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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화제인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앞에 서 다른 학생들이 지지 대자보를 들고 서 있다.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지지 확산 고대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화제인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앞에 서 다른 학생들이 지지 대자보를 들고 서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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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고려대학교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그리고 12월 13일 나는 처음으로 대자보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하루하루 대외활동 걱정, 학점 걱정을 하며 시험공부를 하던 중 보게 된 안녕하냐는 물음.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난 그저 내 앞에 쌓인 과제와 시험문제들을 잘 해결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장학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도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가지 않는 '고려대 대자보'를 보게 되니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길래 이 대자보가 화제가 되는 걸까. 대학생이 썼다고 하니 많이들 얘기하는 학자금 문제일까? 그래서 고려대 학생이 썼다는 대자보를 읽어봤다.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철도노조의 하루 파업으로 4213명의 노동자가 직위가 해제되었다고 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으로 모두 불법으로 규정되었다고 했다. TV로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는 내용은 접했었고 직위해제 얘기도 알고 있었지만 헌법에 따라 보장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마침 대자보가 붙기 하루 전인 12월 9일, 난 친구와 영화 <변호인> 시사회에 갔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은 "야, 그래도 이건 옛날 얘기라 다행이다, 지금은 저럴 일 없잖아"였다. 하지만 대자보대로라면 '저럴 일'이 지금 생겨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영화 속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변호인>에서 대학생인 임시완이 영장 없이 잡혀가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민주노총 건물에 수색영장도 없이 강제진입한 경찰이 유리를 깨고 문을 부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고려대 대자보의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 세대는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왔다는 말. 머리가 '뎅' 하는 순간이었다. 꼭 내 얘기를 하는 듯했다. 정치와 경제는 부모님 같은 어른들이 이끌어가기에 나는 그저 앞에 있는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정치적 무관심'의 뒤에 내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참으로 안녕하고만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참으로 '안녕하고만' 있었다

이렇게 대자보를 통해 나의 안녕한 상태를 깨닫고 보니 내 주변도 나와 같다는 걸 알게 됐다. 며칠간 그렇게 인터넷에 대자보 얘기가 후끈하게 나오는데도 내 친구들과의 스마트폰 단체채팅방에서는 대자보의 '대'자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점점 많은 학교에 대자보가 등장한다는데 내 친구들은 아무 얘기도 없었다. 일부 대학 동기들은 페이스북으로나마 대자보에 대해 공유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렇게 답답한 주말이 지나가고 12월 16일 월요일, 기말고사의 첫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면서 우리 학교에도 대자보가 붙어 있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도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학교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붙인 자국이나 뗀 자국조차 없는 깨끗한 게시판과 유리문들. 마치 우리 학교만 대자보 열풍이 비껴간 듯했다. 폭풍전야일지 이대로 끝나게 되는 걸지. 전국에 눈이 내려도 부산에는 눈이 안 오는 것처럼 부산지역 전 학교가 다 그런 것일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주변 학교들에는 이미 대자보가 한두 개씩 붙었고, 그것이 기사화도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 학교는 잠잠했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대자보를 직접 쓰지는 않지만 보고는 싶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섭섭하고 허무한 마음으로 시험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 시험날이 다가왔다. 지친 상태로 학교 안 한 건물을 지나치는데 평상시엔 없던 하얀 종이가 보였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대자보는 아니지만 A4 반 장 정도의 크기에 정돈된 글씨로 단 한 줄이 적혀 있는 '미니 대자보'였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 브이 포 벤데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못지않은 멋진 글이었다. 이름 모를 학생의 용기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미니 대자보는 누군가 떼버렸는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런 글이 있었다는 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브이 포 벤데타'의 모습
 영화 속 '브이 포 벤데타'의 모습
ⓒ 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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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는 쓰지 못했지만 나도 이제 대답하고 싶다

그토록 대자보를 기다렸지만 막상 나는 쓰지 않았다. 변명을 늘어놓자면 시험기간과 겹쳐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또 그 미니 대자보가 붙었다 곧바로 사라져버린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한 분노 때문에 앞뒤 맞지 않는 말을 급하게 써붙여 놓고 혼자 만족하느니,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험이 모두 끝났다. 아직도 내 친구들은 '정치적 무관심' 속에 있을까? 조심스레 채팅으로 말을 걸어봤다.

"혹시 학교에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본 적 있어?"
"응~ 거울 보러 갔는데 옆에 붙어 있더라구."
"그냥 거울만 보러 간 거야?ㅋㅋ"
"아니. 대자보만 본 적도 많아. 건물마다 붙어 있더라."
"보고 나니까 어땠어?"
"음…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동안 좀 무관심했던 내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어."

지금 대학들은 겨울방학을 맞았고, 이제 대자보 열풍은 좀 시들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상태가 '정치적 무관심'에서 '정치적 관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직접 대자보를 쓴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비효과라는 게 있다. 한 명 한 명이 쓴 대자보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수십 명이 되고, 또 그 사람들은 작게나마 본인의 의사를 주변에 다시 표출한다. 나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나비들의 날갯짓이 모여 거대한 돌풍을 일으켜 나갔으면 한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처음의 물음에 나도 이제 답하고 싶다.

"안녕했지만, 이제는 안녕하지 않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하선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 1기입니다.



태그:#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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