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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책이 또 나왔다.

한 권은 2012년 10월에 나온 <의사 김재규>(매직하우스)이고, 한 권은 2013년 10월에 나온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시사IN북)이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는 1979년 10월 17일부터 1980년 5월 24일까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쏴 죽인 뒤 긴박하게 돌아가던 한국 사회를 소설 형식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책이다.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시사IN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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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8년 동안 1인 독재로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인물이다. 1972년 10월 17일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단체를 구성해 유신 헌법을 제정했다. 대통령이 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심어 놓은 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유신체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이 모두 박정희에게 집중됐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를 쏴 죽이면서 그 유신체제를 끝장냈다. 그 뒤, 김재규는 1980년 5월 24일 사형당했다.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에게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수괴미수죄를 적용했다. 김재규는 정말로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수괴미수죄를 저질렀을까?

시민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김재규는 독재 정권에서 특권을 누리다가 경호실장 차지철과 충성 경쟁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또는 영웅심에서 대통령을 쏴 죽인 인물이었을까. 실제로 내란죄를 저지른 박정희와 전두환이 혹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은 훗날, 그 당시 시민들의 항쟁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가 아니었더라도 박정희는 금방 무너질 정권이라고 했다. 또 김재규가 아니었다면 광주 시민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가정을 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이 과연 옳을까. 역사를 그렇게 가정해서 만일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산 마산 시민들이 광주보다 더 많이 희생당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김일성만큼이나 종신제로 한국 사회를 통치하지 않았을까. 책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는 김재규를 재조명함으로써 그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 박정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다. 김재규는, 만일 그때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다면 부산과 마산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댔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당시 박정희가 한 말을 보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4·19 때처럼 서울에서 데모가 크게 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그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렸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리는데 누가 나를 총살시키겠어. 안 그래?"

소름이 오싹 끼치는 이 말에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그 말에 한술 더 뜬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각하께 불충하고 빨갱이들하고 똑같은 소리나 하는 놈들은 이 차지철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자들을 그냥 놔둘 수 있겠는가.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용기가 없을 뿐이지 누구라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건 뻔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김재규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독재와 인권 탄압에 맞섰던 천주교 신자 가운데 함세웅 신부가 있었다. 저녁 미사가 끝나고 나서 청년 신도들이 준비한 다과회를 겸한 만찬회가 있었던 날, 그 자리에서 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10·26 사건과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당시 가톨릭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이 열을 올리면서 말했던 이야기는 내 생각과 비슷했다.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통령을 쏘았다는 걸 쉽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중앙정보부방이면 완전히 박통하고 똑같은 인간일 텐데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사람이 학생들이나 민주 인사들을 얼마나 많이 잡아넣었다고요."

함세웅 신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책에서 확인해 보시면 좋겠다. 아,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박정희가 죽은 뒤 전두환은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유신의 수혜자였던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김재규를 사형시키는 데 집착한다. 5월 24일 김재규는 사형당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함세웅 신부는 오히려 "우리가 만일 김재규 장군을 살렸다면 광주의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두환은 훗날 1995년 1심에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재규는 내란목적살인죄로 사형을 당했고 그들은 풀려났다. 우리나라 역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런 진정한(?) 죄인들을 단죄하지 못했던 그런 역사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들이 이 나라 대통령까지 해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의사 김재규>
 <의사 김재규>
ⓒ 매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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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김재규를 다시 읽어야 할까. 함세웅 신부는 "유신의 괴물이 되살아나는 이 어두운 현실에서, 시대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이 깊은 사색과 용기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근혜와 그 하수인들은 그런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있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를 좇아 여론 조작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노동자들을 억누르면서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을 보면 박정희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요즘 조작된 내란죄 음모로 구속된 이석기, '대통령 사퇴하라'고 주장하는 장하나, '박정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한 양승조 의원을 제명하려는 정권은 박정희가 김영삼을 제명할 때보다 더욱 악랄하다. 게다가 민영화를 저지하려는 정당한 철도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매도하면서 노동자의 심장부 민주노총을 무지막지하게 침탈했다. 그 과정은 YH여공 농성장을 침탈할 때와 닮았다. 그 사건은 부마항쟁을 불러일으켰고,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는 서곡이 됐다.

정권의 하수인들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그런 비슷한 말에 유난을 떤다. 지난 12월 10일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이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민적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언어 살인과 같다"고 하고 발끈했다. 그 발언을 두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 (@unheim)에서 쏴 붙였다.

"그럼 박정희 정권의 전철을 밟으시라."

박근혜여, 전철을 밟으라. 또 다른 김재규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민중들일 터이니.

덧붙이는 글 | 안건모 기자는 작은책 발행인입니다. 이 글은 작은책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시사IN북(2013)


태그:#작은책, #서평,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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