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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불문하고 날아오는 청첩장.
 계절을 불문하고 날아오는 청첩장.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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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결혼 시즌이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요즘 혼자 먹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잘 놀고, 잘 사는 나 홀로족 1인가구 시대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만, 필자의 주변 미혼 남녀 중에는 현실적인 문제 따위 연연하지 않는 능력자들 뿐인가 보다. 계절을 불문하고 날라오는 매월 청첩장 공습에 얇은 지갑은 금방 초토화되곤 한다.

축의금은 엑셀로 정리해 놔야 한다. 친하지는 않지만, 얼굴만 알고 지내던 회사 후배가 있었다. 지나치다 가볍게 목례 정도하면서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거니 말거니 딱히 이유도 없어 보여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마주치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터라 무슨 말이라도 건넬까 기회를 봤는데 외면하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여 그만 두었다. 나에게 무슨 안 좋은 감정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같이 별로 얽힐 일도 없는데 왜 그런 걸까? 그런데 한참 후에 뒤통수를 맞는 듯한 당혹한 일이 생겼다.

내게 청첩장을 줬을 텐데 나는 채무(?)를 기억 못하고 무심히...

집안 청소 중 지난 사진들을 보며 감회에 젖고 있었는데 결혼앨범 단체사진에 그 녀석이 떡 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이 녀석이 언제 여기 와 있던 거야? 난 분명히 청첩장을 준 기억이 없는데?' 그제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나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당당히 인증샷까지 남겼고 그후 자신의 결혼에 당연히 내게 청첩장을 줬을 텐데 나는 채무(?)를 기억 못하고 무심히 못 챙기고 넘어갔던 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관계가 애매한데 경조사에 초대 받았을 때의 기분을 잘 알기에 역지사지 입장에서 나는 마치 채권을 뿌리듯 청첩장이나 초대장을 마구 돌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신조이다. 아들의 돌잔치도 그랬고, 결혼 당시에도 분명히 선별해서 청첩장을 돌렸을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축의금을 집계할 때 한 명 한 명 봉투 이름을 다 확인하긴 했는데 듣던 대로 엑셀로 정리하거나 하지 못했던 것이 실수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 머리 위로 축의금 금액이 숫자로 떠다닌다는 말에 공감했지만, 급격히 감퇴하는 기억력에 설마 이런 실수가 생길 줄은 몰랐다.

이 사건의 진상은 아마도 결혼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TF팀에 그의 입사 동기들이 많았는데 그는 젊은이의 패기(?)로 동기들과 우루루 같이 따라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마음의 빚 아니 실제의 빚이 생겼다. 이후로는 어떤 후배든 내게 청첩장을 주면 스마트폰 스케쥴에 꼭 알람을 넣고 작게라도 성의 표시를 하는 편이다. 회사에 젊은 직원들이 많은 터라 어떤 달은 정말 어려울 때가 있다.

몇 년째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녀석이 있다. SNS 연락만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 직접 전화도 하고 어르고 달래도 늘 특별한 이유 없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 올해도 여지 없이 묵살당하고 나서야 떠오르는 것이 꽤 오래 전에 있었던 그 녀석의 부친상이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전국적으로 모두들 너무 바빠서였는지 누가 나서서 알리지 않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기들 대부분이 그 녀석의 부친상을 챙기지 못했었나 보다.

동종업계에 있는 나 조차도 가까스로 지인에게 부탁해서 부조만 대신 전해서 그나마 전화라도 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 서운함이 얼마나 큰 지는 아직 같은 일을 격 지 못해서 정확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몇 년 이나 더 갈지 모를 일이다.

한국의 경조사 문화에100% 적응하려면 직접 격어 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동안 무심하게 참석했던 타인의 각종 경조사에서 봤던 대로 본인의 입장에서 똑같이 치르려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부담감,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부끄럽지 않은 내 가족의 잔치나 조사를 준비하다 보면 과연 얼만큼이나 나와 나의 가족을 돌아 보고 그 순간을 충실히 가슴에 새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호텔 결혼식에 5만 원은 예의가 없는 것?

결혼식장을 다니다 보면 식장에 따라 그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교회나 성당에서 하기도 하는데 우선 신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장점이 있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서 필자는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비용을 고려할 때 훌륭하지 않나 싶다. 비용으로 말하자면 호텔 결혼식이 가장 비싸다고들 하는데 장소의 스케일이나 고급스러움 그리고 나오는 음식들도 좋아서 요즘은 꼭 부잣집이 아니더라도 일생에 잊지 못할 추억을 호텔식장에서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몇 번인가 호텔 혹은 호텔 급 식장을 가보게 됐는데 '3 - 5 - 10'의 원칙을 고수하다가 무안을 느낀 적이 있다. 비싼 장소에서 비싼 음식을 먹게되니 호텔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친밀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축의금 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 언뜻 당연한 거 같지만 마치 콘서트처럼 수준에 따라 표 값이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내 유명 H호텔 결혼식에 다녀오고 나서 그 화려함에 대해 친한 친구에게 늘어놓다가 표준 요금만내면 예의가 아니라는 면박에 가까운 조언을 듣고 당황했다.

게다가 나는 집에서 애 보는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큰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2인분의 자리를 차지할 뻔 했다. (다행히 늦게 도착한 일행 덕에 내 무릎에 앉혔다.) 그 다음부터는 누가 호텔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더 신경이 쓰이고 아이는 왠만해선 데리고 가지 않는다.

'일체의 축의금이나 화환을 받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경우?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어쩌란 말이지? 선물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주말에 열리는 결혼식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지인을 통해서 축의금만 전달한 지 꽤 됐다. 한창 나이 때는 친구들 사이의 결혼식도 하나의 모임이고 큰 이벤트라 잘 차려 입고 열심히 쫓아 다녔었지만,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니 빠듯한 살림에 축의금이라는 부담 외에도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더 큰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주말 결혼식은 일주일 열심히 달려온 몸을 추스르고 가족과 함께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주말 시간을 막히는 도로와 혼잡한 인파 속에 홀랑 빼앗기게 만드는 암초 중에 큰 암초가 되어버렸다. 거를 만큼 우선 거르고(용기가 필요하다) 그 외에 직접 가기도 그렇지만 외면하기도 힘들다 싶을 때 주로 이런 방법으로 성의 표시를 한다.

얼마 전에 동아리 후배의 결혼식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는데 (게다가 호텔 결혼식!) 청첩장에 저런 난감한 문구가 있는 것이다. 알쏭달쏭 어찌해야 할 지 결단이 서질 않아 다른 일행에게 전화해서 의논까지 하였다. 다들 나와 비슷하게 이런 청첩장은 처음 격는 듯 했다.

그러는 와중에 결혼식 약 일주일 전 신랑이 될 후배에게 참석 확인 전화가 왔다. 속 시원히 물어보았더니 정말 받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접수 부스를 설치 하지 않을 것이라 하니 나의 계획은 먹힐 리가 없었다. 그리고 피로연회장 지정된 좌석에 내빈의 이름을 하나하나 프린트해서 올려놓을 것이니 꼭 참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치 5만 원권 혹은 3만 원짜리 전단지를 뿌리듯이 '나랑 연을 끊지 않을 사람 알아서들 성의 표시 하세요!'하는 청첩장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적당히 성의 표시나 하려고 맘먹었던 내가 쑥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지도 않은 테이블 중 하나에 내 이름이 올려져 있었고 그 친구가 정말로 자신의 인생에 가장 기쁜 날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절친은 아니었지만, 일년에 한두 번 얼굴 보며 지내던 선·후배 사이에서 이 결혼식을 계기로 한발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인생 살아 오면서 내 안에 물고 물리는 채무관계로 비약됐던 결혼식이 양가 어른들의 모범적인 결단으로 본질을 회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경조사에 임하는 바람직한 자세?!

회사에서 지위가 점점 올라갈수록 나는 수입 중 일정 부분을 매년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 커플들을 위해 헌납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부모님 장례식도 요즘 들어 부쩍 늘어가는 추세이다. 내가 참석했던 경조사, 내가 부조 했던 금액들이 정말 채권처럼 뚜렷이 남아 환수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도 피곤한 일이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으로 손익을 따져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려니 하고 서로 믿고 이해하며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개선할 여지는 많겠지만, 우리의 경조사 문화가 일순간에 더 합리적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터이니 각자 형편에 어울리는 선에서 좋은 일에 기부하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될 거라는 믿음? 그 정도의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다.


태그:#경조사, #축의금, #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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