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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140m의 도출라 고개에서 버스는 끝없이 밑으로 하강을 하다가 탁 트인 들판이 보이는 곳에서 멈췄다.

"여기가 치미라캉 사원이 있는 솝소카라는 마을인데요. 저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들판 건너에 있는 치미라캉 사원을 걸어서 다녀옵니다. 치미라캉 사원은 괴승 드룩파 쿤리 스님이 세운 사원으로 아주 재미있어요. 그곳에 가면 스님이 페니스 바를 들고 점을 쳐 주기도 합니다."
"페니스를 들고 점을 쳐 준다고요?"
"네, 가보시면 압니다. 일단 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먼저 하시지요."

"처마 밑에 저 조각품, 뭐지요?"

카페의 처마 밑에 걸린 남근 조각품. 부탄에서는 남근 숭배 풍습이 있어 처마에 남근을 걸어 놓거나 벽에 남근상을 그려 놓기도 한다.
 카페의 처마 밑에 걸린 남근 조각품. 부탄에서는 남근 숭배 풍습이 있어 처마에 남근을 걸어 놓거나 벽에 남근상을 그려 놓기도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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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쉐리가 페니스를 들고 점을 쳐준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을의 벽과 처마 밑에는 남근을 걸어놓거나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는데 어찌나 적나라하던지 정말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에궁, 저건 또 뭐야?"
"뭔데요?"
"저 처마 밑에 달려 있는 조각 말이에요."
"호호호, 저건…, 그러니까 저건…."

처마 밑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물건을 보고 모두들 웃기만 하지 그 물건의 이름을 차마 입밖에  내지를 못했다. 그 물건은 나무로 조각을 한 남근상이었기 때문이다.

벽에 그려진 남근상
 벽에 그려진 남근상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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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벽을 봐요. 에그 흉측하기도 해라."
"하하하, 참 재미있군요. '거시기'에 눈이 달려있네요."
"에구머니나, 정말 보기가 민망하군요."

마을의 집이나 카페의 벽에는 모두 남근상이 그려져 있었다. 어떤 그림은 사정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그림은 성기에 눈이 달려 있기도 했다. 벽에 그려 있는 그림들은 외설스럽게 보이기보다는 유머를 담고 있는 풍자그림처럼 보였다.

쉐리는 치미라캉 사원에 얽힌 드룩파 쿤리 스님이 퍼트린 남근 숭배 풍습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다. 드룩파 쿤리 스님이 미친 괴승이라는 설명은 팀푸 타킨 미니동물원에서 이미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드룩파 쿤리 스님(1455~1529)은 실제로 부탄에 생존했던 인물이다. 티베트에서 출생한 스님은 뇌룡파의 본산인 티베트 랄룽사원으로 출가를 해 당대의 고명한 선사였던 '페마 링파'의 제자로 수학해 득도를 한 라마승이다.

그는 탄트라 요가 주술에 탁월한 경지에 올라 티베트와 부탄을 주유하면서 수많은 기행 행각을 통해 중생들을 제도했다고 한다. 그의 지론은 '진정한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승려들이 너무 경직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더러 웃기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극적이고 모욕적이며 외설적인 행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탄에서 남근의 의미는...

카페에서 바라본 치미라캉 사원
 카페에서 바라본 치미라캉 사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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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엉뚱하고 외설적인 행동은 어디까지나 우매한 중생을 깨우치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었다. 그는 늘 대중들의 예상을 깨는 파격적인 행각을 보여줬다. 그의 추종자들이 기적을 보여 달라는 요청에 소 한 마리와 양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우고 뼈만 남은 양의 머리를 소의 뼈에 놓자 타킨이 돼 살아났다는 전설도 스님이 보여준 기행 중 하나다.

쿤리 스님의 기행은 때로는 좌중을 기절초풍 하게 만들기도 했다. 티베트나 부탄에서는 먼 길에서 온 손님들에게 '까따'라고 불리는 하얀 무명천을 목에 걸어주며 축복하는 풍습이 있다. 어느 날 부탄의 어느 마을에 도착한 쿤리스님에게 마을 사람이 '까따'를 스님의 목에 걸어줬다.

그러자 쿤리 스님은 돌연 목에서 까따를 빼서 그것을 자신의 성기에 휘어 감고는 까따를 걸어준 사람에게 많은 여인과 함께 할 행운이 깃들라는 기도를 해줬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출산이 적었던 부탄에서는 남근은 다산을 상징한다.

그 집에 많은 자녀가 태어나면 풍요로워지고, 그것이 곧 행복이 된다는 뜻이다. 드룩파 쿤리 스님의 이런 기행은 어쩌면 히말라야 산간지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비를 베푼 것인지도 모른다.

솝소카 마을에 핀 꽃
 솝소카 마을에 핀 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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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부탄에서는 지금도 가정집 처마 밑에 남근을 매달아 놓거나, 집안에 '포'라고 불리는 남근을 그린 그림을 걸어둔다. 또한 악귀를 쫓기 위해 남근 자체를 그림이나 조각·장신구 등으로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탄에서는 남근 그림은 별 부담 없이 일반 민중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입는 옷에도 남근 그림이 그려져 있을 정도다. 이처럼 부탄에서 남근은 악귀를 쫓고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상징으로 믿고 있다.

드룩파 쿤리 스님에 대한 기록은 <하늘이 내린 미치광이>(The Divine Madman)이란 책에 자세히 수록돼 있다. 쿤리 스님은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그중 <다섯 가지 영적인 길>이란 시를 소개한다.

나는 스스로 수행을 한다네. 나는 매일 명상을 한다네.
나는 포용의 길을 간다네. 나는 모든 존재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작용을 한다네.
나는 신성요가를 수행하고, 우주 전체의 부처로 자신을 보이게 한다네.
나는 종교에 대한 모든 책을 읽고, 바로 그 순간에 그 모든 것을 수행한다네.
삶은 나의 선생님이고, 내면의 지혜는 나를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네.
- 드룩파 쿤리 스님 <다섯가지 영적인 길> 중에서

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그는 분명히 깨달은 각자요, 성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쿤리 스님의 파격적인 기행은 엉뚱하면서도 저속하기 까지하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은 자가 진리를 전하는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치미라캉 카페테리아
 치미라캉 카페테리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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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라캉 카페는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 치미라캉 사원이 아련하게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치미라캉 카페에서 야채를 곁들인 닭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고 들판을 가로질러 치미라캉 사원으로 걸어갔다.

꽃들이 만반하게 피어있는 솝소카 마을은 우리나라 강원도나 지리산의 어느 마을을 연상케 했다. 물레방아의 낙차를 이용해 마니차를 돌게 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태그:#드룩파 쿤리, #치미라캉 사원, #부탄여행, #치미라캉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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