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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이거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잘 들으셔야 해요!"

부모 강의를 하다가 강사가 마치 학생에게 말하듯 시험에 나온다고 하는 말에 부모님들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런데 나는 무척 진지하게 말하는 거거든요. 앞서 육아를 '오디션'에 비유한 것과 같이 부모님들은 항상 시험을 치릅니다. 다만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부모님이 적을 뿐입니다.

시험 결과는 실시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야구에 배트스피드(bat speed)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방망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휘두르거나, 공이 무척 느리게 보이는 느낌을 말합니다. 배트스피드가 좋으면 아무리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를 만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집중력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아이들과 오랫동안 책 놀이를 함께 하면서 제가 무척 신경 쓴 부분은 '순간 집중력'입니다. 아이들은 순간 집중력가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모두가 내 선생님입니다. 순식간에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감각과 감정이 어느 정도 속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에 비해순간 집중력이 약합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인 관념과 타성 등이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 가면 그림책이나 아동문학을 보려고 어린이 자료실에 갑니다. 어린이 자료실에는 앉은뱅이 탁자가 많고, 아이들 키높이에 맞게 책이 놓여 있어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리고 엄마들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옆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입니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머물러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친 마음을 축이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조용한 연못에 파문이 일 듯, 편안한 마음을 확 깨는 모습을 간간히 보게 됩니다.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을 때, 아이가 반가운 표정으로 "와! 코끼리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엄마는 귀찮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OO야, 책 다 읽고 나서 이야기 나누자!"라고 말합니다. 그런 어머니는 강의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랑 책을 읽을 때, 아이가 자꾸 끼어들어요. 좀 집중력을 가지면 좋겠는데 자꾸 산만한 것 같아 걱정이에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이의 집중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어머니의 집중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하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당연히 아이의 집중력이죠!"라고 말합니다. 나는 "아이는 지금 충분히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하면서 다른 어머니들의 표정을 봅니다.

장내가 술렁이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어머니들의 표정이 해맑게 피어납니다. 부모님은 그림책을 읽다가 코끼리를 발견하는 아이의 순간 집중력에 맞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스승으로 삼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아이와 교감한다는 것은 아주 섬세하고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거든요.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떠나버리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진중하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 <중용> 1장


"마술펜 같은 것은 없어"... 부모의 대답이 날 슬프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사연도 생각납니다. 가족들이 <책 먹는 여우>를 함께 읽으면서 책 놀이를 할 때였습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을 너무 사랑해서 도서관 책을 훔쳐 먹다가 감옥에 갇히지만, 이내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거든요. 아이는 아저씨의 '펜'에 집중했어요.

"나도 여우 아저씨처럼 마술펜이 있었다면 그림을 잘 그릴 텐데."

이 때 부모님의 대답이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OO야, 그건 여우 아저씨가 책을 엄청 많이 읽어서 머리가 똑똑해진 거란다. 마술펜 같은 것은 없어."

아이가 잘못 생각한 것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보이지만 모녀는 교감에 실패했습니다. 순간집중력의 핵심은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느끼느냐입니다. 설령 아이가 착각한다고 하더라도 착각한 곳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우리 딸이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구나. 우리 한 번 그림 그려볼까?"라고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우리 어른들은 '순간'을 번번이 놓칩니다. 나도 역시 놓칩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은 시시각각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보내는 위험신호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에게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집중력입니다. 시민활동과 사업체 운영을 하느라 가족들에게 소홀할 때 아내와 아이들은 나에게 계속 위험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는 오랜 집착과 스트레스 때문에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위험신호를 읽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다섯 살배기 민준이가 세 살 때 나에게 했던 '최후통첩'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오더군요. 만약 그것마저 놓쳤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일주일에 5일을 회사에서 밤샘한답시고 집을 비우고 있었는데, 주말에 집에 와 보니 세 살배기 민준이가 침대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군요. 민준이 옆에 앉아서 '민준아, 왜 그래?'하고 물어봤더니 민준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나가 버려."

나는 나에게 남은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더 이상 민준이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인생에서 이런 기회, 또는 위기가 드물게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럴 때는 나 자신을 '초기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 민준이가 열어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가족을 위해 나의 생활과 삶을 재구성하고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집중력 중에 최고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

집중력 중에서 최고의 집중력은 '삶'과 '죽음'에 관한 집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비들을 존경하는 까닭은 공부를 하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죽을 순간을 제대로 죽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학문을 하는 선비의 모습은 자못 비장하지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의병운동을 주도한 면암 최익현 선생은 일본 대마도에 끌려 갔습니다.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곡기를 끊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대마도에 함께 끌려 간 제자들은 면암 선생과 함께 죽기로 결심했지만, 면암 선생은 오히려 호통을 칩니다. 이역만리에서 죽어야 할 사람은 자기 한 사람이면 족하며, 나머지는 생생히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함부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선비의 집중력은 사마천이 벗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대로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 반고, <한서>, '사마천전', 보임안서(報任安書) 일부


생식기를 절단당하는 극형인 궁형(宮刑)을 받으면 당시의 모든 사나이들이 수치에 못 이겨 자살을 하지만, 사마천은 지금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이죠.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순간에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인간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의 하나가 소크라테스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먹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몹시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는 순간에 하필이면 이웃에게 빚진 닭 값을 대신 물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자신의 삶과 소중한 일상에 대한 집중력이 없다면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죠. 로고데라피로 유명한 심리치료사 빅토르 에밀 플랑크 박사의 일화도 깊은 감명을 줍니다. 프랑클 박사가 보살핀 환자 중에서 임종이 임박한 한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프랑클 박사에게 "밤중에 일어나지 않으실 수 있게 지금 모르핀을 놔주세요"라고 부탁하죠. 프랑클 박사는 "비할 데없이 아름다운 업적"이라는 칭송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상식과 편견에 젖어 있는 부모님보다는 아이들의 말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주는 부모님에게 깊이 배웁니다. 그리고 사소한 어떤 일에서도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발견하는 모습을 통해서 인생을 배워갑니다. 부모가 아이의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집중을 하지 않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의 집중력을 발견해주는 것만큼 강력한 집중력 훈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경고 신호인 삶의 집중력은 가족의 행복을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부모가 반드시 익혀야 합니다. 즉, 눈과 귀를 열어서 가족이 보내는 신호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상당히 산만해졌기 때문에 아이의 집중력을 길러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태그:#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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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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