6%) 정도였다. 숙박·음식점업의 경우에는 17.7%에 불과했다.

폐업만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창업자(자영업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빈곤의 길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13년 6월 기준 자영업자의 빈곤률은 13.1%로 월급쟁이(상용근로자) 빈곤률 4.4%의 3배 수준에 달했다. (통계청) 이는 한국사회의 유별난 자영업자 규모와도 무관하지 않다.

2013년 11월 현재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2.19% 수준으로, 여전히 OECD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통계청). 10년 전 통계인 35%와 비교해 봤을 때 자영업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창업시장은 포화상태이며 자영업의 빈곤과 폐업이라는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주판을 굴려봤을 때 창업가 정신으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을 거쳐 성공한 창업가로 거듭 난 김선권 대표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가 거둔 놀라운 성공의 이면에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우연과 행운이 겹쳐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리란 보장도 없다. 오히려 그와 마찬가지로 창업가 정신을 발휘했다가 빚더미에 눌려 고통 받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사람마다 각자 처해있는 삶의 조건이 다르고, 꿈꾸는 성공의 모습도 다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 되는 '인생 정답'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공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에게 창업가 정신 따위의 정답을 강요하는 것만큼 무의미하고 위험한 일도 없다. 지금 김선권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들의 멘토로 거듭나기 위한 어설픈 조언이 아니라,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태그:#카페베네, #김선권,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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