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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당시 연매출 600억 원을 올리며 국내 모피업계의 대명사로 불렸던 ㈜가우디의 배삼준(62) 회장. 지난 3일 저녁 지인과 함께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취재가 아니라 순전히 사적인 자리였다. 마침 저녁 때여서 건물 1층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수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팸플릿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배 회장이 요즘 독도 문제에 매달려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초면에 명함 대신 이런 걸 건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배삼준 (주)가우디 회장
 배삼준 (주)가우디 회장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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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일본에 알리기운동 연대'(약칭 독도련). 독도를 한국도 아닌 일본에 알린다? 우선 발상 자체가 독특해 보였다. 그는 독도의 실상을 일본인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독도 문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일본인들이 독도에 대해 제대로 안다면 일본정부가 저렇게 나서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그간 우리는 이런 측면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노력 부족이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이다.

밥이 나오는 줄도 모른 채 그는 연신 독도 얘기에 신이 난 듯했다. '독도 지키기'는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명예가 생기는 일도 아니다. 대체 무엇이 이 기업인을 독도에 빠지게 했을까? 혹 독도로 무슨 기상천외한 사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래저래 궁금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7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독도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의 얘기는 그 어떤 독도 관련 강연보다도 충실했고, 또 실감도 났다.

얘기를 나누면서 작년 12월에 밝혀진, 시마네현 고시(告示)가 불타고 없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한 사람도 그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에 편입됐다는 결정적 증거로 '시마네현 고시'를 든다.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한일 양국의 신문에 독도 전면광고를 싣기도 했다고 한다. 그간의 활동으로 봐 그는 이름이나 내려고 한두 번 '쇼'를 한 것이 아니라 '진짜배기 독도 지킴이'임을 알게 됐다. 요즘 그는 '가우디 회장'보다는 '독도련 회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응당하다 싶었다. 그날 배 회장과 나눈 대화를 문답으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요즘도 모피사업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요즘 세상엔 적절치 않은 사업이라고 여겨 접었습니다."

- 그러면 요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건물임대업을 하면서 속초에서 조그만 호텔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독도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 독도 건은 사업 차원입니까?
"아닙니다."

- 기업하시는 분이 어떤 연유로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내 조국이니까요."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가난하게 살다가 먹고 살 만해지니까 내 나라가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 영토를 지킨 현대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습니다. 17세기 안용복 이후로 뚜렷한 활동을 한 사람이 없는데 나는 법률과 이론으로 '독도 영토 지킴이'가 되고자 합니다."

독도에 관심 갖는 건..."내 조국이니까"

 지난해 9월 29일 도쿄에서 일본 시민단체인 '다케시마의 날을 다시 생각하는 모임' 관계자들과의 만나 5개항에 합의했다.
 지난해 9월 29일 도쿄에서 일본 시민단체인 '다케시마의 날을 다시 생각하는 모임' 관계자들과의 만나 5개항에 합의했다.
ⓒ 배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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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관련 시민단체가 여럿 있는데요, 그들과도 교류하고 있습니까?
"예, 잘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독도 관련 시민단체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를 압니다. 조만간 독도 관련 단체 연합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 언제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1998년부텁니다."

-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요?
"김진명씨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고서였습니다. 책에 보면 독도 때문에 핵폭탄이 날아가기도 하고 그러죠."

- 독도 문제에 손대면서 어떤 일부터 시작했습니까?
"우선 몇 년은 독도 공부를 했습니다."

- 공부를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독도 문제를 일본에 알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앞서서 우리 국민들에게 먼저 알리기로 하고 <중앙일보>에 수천만 원을 들여 두 면에 걸쳐 전면으로 독도 역사를 소개하는 의견광고를 실었습니다. 이후에 <문화일보>와 <서울신문>에도 똑같은 광고를 실었습니다."

- 반응이 어떻던가요?
"곳곳에서 전화가 엄청 많이 왔었습니다. 그러면서 단체를 만들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작년 5월 2일 신문에 광고를 실었는데 단체는 6월 20일 만들었습니다. 단체 이름은 '독도 일본에 알리기운동 연대'(약칭 독도련)입니다."

- 현재 회원수는 얼마나 되며 홈페이지도 있습니까?
"회원수는 520여 명 되고요, 홈페이지도 있습니다."

- 일본 측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면서요?
"일본에 '다케시마의 날을 다시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민간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본 역사학자 두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김문길 전 부산외대 교수(독도련 이사)의 소개로 그 단체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는데요, 양측이 5개항에 걸쳐 합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 5개항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우선 시마네현 고시(告示) 무효소송을 비롯해 <아사히신문> 등 일본 신문에 독도 역사에 대해 광고 게재하고 또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비석을 한국땅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 외 양측 간의 교류와 협력 등을 담고 있습니다."

- 일본신문에 광고는 실었습니까?
"처음엔 <아사히신문>에서 실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면광고 1회에 6천만엔, 우리돈으로 6억짜리 광고를 10회에 걸쳐 총 60억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무슨 연유에서인지 광고를 싣지 못하겠다고 해서 결국 무산됐습니다."

- 최근에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 다녀오셨다고요?
"작년 11월초 이사부학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학술대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저도 초대를 받아 참석했는데요. 학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제가 시마네현 고시 무효소송을 내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석했던 교수 한 분이 '(시마네현 고시가) 불탔다고 하던데...' 이러시는 겁니다."

- 시마네현 고시가 불에 탔다고요?
"예, 제가 독도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독도 문제의 최고 정점에 있는 게 바로 '시마네현 고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에게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1997년경 시마네현 자료실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들었다는 겁니다."

- 그 분이 허투루 한 얘기는 아니지요?
"물론이지요. 그 분은 학잡니다. 나보다도 독도 문제에서는 더 고수입니다."

- 그래서 어떡하셨어요?
"가야겠다. 일본에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 겠다고 생각해서 시마네현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소실' 얘기 듣고 짜릿했다

'시마네현 고시 40호' 현재 일본 시마네현에서 소장중인 '고시 40호'. 지사의 직인이 없어 원본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 '시마네현 고시 40호' 현재 일본 시마네현에서 소장중인 '고시 40호'. 지사의 직인이 없어 원본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 배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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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는 잘 하십니까?
"전혀 모릅니다."

- 그러면 가서 일을 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주변에 일본어 하는 사람을 알아 보니 전부다 시간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실 여직원한테 '잡코리아'에 일어 통역자 모집 공고를 냈더니 순식간에 12명이 올라 왔더라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게 그 얘기를 해준 분이 같이 가면 제일 좋겠더라고요."

- 네, 그렇군요.
"그래서 메일을 보내 같이 좀 가자고 했더니 선약 때문에 시간이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모든 경비를 내가 댈 테니 역사적 순간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간곡하게 메일을 보냈죠. 결국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조건으로 겨우 그 분의 동의를 얻어 같이 가게 됐습니다."

- 가서 보니 어떻던가요? 과연 불타고 없던가요?
"작년 11월 7일 시마네현에 가서 고시 40호를 좀 보자고 했더니 담당이 없느니 어쩌니 하면서 잘 안보여줘요.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더니 결국 '소실됐는데요' 그러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짜릿하더군요. 그래서 언제 소실됐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잘 모른다는 겁니다. 담당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지금 자리에 없다며 내일 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호텔로 돌아왔죠."

- 현 직원들에게 다른 건 더 물어본 건 없습니까?
"있습니다. 요즘도 '시마네현 고시'라고 하는 자료가 있는데 이건 뭐냐고 물었더니 고시를 제정하면 무라(촌)에 한 부씩 나눠주는데 화재가 나서 200곳 중에 4곳에만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이카무라(秋鹿村)라는 곳에서 회수해서 소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그러면 지금 시마네현 주장하는 '고시 40호'는 원본이 아니라는 얘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고시 제40호를 보는 순간 이 문서에 아주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에서 입수한 <산음신문>의 '잡보'란을 배삼준 회장이 가리키고 있다.
 일본에서 입수한 <산음신문>의 '잡보'란을 배삼준 회장이 가리키고 있다.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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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자라니요?
"도장이 없습니다. 시마네현 지사의 직인(관인)이 찍혀 있지 않고 '회람'이라는 도장만 있는 문서입니다. 그런 문서는 나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독도 공부를 하면서 이 문서의 사진을 수십 번은 더 봤는데 관인이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말고도 수많은 학자들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지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 일본은 그간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결정적인 문서에 하자가 있군요?
"바로 그 점입니다. 그리고 귀국해서 조사해 보니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사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시마네현 방문은 그걸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호텔에 와서 생각하니 아무래도 뭔가 찝찝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간 교수님을 모시고 택시를 타고 다시 시마네현 청사로 갔습니다. 마침 사무실이 한가했는데요. 1층에 여직원 한 명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여직원에게 청사가 언제 탔는지를 한자 필담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직원이 '조또 마떼!'(잠시 기다리세요) 하더니 좀 있다가 유인물을 하나 건네주는데 거기에 '1945년 8월 24일 청사 전소(全燒)'라고 나와 있더군요. 이른바 '마쓰에 소요사건'으로 현(縣) 청사가 불에 탄 것입니다."

- 청사가 불탄 시점을 확인했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같이 간 분에게 현립 도서관엘 가서 당시 신문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가서 찾아봤더니 과연 1945년 8월 26일자 <시마네신문> 기사에 사실 그대로 그 날짜에 불이 났더군요. 또 시마네현 고시가 신문에 실린 게 있다고 그래서 <산음(山陰)신문>을 찾아봤더니 '잡보(雜報)'란에 조그마한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그리고 <산음신문> 기사에 '다케시마로 정하고 일본 땅으로 하기로 했다'고는 돼 있으나 그 근거가 '시마네현 고시 40호'라는 문서이름도 나와 있지 않고 고시가 언제 제정됐는지 제정일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신문기사의 의미는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사실을 만인에게 알렸음을 증명한다는 것인데 기사에 그런 중요한 사실도 빠져 있지만 시마네현이라는 조그만 지방지이기 때문에 공포한 사실로 인정되지도 않습니다."

<산음신문> 기사로는 공포 사실 인정 안 돼

- <산음신문> 기사는 날짜가 언제인가요?
"(1905년, 명치 38년) 2월 22일 고시를 제정했다고 하는 날짜의 이틀 뒤인 24일자 기사입니다."

-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어떤 경위로 제정했다고 주장합니까?
"1905년 1월 28일 일본 각의(閣議)에서 '독도 편입'을 결정하고 이를 내무대신에게 위임했습니다. 내무대신은 다시 시마네현 지사에게 이를 지시했는데(훈령 제87호), 결국 시마네현에서는 고시를 제정한 적이 없다는 얘기죠. 일본 외무성에서 제작한 '다케시마 이해를 위한 10 포인트'라는 홍보 팸플릿에 보면 다른 항목은 모두 반 페이지 분량인데 유독 '편입' 건만 두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팸플릿에서는 '독도 편입' 근거로 어떤 문서를 제시하고 있나요?
"'고시'가 없으니까 각의 결정문 사진을 대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백을 한 셈이나 마찬가집니다."

- '독도 편입'의 근거랄 수 있는 '시마네현 고시 40호'가 <관보(官報)>나 <공보(公報)> <현보(縣報)> 등에 실려 있습니까?
"그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외무성 홍보자료에도 <산음(山陰)신문> '잡보(雜報)'란에 실린 것만 거론하고 있습니다."

- <공보(公報)>나 <현보(縣報)>에 해당 고시가 실렸다면 유효한가요?
"설사 실렸다고 해도 전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무효입니다. 그나마 해당공문들이 1905년에 모두 소실됐습니다. 또 설사 <공보>나 <현보>에 실렸다고 해도 영토 편입에 대한 공포방법으로는 국제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고 합니다."

- 원본이 없다고 해서 증거력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원본이 없다고 해서 조약이 무효인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이 경우는 좀 다릅니다. 문제의 고시는 1905년 2월 22일 제정됐다는 데 일본인 항복한 1945년까지 우리는 식민지 상태여서 독도를 내놓으라고 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제3국 역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적도 없어 독도를 둘러싼 시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46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회담이 시작된 지 3년 뒤인 1949년 처음으로 이 고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해 1951년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당시 일본은 독도를 강탈한 땅이 아니라 고시 제정을 통해 국제법적으로 합법하게 편입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당시 고시 사본을 제출한 적이 있나요?
"제출한 적 없습니다."

- 일본은 이 조약 내용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명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주장해왔는데요, 그렇다면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규정은 있나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댑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국에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비준 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요, 소위 '맥아더라인'이라는 이 지도에는 조약 당시 일본 영토에서 독도가 배제돼 있습니다. 이 지도는 1952년 4월 발효와 함께 무효가 됐지만 5년 간의 회담 동안 연합국이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지도이지요."

- '이승만 평화라인' 제정 당시에도 사본 제시를 안 했나요?
"예,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일본은 우리 당국에 대해 항의하면서도 정작 편입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고시 사본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 사본을 제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나요?
"국제법 학자나 미 국무성 자료에 정통한 학자들도 그런 자료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작년 11월 11일자로 한국 외교부에 사본을 보관하고 있다면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11월 29일자로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 다른 곳에 가서도 이와 관련한 확인 작업을 한 적이 있나요?
"예, 11월 28일엔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가봤습니다. 과연 이 고시가 <관보>에 공포가 된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905년분을 다 살펴봤는데 없었습니다. 영토를 선점하려면 반드시 공포를 해야 하거든요. 사전에 일본 관서대 구로다 교수에게 문의했더니 헛걸음 한다고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구로다 교수 왈, '<관보>에 실렸으면 내 목을 걸겠다'고 하더군요. 구로다 교수 말로는 사전에 비밀로 하라고 위에서 지령이 내려갔다는 겁니다."

 '독도련'이 홍보용으로 제작한 팸플릿 전면
 '독도련'이 홍보용으로 제작한 팸플릿 전면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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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지령'이라니요?
"한국인들이 알면 독도 편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보> 등재를 고의로 기피한 셈입니다. 현재로선 증언뿐이고 문서는 없습니다만 만약 관련문서만 나오면 끝나는 셈입니다."

- 이는 일본 정부에서 독도는 일본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아마 일본 내무성 내부에서 그런 결정을 한 내부문서가 있지 싶습니다."

- 결국 일본 시마네현에서 고시를 제정한 적도 없다는 얘기지요?
"예, 문제의 고시를 제정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공포하지도 않았습니다."

- 올해는 어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인가요?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제정을 무효화 해달라는 소송을 낼 예정입니다."

- 그 소송을 꼭 낼 겁니까?
"이달 안에 일본에 가 '다케시마의 날'을 반대하는 모임 사람들과 만나서 소장 제기를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대일소송을 많이 해 오신 최봉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계획입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 무효소송 낼 것"

- 이 일을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주변의 무관심입니다. 특히 언론입니다.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는 게 시마네현 고시가 불타고 없다는 걸 기자회견을 했는데 KBS는 취재를 해놓고도 방영을 안 했습니다. 또 일본 관보에 고시가 게재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도 일본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것도 보도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KBS 보도본부장에게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아직 답이 없습니다. 아이카무라(秋鹿村) 고시가 뭐냐고 일본 정부에 물었더니 문서로 답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대체 우리나라는 뭡니까?"

-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화 해서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려고 하고 있고, 그럴 경우 우리가 재판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는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보다 힘이 세니까 그리 생각하는 모양인데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미국이 네덜란드와 영토분쟁을 벌이다가 ICJ로 간 적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이에 있는 팜마스섬이 문제의 섬인데요, 결과는 1928년 미국이 졌습니다. 힘의 논리도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정확한 근거입니다. 일본은 그간 단 한 번도 독도를 소유(지배)한 적이 없고,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자료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가 나서서 ICJ로 가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삼준 회장 소유의 속초이스턴관광호텔에 마련된 '독도역사자료전시관' 내부 모습
 배삼준 회장 소유의 속초이스턴관광호텔에 마련된 '독도역사자료전시관' 내부 모습
ⓒ 독도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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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문제로 한일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을까요?
"저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은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영토분쟁을 벌이면서도 찍소리도 못하면서 유독 독도에 대해서는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임진왜란이나 일제 식민통치 때 조선을 지배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적절한 때 독도 침공을 감행할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 개인적으로  '독도자료관'을 하나 만들었다고요?
"작년 6월 20일 제가 운영하는 속초이스턴관광호텔에서 '독도련' 창립총회를 하면서 호텔 별관 2층 오락실 자리(100평)에 '독도역사자료전시관'을 개관했습니다. 이 자료관은 그간 제가 공부하면서 모은 사료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상설 무료관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말씀 하십시오.
"독도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 독도련 홈페이지에 다양한 정보와 견해를 올려 놨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의견도 주시고 격려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두에서 언급한대로 배 회장은 독도 문제를 일회성 '쇼'로 시작한 게 아니다. 이미 독도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 뺨치는 수준급의 공부를 했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재력을 아낌없이 투자도 해 왔다. 금년에는 일본 법원에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제정을 무효화 해달라는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도 영유권 문제가 반드시 다뤄질 전망이다. 배 회장이 다소 겁없이(?) 덤비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어찌 보면 이런 방식이 해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독도는 우리가 반드시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우리의 고유영토다. 돈 벌어서 이런 일에 돈과 정열을 쏟는 배 회장 같은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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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