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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관광지만큼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시내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궁전의 입구를 오른다..하지만 걸어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 알람브라 궁전의 입구 세계적인 관광지만큼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시내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궁전의 입구를 오른다..하지만 걸어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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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에 분수의 물줄기가 마치 수정알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이 현란하고 맑았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다..
▲ 궁전내부의 정원 아침햇살에 분수의 물줄기가 마치 수정알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이 현란하고 맑았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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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산위에 도시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성, 이태리 프란체스코성당이 있는 앗시시 그리고 여기 알람브라... 중세시대 좀 더 하늘가까운 곳으로 가서 신에게 간구했던 그들 신앙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라나다의 도시 전경이다.
▲ 궁전에서 내려다 본 도시 유럽인들은 산위에 도시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성, 이태리 프란체스코성당이 있는 앗시시 그리고 여기 알람브라... 중세시대 좀 더 하늘가까운 곳으로 가서 신에게 간구했던 그들 신앙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라나다의 도시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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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현실은 무너진 벽같이 암흑스럽다. 하지만 초저녁 달동네에 걸쳐앉은 젊음의 초상은 왠지 시적 낭만을 일깨운다. 황혼, 가스등 그리고 청년의 어울리지 않는 아이로니한 상황적 대비가 오늘의 스페인의 현실같이 암울하다..
▲ 그라나다의 초저녁 스페인의 현실은 무너진 벽같이 암흑스럽다. 하지만 초저녁 달동네에 걸쳐앉은 젊음의 초상은 왠지 시적 낭만을 일깨운다. 황혼, 가스등 그리고 청년의 어울리지 않는 아이로니한 상황적 대비가 오늘의 스페인의 현실같이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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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의 견고하고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원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 카를로스 5세의 궁전 외형의 견고하고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원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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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한 태양이 무방비하게 쏟아진다. 그라나다를 향한 여정은 그래도 깔끔한 이등열차의 내부에서도 정겹다. 창밖으로 간간히 지나가는 하이얀 혹은 황토색의 주택들이 각을 세운 듯 정연되게 운집되어 있다. 마을이라기 보다 외진 곳에 존재하는 집단공동체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열차의 웅웅거리는 엔진소음과 진동하는 차체의 흔들거림과, 열차의 피곤한 듯 늘어지게 간헐적으로 울리는 부적이 정겹다. 그리고는 초원, 초원, 또 초원이다.

마치 런던의 지하철 같은 안내방송이 열차의 중간 중간을 채운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차장과 스페인말을 할 정도로 그들의 제2외국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옆자리의 남학생은 아이폰과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책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귀에는 소니의 흰 리시버를 꼽고 눈을 감고 있다. 리시버 너머로 간절한 목소리의 여자가수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앞좌석의 학생은 아이패드를 들고 독서를, 그리고 옆은 남학생이 실짜기를 하고 있다. 뒷좌석의 중국 여자는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를 중국어로 컴퓨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민족을 떠나 영어권 속에서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민족적 정체성은 언어라고 했는데 이제 세계는 한 민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옆 좌석의 부부는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다.  

그라나다의 첫 인상은 청결의 도시같이 맑고 하늘이 높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전혀 계절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환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멀리 하이얀 설산 같은 높은 준령이 있는 것을 보면 겨울을 갖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슬람 지배권 하에서의 영향과 그 잔재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어딘지 중동적인 분위기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리스 작가가 두 개의 경이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어떠한 것이 실제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찬에 극찬을 한 알람브라 궁전을 갔다. 군사적 목적에 맞게 지어진 것이었으나 그 석조의 완벽한 여성미는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의 해변성곽이나 잘츠부르크 성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카롤로스 5세의 본궁은 압권이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완전한 포만감의 동심원이 터질 듯한 팽창감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주의 일체를 의미하는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중심에는 구원을 향한 절대 신앙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알람브라는 도시의 야산에 석조건물을 축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의 중동인은 신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산의 정상에 교회를 짓고 고딕의 둥근 돔 지붕을 가능하면 높게 축조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좀 더 신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에 알라의 이름으로 궁전을 축성하는 것은 곧 알라신에 대한 영원한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남한산성보다는 남산을 예로 들고 싶다. 그곳에 궁전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군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처리되는 것으로 귀결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인지 인간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절대자에 대한 복종과 귀의 그리고 무한한 존경의 겸손을 동양은 서양에 비해 약한 것은 아니었을까. 반면에, 현대 서양사회에 있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민족성은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람브라의 왕국을 오늘 걸어 들어가면 우리는 잠시 손목의 시계를 풀고 환상속의 시간여행을 출발하게 된다. 마치 몽환의 무감각한 유체이동이 실제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를 분명 경험하게 된다.

궁전의 입구는 야산의 입구다. 하지만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모든 기념품점은 중동인이다. 매케한 향료의 야릇한 향기를 맡으며 길을 오르면 아랍의 음악, 천상의 채색같이 다양한 색의 각종 기념품, 귀금속의 환상적인 조각 들을 보면서 아랍인의 역사적 뒤안길에 숨겨진 옛 영광을 엿보는 쓸쓸함이 있다. 그들은 분명 칼을 사용하는 무력을 가진 민족이었다. 알라신의 이름으로 모든 생활의 가치와 활동이 이루어지는 만큼 그들이 갖고 있는 인적자원으로서의 우수성을 남들 못지않는 위대함이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그 유명한 제너럴리페의 전경이 펼쳐진다. 산속에서 불어오는 향기에 온몸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우거진 삼림의 무한정한 포만감에 일단은 압도당하게 된다. 마치 타임머신의 캡슐 속으로 홀연히 잠겨든 알람브라는 마치 여인의 뒷태를 보듯 야릇한 신비감을 날리며 우리들 앞에 문득 나타난다. 그렇게 무겁게 자리잡은 석조의 건축물일지라도 어딘지 그 지역이 갖는 수수한 분위기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입으로 다가온다. 본 궁 이외에 정원이 있고 술탄과 왕비의 욕탕이 있고 교회가 있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치 요새와도 같은 성곽의 견고함이 자리하고 있다. 

한나절을 온통 돌아다녀도 알람브라의 완전한 품속에서 그 시대적 절대군주의 위력을 유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떻게 전 야산을 하나의 완벽한 석조의 축성으로 이루어놓았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특히 알자브라의 높은 전망대의 하늘공원이라고 해야 할 요새는 지금이라도 쉽지 않은 건설임에 분명하다. 키 큰 야자수와 선인장이 수중정원을 지키는 모하메드 술탄탄의 여름휴양지에서의 군주의 한적함이 어떠했을까 궁금하였다.

야산을 오르면 직각의 형을 이룬 측백나무의 정연한 모습이 마치 기하학적 형상의 예술성을 간직한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형형색색의 꽃들과 석류향이 진동을 하고 작고 앙증맞은 정원분수대가 온종일 물을 내뿜고 있다. 아침 햇살에 산란스러운 빛이 못내 정원의 수줍음을 벗기기 시작한다. 미로를 찾아나서는 일순간 미아가 된다. 그 작은 돌계단이 높인 좁은 통로를 지나면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그 사이에 모든 벽면과 기둥에는 이슬람의 형언할 수 없는 무늬가 양각되어져 그 신비로운 예술적 재질에 감탄한다. 아! 그것은 지중해의 남국을 건너온 술탄의 위엄과 위대함을 떠받치는 작은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후대에 이를 보는 현대인들은 모든 깊은 존경과 감동의 물결에 전율한다.

가능한 한 벽을 줄이고 그 대신 원주를 세우면서 시야를 폭넓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든 그들의 미학적 천재성과 건축기술에 인간으로서의 깊은 자부심을 공유하고 싶다. 아랍식 문양들이 여기저기 곳곳에 보이고... 그 길고 직선의 회랑을 걸으면서 술탄은 알람브라의 통치와 적으로부터의 방비를 생각했을지 모르나 후대들은 이곳에서 알람브라와 술탄의 위대함과 예술성에 가슴이 떨린다. 이슬람의 마지막 술탄은 왕국이 망하는 것 보다 알람브라를 잃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추억하기에는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아랍인들의 꿈의 궁전같이 미화되어도 오늘은 왠지 그 주객이 전도된 역사적 전후관계에 대한 혼돈을 던지며 어딘지 쓸쓸하게 입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거대한 권위의 이면에 다가오는 무수한 과거의 명암들이 마치 하나의 향수처럼 아련하게 그리움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궁전은 그 자체로 이제는 완벽하게 그리고 신이 떠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어도 항상 이를 지키는 이슬람의 정신과 영혼은 변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곳 안달루시아는 이슬람의 알라신의 혼이 깃든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알람브라는 항상 그 존재스러움 자체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자리할 것이다. 
    
시내를 들어오면 성당이 보인다. 고딕과 르네상스의 형태를 갖춘 이색적인 성당이다. 유럽을 찾으면 항상 느끼는 것이 그들은 단지 신의 대리인의 자격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순종적 운명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심지어 동양이 후대를 이어가는 과정도 자신의 분신으로서의 소유적 관념에 사로잡혀 연속성을 언급한다면, 이들은 단지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전의 신의 시대에는 필연적 인식의 출발이다. 그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계승이 지속되는 현재에도 별로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회전반에 걸친 이러한 유럽의 종교적 인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말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성당내부의 엄숙함, 종교적 절대, 신과 인간의 관계, 감탄 그리고 전율이 흐르는 자기성찰.

주말 오후의 그라나다는 미치도록 맑고 투명한 양광이 거리를 채운다. 시민들은 모든 햇빛을 쫒아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다. 활기가 넘친다. 한잔의 맥주에 와인에 그리고 타파스에 담소를 나누고 웃고 시끄럽지만 싫지 않는 소음이 계속된다. 아메리칸 음악이 들려오고 때로는 거리의 밴드들이 템포가 빠른 음악을 기타에 맞추어서 노래하고 있다.

펍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바텐더의 빠른 동작과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출입문이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아울러 손님들의 표정은 즐겁다. 미소와 대화가 정겹게 보이고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식욕을 돋운다. 비스듬히 클라식한 건물을 기웃거리는 오후의 햇살, 빠르고 간결한 스페인 언어. 호감어린 주문과 응대. 타파스를 주문한다. 칼라마레스와 레조스. 해산물 튀김이다. 햇살이 너무 맑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문을 밀치고 거리의 벤치에 앉는다. 만끽하고 싶다. 그저 이 순간을 말이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도 없이 거리를 바라본다. 한반도에는 핵이 발사될 모양이다. 지겹다. 정말 지겹다. 우리들은 왜 스스로를 소모적인 일상으로 낭비하고 힘들게 하고, 가두어 들이는가. 그리고 왜 주변국들에 연연하는가. 운명인가 ? 슬프다.

공원에는 선탠을 위한 무리들이 떼 지어 있다. 놀이도 하고 있다. 공원은 느긋한 공간이다. 평화로운 우정과 인간관계, 그곳에는 유럽이 있다. 왜 유럽적인가,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아마도 잘 산다는 것은 고단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부럽다.

석양이 가라앉은 그라나다 시내와 언덕의 밤은 어딘지 정감이 간다. 달동네의 골목마다 초라한 형광의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동네 여인들이 모여앉아 수다를 떠며 웃음을 흘리고 있다. 담벼락에 앉아서 우수에 젖은 청년의 늘어진 어깨위로 가로등이 유난히 밝다. 그 풍경에서 오는 감상적 현실이 아닌 실업의 가난한 스페인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개미집같이 돌로 널어져 붙어버린 산동네의 주거형태가 슬프도록 처량하게 잠들어 가는 스페인의 밤이다.

그라나다의 밤도 유럽의 어느 도시와 별 차이가 없다. 밤의 불빛이 아파트의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거실의 단란한 가정의 안락에서부터 초승달이 뜬 동네의 소박한 저녁에 이르기 까지 그라나다는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거리에는 질주하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고 젊은이의 폭주하는 차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또한 시끄럽다. 길거리에는 일단의 군상들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기도 하지만 런던의 거리와는 달리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아무래도 가족들이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거닐며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외식을 한 모양이다. 항상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귀의하는 곳이 가정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낌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아주 큰 인연의 끈으로 서로가 연결된 가족의 의미는 정말 무한한 것이다. 서양인들은 이러한 가족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깊다. 거리에는 흰 형광등이 약간은 특이한 형태로 밤을 밝히고 있다. 좀 전까지도 젊은 타악기 부대가 시끄러운 공원에는 어둠 속에 분수의 흰 물줄기만이 요란하게 밤을 거슬리고 있다. 일교차가 있는지 오늘 그라나다의 밤은 춥다.  

덧붙이는 글 | 유럽의 도시들을 계속연재할 예정입니다. 김진환 기자는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입니다



태그:#그라나다 , #스페인 , #알람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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